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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버금 Jul 20. 2023

결석! 강제 휴일을 보내다.

잠잠잠잠잠...잠잠해지길 기다리며

생리통이 도졌다. 20년 가까이 매달 겪는 달거리건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통증이다. 땀으로 축축해진 등짝을 일으키며, 약통을 집어 들었다. 시험기간과 주말 알바로 인해 잠 못 자고, 쉬지도 못했던지라 아무래도 이번 달은 쉬이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아 강제 휴식을 가지기로 했다.


이불을 덮고, 누워있으니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났다. 여름 방학 보충수업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어김없이 생리 둘째 날이었고, 구토와 배변으로 5번 정도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양호실은 문을 닫았기에 조퇴를 했다. 아니 조퇴를 권유받았다. 약도 못 먹고 끙끙대기만 하는 고지식한 여고생이었으므로.


버스를 기다리는데 또 구역질이 났다. 눈앞에 까만색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날은 더운데 오한이 들었다. 낯이 기억나지 않는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받았고, 앞 좌석 손잡이를 잡고 바들거리며 흔들림을 참았다. 기는 듯이 걸어서 집에 도착한 이후에야 앓는 소리를 냈다.


루틴이 있었다.

1. 자궁이 쪼그라드는 신호가 오면 재빨리 화장실을 찾는다.

2. 위 속에 든 모든 음식물을 게워내거나 장을 비운다. 3. 타이레놀을 씹어 먹는다.

4. 누울 자리를 찾는다.

5.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린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순번이 다 틀렸다. 화장실은 늘 가까이 있지 않았고,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은 복통을 잠재워주지 못했으며, 누울 자리는 더더욱 잘 없었다.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한 버팀이었다. 그땐 아픈 것도, 힘든 것도 참아내는 걸 능사로 여길 때였다. 인내하는 스스로를 대견히 여기기까지 했다.


사실은 알약을 못 먹어서 그랬다. 삼키는 게 무서워서, 목에 걸릴까 봐 불안해서 나는 매달 무력했다. 타이레놀보다 탁센이 더 잘 듣는다던 약사의 충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도 탁센은 씹어먹을 수 없는 연질캡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먼 길을 돌아서야 이부프로펜 성분의 약을 만났다.

약 광고 아님. 광명의 빛이시여!

"타이레놀 사 오랬잖아"

"언니! 그날엔이 훨씬 잘 들어요. 약도 더 작잖아. 내 말 한번 들어 봐. 딱! 한 번만 먹어봐"


말 한마디에 대꾸를 세 마디씩 덧붙이던 누군가가 사 온 약이었다. 앉아 있을 힘도 없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그날엔 두 알을 씹어 삼켰다.


"배 안 아파"

"이게 직빵이라니까요. 진짜 말 좀 들어요."

오지게 말 안 듣는 애한테 말 안 듣는다는 소릴 듣다니.

분하지만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귀먹은 꼰대가 되었다는 사실도 말이다. 어쨌든 약효를 본 것은 사실이니까.


크기가 작으니 어쩌다 넘어가는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맘먹고 삼키기도 했고, 덕분에 이 정도는 삼킬 수 있게 됐다.


나도 비타민이 먹고 싶었다. 루테인, 오메가 3, 마그네슘 같은 건강보조제를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친구들도 다 챙겨 먹는다고 했고, 나도 챙겨 먹을 나이가 된 것 같았다. 동생은 이미 챙겨 먹을 나이가 지났다고 했다.


크기가 작아 보이는 종합비타민을 사다 매일 하루에 한 알씩 삼키는 연습을 했다. 따뜻한 물을 마셔보기도 하고, 빨대를 이용해보기도 하고 고개를 숙였다 젖혔다, 흔들었다, 켁켁거리는 날을 보냈다. 물로 배 채우길 여러 번, 타율이 점점 좋아졌다.


간단한 내복(內服)이 가져온 편리한 생활로 인해 약간 건강해진 기분을 느꼈다. 거창한 것 없이 예방적인 하루를 지나는 것에 만족감이 높다고나 할까. 둑이 터지기 전에 손가락으로 막아내는 묘한 승리감도 든다. 이게 다 약을 잘 먹어서 그렇다. 정말 어른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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