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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버금 Jun 16. 2023

액자 앞에 서서 어둠을 희석하다.

ㅁㅣㅅㅜㄹㄱㅗㅏㄴㄴㅏㄷㅡㄹㅇㅣ

액자 앞에 서서 어둠을 희석하다.     

선천적으로 내향인인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화려한 조명이나 왁자지껄함, 춤으로 가득 찬 공간은 피로감과 번잡스럽다는 느낌만을 줄 뿐이다. 어릴 때는 이런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람들과의 모임이 불편하고,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잘 몰랐으며, 코드가 맞지 않는 유머에도 과한 리액션을 해 가며, 분위기를 흐릴까 노심초사하곤 했다. 모임이 파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언제나 후회와 자책과 이제야 혼자 있게 되어 편안하다는 후련함이 묘하게 뒤섞여 가슴 한 편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당시의 나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유쾌하며, 가는 곳마다 사람이 따르는 A 선배를 참 부러워 했었다. 선배는 모임에 새로 들어온 사람부터 기존의 사람들까지 세심하게 챙겼고, 스몰토크를 나누는데 주저함이 없었으며, 어색하고 불편해 죽겠다는 기운을 풀풀 풍겨대는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눈맞춤 해 가며, 근황을 물어오곤 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선배가 좋았고,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선배가 있으면, 대화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등장과 동시에 모두의 환영을 받는 사람.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저리도 화목한 인간일 수 있나, 대화 주제가 끊이지 않을 수 있나 무던히도 많이 고민했었다. 나는 왜 저런 사람이 될 수 없나, 내게 문제가 있나, 어떻게 해야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용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사람의 분위기는 따라한다고 되는 종류의 것이 아님을 그 때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멋져보였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었다.


나 자신의 성격과 기질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 갈 때 즈음 감정 독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더 편안히 여긴다는 것과 공감할 수 없는 대화에 ‘음- 너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흘려넘기면 된다는 것, 일에서 나의 생활을 분리시키는 것이 마음 관리에 이롭다는 것,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등등. 주체성이라는 기준을 조금씩 다져 밟기 시작하자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유연함이 생겼다.


덕분에 사는 것이 조금 편해졌다. 타인의 감정과 상황에 스스로를 섞지 않게 되었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여유도 생겼다. 물론 지금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밤낮없이, 잠 못 자고, 끼니를 거르며 곱씹는 일은 많이 사라졌다. 대신에 비행기모드! 근심걱정을 유발하는 상황에서 한 발 벗어나 부정적인 감정을 희석시키는 시간을 가지며, 빠르게 돌아가는 뇌를 한소끔 식히게 되었다.


환기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나는 미술관을 찾는다. 마티스나 호안 미로 같은 색채를 잘 쓰고, 동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좋아하는데, 그들의 작품은 그저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묵은 감정이 스르르 풀리곤 한다. 작품 속의 경쾌하고, 밝은 인물들은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웃고, 노래하고, 재잘댄다. 어린 시절의 놀이터를 연상시키는 그들로 인해 잠시나마 빽빽한 현실에서 벗어나 노란 에너지를 충전받는다.


전쟁과 가난, 정치적 박해로 인한 타국으로의 망명.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외부적 조건이 남긴 상처들을 이들은 그림으로써 극복해 낸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여러 점의 작품들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유효한 감상을 자아내며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격동의 시기를 보낸 이들이 간절히 바라던 평화와 내면의 행복, 건강한 삶은 세기를 넘어 사는 현대인의 소망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경쟁과 빈부격차,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부활의 기회 등은 외형만 달리 했을 뿐, 소리 없이 개인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셀프로 착취하는 구조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특히,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우울과 공상을 낳는데 예술계통의 사람들은 무명해도, 유명해도 실체 없는 불안 속을 방랑해야 하는지라 더욱 그렇다. 프리랜서라는 직업 자체가 언제 끊길지 모르는 일감과 씨름해야 하고, 마감의 압박, 창작에 대한 부담으로 잠들지도 깨어있지도 않은 순간을 지속해야 하는 것이 보통인지라 웬만한 버팀 없이 예술가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물론 비예술계통의 사람들의 삶에도 애로사항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나 역시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일에 책임을 갖게 되자 일상이 매우 단조롭고, 무거워졌다. 자아와 미래에 대한 고민은 돈과 사람에 대한 걱정으로 대체되었고, 그것은 이전의 불안보다 훨씬 크고, 실체적이었다. 하루는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고, 사람을 향한 실망 또한 겹겹이 쌓여갔다. 어느 순간부터 상황을 체념하고, 사람을 포기하는 것으로 순간을 모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말이다.


허무함과 권태가 찾아올 때면 어김없이 미술관으로 향한다. 나 역시 하나의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고 타인 역시 그들 각자의 삶이 힘겹다는 것. 전체 속의 나를 고려하되, 나 자신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곤 한다. 흘러가는대로 내버려 두자고. 사람의 일은 어느 한 사람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내려놓는 마음은 꽤나 뼈아프다. 나름대로 애썼고, 인내했고, 버텼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이 느끼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그냥 지금의 상황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자,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저 즐거운 이들의 마음에 동화되자, 곪아 있는 마음에 맑은 물을 마구마구 쏟아붓자. 조금이라도 묽어지도록.


싱거운 마음을 갖는 것은 현실을 살아내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어차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므로 되짚어 묻지 않으면 지나간 일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액자 앞에 서서 명화라는 정제수를 들이켠다. 붉고, 파란 저 색감들을 바라보며, 즐거운 지금 이 순간에 오래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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