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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차례가 왔습니다

by 나무를 심은 사람


p20

간디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진실한 우정은 겉껍질이 사라진 뒤에도 그 실체를 만나고, 그 우정을 계속 지켜 가는 것이라고. 아빠가 죽고 사라지면, 그저 아빠가 없는 삶이 시작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죽고 사라진 아빠와 우리가 여전히 같이 살아가는 매우 새롭고 독특한 일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디에나 언제라도 존재하는 아빠와의 새로 시작하는 삶이다. 슬프지만 생각보다 매우 아름답다. 사라진 사람과 함께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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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아프기도 몇 해 전

우연히 구매해서 쌓아두었던 책.


저자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고

1년 간 추억을, 생각을, 마음을 가다듬으며

죽음을 고민하고 소화시키며 쓴 조각글의 모음이다.


와닿는 글이 많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 본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말로는 표현 안 되는(그리고 어디에

꺼내어 본 적 없는) 그 감정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후 1년은 슬프다, 힘들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매일매일 찍히는 감정의 좌표는 그 종류와 강도가 그 이전에 경험해 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상은 같지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전혀 다른 나라에 떨어진 듯 모든 것이 생경하다.


신기한 것은 이런 혼란 속에서 놀랍도록 맑은 정신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는 순간도 있지만, 그것들이 모두 걷히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본질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매우 선명하게 구분되는 순간들이 온다. 동생의 죽음에 대한, 그리고 그녀 없는 앞으로의 내 삶에 대한 수많은 물음표 속에서 허우적거리지만, 이상하게 평온하고, 주위의 분주함에 휩쓸리지 않게 된다. 고독이 달아지고, 고독 그 자체는 나에겐 가장 중요한 일정이 된다.


동생이 하늘나라로 가고 1년 동안 비공개 계정에 종종 감정을 토해냈지만, 전수영 작가처럼 이렇게 타인이 읽을 수 있는 글 다운 글을 기록해 놓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동생의 2주기를 한 달 앞둔 오늘도 흐려진 기억은 없다. 어제처럼 생생한 모든 기억들. 어제도 너를 만나고 온 것 같은 기분.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 같은 너. 혹은 더 가까이.


여름 볕에 찬란하게 빛나는 깊은 초록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예쁘다, 그지?’ 하고 나는 매일 너에게 말을 건넨다.


너와 함께 오늘도

나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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