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사물함 도난 사건
: 분명히 잠그고 갔다니깐요?!

헬스장 클럽에서 만나요 #5

by 지친 잉어

업무에 슬슬 적응이 되어가던 차. 나의 평화를 깨뜨리는 사건이 하나 터졌다.


그날은 유독 오전에 운동하러 나오시는 회원님들이 적었다.

여유롭게 홍보글에 쓸 이미지를 제작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저기요."

눈매가 청양고추처럼 휘어진 채, 매운 눈빛을 발산하는 한 젊은 여성이 나를 불렀다.

데스크 정면에서 날 부른 것도 아닌 직원이 드나드는 데스크 입구쪽, 즉 내 뒤통수에다 대고 부르는 심상치 않은 톤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회원님은 헬스장 측에서 보낸 안내 문자를 보여주며 심각하게 말했다.


"제 개인사물함 비밀번호, 이거 맞죠?"


대체 뭐가 문제길래 이렇게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불렀을까. 개인사물함 비밀번호를 까먹은 경우라기엔 내게 보여주는 문자에 잘 적혀 있었다. 그러나 혹시나 그 문자를 발송한 직원이 오타로 숫자를 잘못 기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서둘러 명단을 꺼내 페이지를 넘겼다.


회원님이 내게 제시한 문자 속 번호와 틀림없이 같다. 불만과 화가 가득한 얼굴이지만 대체 뭐가 문제이지? 먼저 문제를 단도진입적으로 꺼내지 않는 이유는 뭘까. 말을 해 주지 않으니 괜스레 긴장감이 슬슬 돌기 시작했다. 빠른 문제 해결을 위해 결국 어떤 불편한 점이 있는지 직접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안에 두고 갔던 물건이 싹 다 사라졌어요."


데-엥.

경주여행에 갔을 때 요금을 내고 종을 쳤을때와 같은 울림이 뇌를 강하게 뒤흔드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자물쇠로 잠긴 사물함에 들어있던 물건이 사라졌다니? 잠시 그대로 얼어붙어서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정말 맞게 들은 건지, 아니 애당초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여러가지의 생각들이 한꺼번에 얽혀 뭉쳐졌다. 나의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자, 얼어붙은 내 귀에 마저 이야기를 불어넣었다.


"그때 분명히 자물쇠 잠그고 갔어요. 잠그고 갔으니까 지금 제가 비밀번호로 따서 열은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지금 열어 보니까 안에 두고 갔던 물건이 없다고요."


순간 어질했다. 도난이라니.

24시간 운영하는 헬스장이다. 야간에도 사람을 고용해서 언제나 데스크에 늘 상주하고 있는터라, 누군가가 무단으로 헬스장을 출입할 리는 없다. 굳이 출입을 하자면, 직원이 잠시 옷이나 수건을 가지러 창고로 향했다거나 탈의실 청소를 하러 자리를 비웠을 때를 노려서 잽싸게 들어와야만 가능하다. 그 타이밍을 노리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써 데스크에 사람이 앉아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면 일단 헬스장 내부로 들어와야한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오면 데스크에 앉아 있는 직원이 그 낌새를 못 알아챌래야 못 알아챌 수가 없다. 들어왔는데 출석도 안하고 어물쩡 거리면 당연히 수상히 여길 것이다. 또는 회원권 결제 상담 안내절차로 이끌어버린다던지.



우선 침착하게, 회원님에게 배정된 개인사물함을 열어보았다. 먼지까지 함께 털어갔나 싶을정도로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마치 청소라도 한 것마냥, 죽은 초파리 시체하나 없이 깨끗했다. 물건이 정말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졌다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피해자가 물품을 도난당했다는 이 사건의 증인으로서 진술해야 할 일을 위해 닫았다가 다시 열어보았다. 분명 아무것도 없다.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한다 말인가.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말이 더듬더듬 기어나와 이상하게 조합되어버렸다. 이런 나의 어벙벙한 태도가 더욱 맘에 안 들었는지, 회원님의 눈꼬리는 점점 더 빨갛게 익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신발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제거라도 빌려드릴게요."


나는 발뒤꿈치를 비벼서 신발을 벗었다. 당장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신고 있는 운동화를 빌려드리는 방법이었다. 메이커 있는 고급 운동화는 아니었지만 허리디스크가 있어 나름 의학적으로 특허를 받은 운동화였다. 내 허리를 위해 살면서 가장 비싼 값을 주고 간 운동화인지라 조심스럽게 신어서 거의 새거나 다름없이 상태라 보아도 좋았다.


"저 240 신어요."


키가 비슷해서 같은 사이즈를 착용할 거라는 나의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엄마도 같은 신발을 신고 주변에 어지간한 사람들이 모두 235를 신기때문에, 당연히 160 대의 신장을 가진 여성이라면 발 사이즈도 고만고만하게 같을거라 여겼던 나의 경솔함에 이마를 탁 쳤다. 나름 좋은 대처법이라 여겼는데 겨우 5 차이라는 사이즈 미스로 신발을 빌려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 민망해진 발가락을 얼른 다시 신발 속으로 숨겨 넣었다.



아, CCTV!

그제야 떠오른 방도가 생각났다. 길거리든 버스안이든 흘러가는 모든 순간을 녹화해주는 CCTV가 그제야 떠올랐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라면, CCTV 영상 화면이 데스크 내에 버젓이 돌아가고 있지만 조작을 할 줄은 모른다는 거였다. 마우스로 화면 여기저기 클릭하다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답답해하는 독자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나는 혹시라도 클릭 한번 잘못 했다가 녹화된 기록이 모조리 날라가 복구도 안되는 대참사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확대되어 섣불리 시도할 수가 없었다.

설령 CCTV 녹화본을 찾아 볼 수 있었다 한들, 다른 문제도 있었다. 회원님이 마지막으로 운동을 나오신 날이 일주일 전이었다. 즉, 그동안 나오지 않았던 7일 중, 어느날에 도난을 당했는지 일일이 다 돌려봐야 범인을 찾을 수 있단 얘기나 다름없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내가 일한 곳은 24시간 운영제 헬스장이었다. 그 모든 시간을 지금 당장 내가 일일이 다 찾아보기에는 날 곧 들이박을 것처럼 콧김을 뿜어내는 성난 황소처럼 서있는 회원님의 인내심이 좋아보이진 않았다.



당장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매니저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근무하는 시간에는 주무시고 계시기도 하지만, 어지간한 일들을 혼자 대처하면 대처를 했지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걱정없이 단 잠을 자고 계시는지 응답이 없었다.

전화부로 돌아와 다급하게 점장님 번호를 찾았다. 점장님만큼은 제발 전화를 받아주시길. 말도없이 잠수 탔던 애인이 전화를 안 받았을 때도 이보다 초조하진 않았다. 뚜르르, 떨리는 연결신호음처럼 심장이 부르르 떨렸다. 여보세요, 목소리를 듣자 안도의 눈물이 핑 날 것만 같았다.


"지금 어떤 회원분이 짐을 도난당하셨다는데, 어떻게 도와드려야할지 모르겠어요."


침착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CCTV를 보고싶은데 나는 애석하게도 조작방법은 모르고, 회원님은 당장 운동을 하러 왔는데 두고 간 운동화가 사라진 바람에 아무것도 못 하고 계시는 이 상황에서 내가 무얼 할 수 있을지 도움이 간절했다.

당신을 돕기 위해 난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를 어필하기 위해 목소리를 키웠다. 앉아라도 계시면 좋을려만, 분노로 얼굴은 물론 온몸이 단단하게 굳은 회원님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나의 손짓 하나 단어 하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다행스레도 점장님에게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지하층으로 가서 수거해둔 여성 신발들 가운데 임시로 빌려드리라는 지침이었다. 전화를 손에 놓지 않은채 지하층으로 달려갔다. 알려줄 수 있는 건 다 알려줬다며 통화를 끝마치실까봐 어린애처럼 잠시만요를 연달아 외치며 출렁이는 문어발처럼 불안을 발산했다.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은 부식이 된 건지 면과 날의 타일이 군데군데 깨져있었다. 하필이면 부서져서 덜그럭거리는 타일에 발을 디뎌서 살짝 미끄러졌다. 갑작스레 힘을 준 탓인지 발목이 시큰했다.



2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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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 작가 [지친 잉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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