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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감기

by 나무를 심은 사람

냉방병+여름감기가 시작되었다.


체감온도 39도의 날씨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고, 긴소매를 입고, 따뜻한 생강차를 하루 종일 마신다. 그래도 땀이 나지 않고, 잔잔한 바람에도 서늘함을 느낀다. 추위에 두통에 몸살에, 이 계절과는 어울리지 않은 이상한 상태다.


불과 사흘 전에도 에어컨 없이는 움직일 수가 없고, 땀을 뻘뻘 흘렸는데, 똑같은 39도의 날씨에 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고장 난 몸이 신기하다. 체온조절능력이 이렇게나 하루아침에 상실되다니.


급격한 온도변화가 탈이었다. 가뜩이나 몸이 차가운 편인데 더워하는 아이들 때문에 에어컨을 매일 틀어 목이 칼칼한 상태에서, 주말에 다녀온 바닷가의 뙤약볕과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의 에어컨 그 급격한 온도 차이에서 몸이 기능을 완전히 잃은 것 같다.


감정도 큰 슬픔과 큰 기쁨 사이 널을 뛰다 보면 그 감지 기능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을까?


요즘 나는 눈물을 잃은 것 같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극 F라서 눈물을 달고 다니던 사람인데, 타인의 슬픔에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는다. 나는 감정 오지랖이 지나치게 넓던 사람이어서 눈물이 참 헤펐는데, 감정의 폭이 좁아진 것 같다. 굳은살이 배겨서 단단해진 건지, 보호막을 씌어서 딱딱해진 건지, 고장이 나서 무뎌진 건지 모르겠다. 성장인 걸까? 회피인 걸까? 방어기제일까? 고장일까?


너의 죽음은 아직도 소설 속 이야기 같다. 현실감이 없을 때마다, 시간을 거슬러 차근차근 떠올린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던 평화롭던 너의 차가운 얼굴과 차가운 손 그리고 너의 장례. 너에 대한 작은 디테일 하나라도 사라질까 그 시간들을 뚫어져라 가슴속에서 응시한다. 눈물은 나지 않는다. 성장일까? 회피일까? 고장일까?


보고 싶은 동생아.

나는 너를 이렇게 생생하게 느끼고 있는데

네가 없다는 그 사실이 참 낯설다.

이 더위에 느껴지지 않는 더위처럼.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중간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매일 만나고

우리는 여전히 매일.

슬픔이 아닌

그 어느 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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