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클럽에서 만나요 #6
"개인사물함 도난 사건 : 분명히 잠그고 갔다니깐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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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 향하는 계단실의 자동 감지 센서는 그제야 작동해 불이 켜졌다. 깨진 타일을 밟고 미끄러지려던 발목에 힘을 주어 몸을 지탱했다. 운동감각이 썩 좋은 편은 아님에도 균형을 빠르게 잡아서 넘어지는 위기는 모면할 수 있었다.
전화로 지시해 주시는 곳을 찾아 헤맸다. 이곳에는 주로 회원권과 개인 사물함의 이용기한이 만료되었음에도 짐을 빼가지 않아 며칠간의 유예기간을 주다가 끝끝내 찾아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버려진 물건들을 따로 모아 날짜별로 보관한 곳이었다. 작년치부터 쌓여있으니 양이 꽤나 많았다. 짐이 들은 포대들이 무덤처럼 볼록하게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내가 찾는 포대는 이와는 다른 포대였다. 개인 사물함 유기되었던 물건들은 언제 그 주인이 다시 찾아올지 몰라 함부로 손댈 수가 없다. 주인은 분명 있으나, 그 주인이 불명확한 신발들을 모아 뭉쳐둔 포대를 찾아야만 했다. 넘어질뻔했던 자세 그대로, 쭈그려 앉은 채 한 손으론 난간을 잡고, 게처럼 다리를 옆으로 하나씩 뻗어가며 서두르지 않으며 내려갔다. 발목이 시큰거렸다.
몇 칸쯤 더 내려가자, 원하던 포대를 찾았다. 사람들이 개인사물함을 쓰지 않고서, 무단으로 탈의실 신발장에 두고 다니는 신발들이다. 짐을 두고 다니지 말라는 경고를 여러 차례 드렸음에도 불고하고 무시당했던 신발들이 결국엔 붙잡혀 이 어두컴컴한 지하실로 떨어진 것이다. 편하게 물건을 두고 다니고 싶으면 유료 사물함을 사용하면 될 것을, 다들 만 원이 아까워 규정을 지키지 않는 모습에 답답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긴박한 상황에 요긴하게 쓰이다 보니 도리어 그들의 뻔뻔함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전화를 끊고 마치 바나나 덩이를 발견한 원숭이처럼 신나게 데스크로 달려갔다. 포획해서 잡아온 포대를 펼쳐보니, 다섯 켤레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중에서 한 켤레는 말랑거리는 젤리슈즈였다. 다른 하나는 슬리퍼였다. 나머지 세 켤레는 다행스레 운동화였다. 얼마 되지 않는 운동화 수에 난감했다. 이 중에 240 사이즈가 있어야만 했다.
흩어진 운동화들의 짝들을 맞추어 회원님 앞에 진열했다. 이왕이면 딱 맞는 사이즈를 찾아 드리고 싶었으나, 들춰본 운동화 속에는 외국 기준 사이즈표가 나와있거나 밑창이 너무 닳아버린 탓에 표기가 지워지고 없는 상태였다. 또 다른 하나는 235였으나 의외로 또 발이 맞을지도 모르니 일단 옵션으로 끼워 넣을 수밖에 없었다.
뽑히지 않을 것 같은 나무처럼 서 있던 회원님은 그제야 의자에 앉아 신발을 신어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신어본 신발은 중간에서부터 꼈는지 도중에 발을 빼셨다. 두 번째 신발은 수월하게 발이 들어갔다. 발가락 앞코를 꾹꾹 눌러보셨다. 일어나 제자리에서 걸어보며 편안함을 가늠하셨다. 통과일까? 떨리는 마음으로 어떠시냐 여쭈었다.
"네, 신을만해요."
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신발을 두고 다니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찾으러 오신다면 제 간식도 같이 얹어드릴게요. 아무튼, 주인 잃은 신발을 신은 회원님은 그대로 러닝 머신 위에 올라타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사이즈가 괜찮은지, 잠시 뛰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포대 안으로 다시 신발을 가지런히 담아 넣었다.
대충 사건을 정리하고 나니 매니저님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잠에 잠긴 목소리를 억지로 깨운 티가 역력했다. 생전 전화 한 번 안 하는 내가 어쩐 일로 전화를 걸었을까. 그가 걱정하는 마음이 전화기 너머로까지 들려왔다. 나는 이런 상황이 일어났으며, 점장님 지시대로 우선 처리했다고 전달했다. 고생했다는 인사로 통화를 마쳤다.
운동화를 다시 돌려받으며 짐을 다시 찾아줄 것을 약속했다. 회원님의 사물함 위치가 다행스럽게도 바로 전면에서 CCTV가 찍히는 각도에 놓여있었다. 이 정도면 인상착의가 선명하게 찍혔을 가능성이 높아, 범인을 잡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만 나의 상상력은 제2의 상황으로 이끌었다. 범인이 훔쳐간 신발을 중고시장에 헐값으로 팔아넘겼으면 어쩌나 하는 식의 가정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운동화가 비싸니 그것만큼은 꼭 되찾길 바란다는 회원님의 말에 검색을 해 보았다. 명품이나 브랜드에 딱히 관심이 없는지라 운동화 한 켤레가 비싸봤자 얼마나 비싼지 몰랐는데 한 켤레에 약 35만 원 정도 되었다. 만약 운동화를 못 찾아주면 헬스장 측에서 이 값을 얼마 정도 물어내줘야 하나?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은 짐을 찾는 게 가장 일 순위였다.
남은 근무시간 동안에는 캡사이신에 버금가는 회원님의 매운 눈초리가 얼굴에 계속 남아 나를 허둥지둥하게 만들었다. 익숙한 업무 루틴인데, 휴지를 갈러 가면서 휴지를 챙겨가지 않는 둥,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매운맛에 탈탈 털린 육신으로 퇴근을 하자, 오후에 출근해 CCTV를 돌려본 매니저님에게 연락이 왔다.
"잉어야, 짐 찾았다. 회원님한테 연락해서 본인 짐 맞는지 확인도 받았어."
도둑을 그렇게 금방 잡을 수가 있나?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전개였다.
이 일은 즉슨, CCTV를 판독한 결과 회원님이 배정된 개인 사물함이 아닌 열려있는 다른 사물함에 짐을 두고 가신 것이었다. 애당초 이 사건에는 물건을 훔쳐간 도둑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황당함이 몰려왔다. 본인이 엉뚱한 곳에 짐을 잘못 넣어놓고서는 어떻게 그렇게 내게는 화를 잔뜩 내고 갔단 말인가?
"오늘 너무 고생했다. 너한테 죄송하다고 전해 달라시더라."
한순간에 상한 마음이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사과에 풀릴 리가 없었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었다면 그러한 실수를 충분히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회원님은 20대 후반으로 나보다도 어렸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살아야 지정된 사물함 번호도 확인하지 않고서 짐을 넣고 갈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숫자를 뒤집어서 착각한 유사 번호에 해당하는 사물함도 아니었고, 지정 사물함의 주변에 위치한 사물함도 아니었다. 혹시 아르바이트생을 압박해서 없어진 신발에 대해 피해 보상금을 물어내려던 일종의 자작극이 아니었을까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하루 종일 마음 졸였던 피로가 몰려왔다. 결과적으로 짐은 도난당한 적 없이 헬스장에 예쁘게 보관되어 있었으니 잘된 일이다. 다음날 헬스장에서 마주친 그녀는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어제는 제가 실수했어요. 죄송해요."
마음 같아서는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노려볼 수 있냐고 따지고 싶었다. 당신 때문에 넘어져 시큰거리는 발목에 파스도 사다 붙인 파스가 당신 눈빛만큼이나 매웠다고 울어버리고 싶었다. 내 감정과는 정 반대되는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내며 얼굴에 미소를 건 채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답했다.
"괜찮아요, 그러실 수도 있죠. 짐 찾으셔서 다행이에요."
이렇게 나는, 지쳐가는 삶을 하루 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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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 작가 [지친 잉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