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잘 지나가고 있다
올여름부터는 다시 눈물도 사그라들었다.
잔잔한 그리움과 고요함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 속에서
너의 필요성은 제곱수의 팽창 속도로 커져가지만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 크고 작은 소리들,
크고 작은 이미지들로 그 빈 공간을 메워가며
나름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평화 속에 재미와 의욕은 덜 하지만
감사함으로 채우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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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만나는 것이 예전만큼 재미있지가 않다.
주기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내향인인 나에게도
꽤나 필수적인 일이었는데
굳이. 꼭 만나할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싶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이내 ‘이래도 괜찮은 건가?’ 한다.
며칠을 혼자 집에 있어도
외롭거나 심심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너의 말이 떠오른다.
이런 기분이었을까?
혼자 새벽에 눈을 떠 성경을 읽고
혼자 조용히 밥을 차려먹고
혼자 조용히 산책을 나갔다가
혼자 조용히 책을 보는
너의 투병 중 평화로웠던 하루들
Fomo(Fear of Missing Out)에
잘 휘둘리던 나와 달리
그냥 조용히 하루하루를 쌓아가던 너.
외로움이 정말 없었을까
아니면 외로움에 익숙해졌던 걸까.
나도 이 외로움에 익숙해지면서
조용히 다른 사람들 신경 쓰지 않고
나의 하루하루를 평화롭게 잘 쌓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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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꺼내고 싶은 이야기.
가장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가 없는 이 상황.
누군가와 몇시간을 마주보고 앉아서
가슴 속 가장 가운데 앙꼬가 들어나지 않게,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생선 뼈 바르듯 잘 발라내고
대화를 한다는 건 나에게는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나의 사정을 잘 아는 상대라면 그 상대도 아마 내 마음 불편하지 않게 잘 고르고 바르느라 힘들지도)
누군가와 아주 아주 깊이 있게
죽음과 상실과 남아 있는 이들의 씩씩하지만 괜찮지 않은 삶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하지만 죽음과 상실 또한 겪는 이에 따라 그 흔적의 모양과 온도가 다르고, 씩씩하지 않으면서 괜찮지 않은 이들이 더 많을 터.
나만 간직하는 방이 있다는 것.
이렇게 어른이 되어 가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