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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짜는 진 Oct 10. 2020

공간과 시간이 교차된 결과물, 직조 (2)

직조하기


정경이 끝난 실을 베틀에 올려야 한다는 설명을 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사침대'이다. 정경을 하는 과정에서 실의 끝쪽을 X자로 교차하여 그 사이로 사침대를 끼워야 한다. 그래야지 실이 엉키지 않고 정경대에 쌓인 순서에 맞게 잉아와 바디를 통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침대는 세로실이 베틀 안에서 잉아와 바디를 지나 직물빔에 연결된 막대에 고정될 때까지 올곧게 갈 수 있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



정경대에 정경을 할 때 실을 X자로 교차하여(왼) 그 사이로 사침대를 끼운다. (오)


사침대와 함께 260가닥의 실을 엉키지 않게 조심하며 정경대에서 내려 베틀에 얹은 채로 경사빔에 종이와 함께 감는다. 이때 실을 정돈하면서 가지런히 감아주어야 베를 짤 때 편하기도 하고, 직물도 고르게 나온다. 실이 한 가닥만 늘어지거나 어딘가에 걸려 당겨지지는 않았는지 실을 경사빔에 감는 내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경사빔에 실을 다 감은 후에는 사침대에 교차된 순서대로 실을 잉아(=종광)에 끼워야한다. 잉아에 실을 끼울 때에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왜냐하면 잉아는 직물의 패턴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잘못된 번호의 잉아에 실을 끼우게 되면 그 한 가닥이 있는 부분만 잘못된 패턴이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4종광 베틀에 실을 끼운다고 했을 때, 12341234... 이렇게 260 가닥을 끼울 것인지, 1234321로 끼울 것인지 43214321, 12123434로 끼울 것인지에 따라 모두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다양한 패턴의 직물들


잉아에 끼운 실은 처음에 계획한 실의 간격에 맞게 바디에 끼운다.

바디에 끼운 실은 직물빔과 연결된 막대에 연결하여 팽팽하게 고정한다. 이제 직조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바로 가로실을 끼워서 직조를 시작하면? 안.된.다.

아니, 뭐 안 될 것은 없다. 단지 처음 몇 cm 정도는 세로실이 고르게 퍼져있지 않기 때문에 직물이 고르게 나오지 않으므로 열심히 짠 직물을 잘라버려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을 뿐이다. 이러한 불필요한 수고를 덜기 위해 종이막대를 끼워 세로실을 정돈한다.


종이막대를 끼우기 전에는 실을 묶어놓은 상태 그대로 경사가 뭉쳐있다. (왼)           종이막대를 끼워 경사를 고르게 정돈한 모습 (오)


이제 정말로 직조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골치아픈 순간이 모두 지나간 것 같지만 사실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잉아와 연결된 페달을 순서대로 밟아 짜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엉뚱한 패턴이 나오게 된다. 단순한 평직의 경우에는 13/24만 반복하면 되지만 (숫자가 함께 있는 것은 두 개의 페달을 같이 밟아야 한다는 뜻이다.) 복잡한 패턴의 경우에는 234/134/124/123, 아니면 1/2/3/4/123/124/134/234 등, 마법의 주문을 외우듯이 중얼거리며 짜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처음 정해놓은 대로 짜기만 하면 규칙적인 패턴을 얻을 수 있다.


"정해진 대로 실을 끼워 짜기만 하면 됩니다. 참 쉽죠?"



세로실 사이로 가로실이 수백, 수천번씩 지나간 후에야 완성되는 것이 직물이며, 이 과정이 바로 베짜기이다. 그러니까 결국 '베짜기'란 세로실로 이루어진 '공간'과 가로실로 쌓인 '시간'을 엮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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