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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짜는 진 Sep 26. 2020

공간과 시간이 교차된 결과물, 직조 (1)

정경하기


첫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성공적인 베짜기(=직조)를 위해서는 정확한 계획이 필요하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다보니 제멋대로 들쑥날쑥 지저분하지만,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손으로 써서 정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직물의 폭과 길이를 정하는 것이다.

직물의 폭을 정할 때에는 실의 굵기와 천의 밀도를 함께 결정해야 한다. 실의 굵기와 천의 밀도에 따라 베틀에 어떤 바디를 끼울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격이 다른 세 개의 바디(왼)와 전통베틀의 바디(오). 전통베틀의 바디는 굉장히 촘촘하다.


굵은 실을 사용할 것이라면 당연히 바디도 간격이 넓은 것을 사용해야겠지만, 가는 실을 사용할 경우에는 바디의 간격이 좁은 것을 사용해도 되고, 의도하에 성근 직물을 짤 것이라면 실의 굵기에 비해 간격이 넓은 바디를 사용할 수도 있고, 바디 한 칸에 실 한 가닥이 아니라 두 가닥씩 끼우거나 반대로 한 칸 건너 한 칸에 한 가닥씩 끼울 수도 있다. 이것은 직물의 패턴 자체 뿐만 아니라 직물의 용도에 따라서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성근 직물이라면 장식용으로는 괜찮을 수 있어도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기에는 쉽게 마모되거나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직물의 폭과 사용할 바디가 결정되었다면 이제 실의 가닥수를 계산해야 한다.

예를 들어 1cm에 5칸인 바디를 사용하고, 보통 밀도의 폭이 50cm인 직물을 짤 예정이라고 하면 5*50=250 가닥의 세로실이 필요하다. 여기에 패턴에 따라 직조를 하면서 폭이 줄어드는 정도를 고려하면 대략 260 가닥의 실을 준비해야 한다.


다음으로 계산해야 할 것은 세로실의 길이이다. 필요한 직물의 길이가 1m라면 베틀에 걸어 매듭을 짓고 앞뒤로 잘려나가는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잘려나가는 정도는 베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넉넉하게 대략 1.5~1.7m 정도로 계산하고나면 정경 준비 끝!



빈 정경대(왼)와 정경 과정을 연출한 사진(오)


정경대의 각 막대에서부터 다음 막대까지의 길이를 재고, 어느 막대에서 시작해서 어느 위치를 거쳐 어디에서 끝을 낼 것인지를 정한다. 한 번 왕복하면 정경대에 걸리는 실은 두 가닥이 되는 것이니 필요한 가닥수의 1/2만큼 반복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1.7m로 일정한 길이의 실을 정경대에 130번 반복해서 걸어 260가닥의 실을 준비하는 것이 바로 '정경'이다.


이렇게 준비한 세로실은 베짜기의 과정에서 '공간'에 해당한다. 가로실이 좌우로 반복하여 지나다닐 '공간'을 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베틀 위에서 정해진 공간을 수정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정경이 끝난 세로실을 정경대에서 내려 베틀에 올릴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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