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ㅗㅈㅡㄴㅓㄱㅎㅏㄴㅎㅏㄹㅜ
종강을 했다. 더불어 3개월 간의 시험도 끝이 났다. ‘모의’라는 전제가 붙었음에도 꽤나 압박감에 시달리던 날들이었다. 항상 시간에 쫓기었고, 잠이 부족했다. 높은 난이도의 파트가 섞여 있음은 물론 양이 방대하여 자습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 중요했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매우 불리했다. 생계와 공부를 함께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첫날엔 내리 잠만 잤다. 양 옆으로 쌓인 옷가지와 책더미를 외면하고, 그저 누워있었다. 휴가 내내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는 이럴 때 꼭 들어맞아서, 습한 바람 냄새가 방 안에 진동했다. 눅눅하고 꿉꿉한 휴가가 될 것임을 예감하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세워두었던 몇 가지 계획을 취소하고, 쿠팡 택배를 정리했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하루가 끝났다.
9시에 눈을 떴다. 햇살이 얼굴 위로 떨어지고,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늘이 꽤나 맑았다. 저 멀리 먹구름이 끼어있었지만, 그래도 날이 개었다. 가야 돼! 가야 돼! 이때 나가야 돼!
3시간 걸렸다. 가는 길에 커피도 사 먹고, 올리브영도 들리고, 지하철 내 액세서리 상점도 기웃거렸기 때문이다. 발길 따라 찍은 사진은 흔들리는 대로, 삐뚜름한 대로 러프한 맛이 있었다. 도착예정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지만 오히려 좋아!
연꽃은 다 지고 없었다. 축제도 이미 끝난 뒤였다. 연꽃을 구경하려거든 7-8월에 와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별 상관없었다. 나는 이 한적한 풍경 속에 있고 싶었다. 연꽃 사이를 헤엄치는 거북이와 잉어가 궁금했고, 시간을 재지 않으며 한낮을 기울이는 하루가 필요했다. 느슨하게~ 뭉그적거리면서.
절에서 맡는 향내는 언제나 평안하다.
경건한 마음도 함께 실려온다.
신발을 벗고,
켜켜이 쌓아놓은 방석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양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합장.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앞이마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염주알을 하나씩 돌린다.
감사인사 한번.
소망전달 한번.
셀프다짐 한번.
몸을 일으켜 마주한 불상 앞에서
감사인사 한번.
소망전달 한번.
셀프다짐 한번.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볼품없는 사람들도 떠났다.
성숙은 나이와 상관없고, 품격은 부모 됨과 관련 없다는 것이 가을을 맞이하는 소감의 전부인지라 헛헛함이 배로 깊다. 연극의 형식을 빌어오자면 같은 주제의 공연을 두 회차 끝내고 내려온 기분이다. 극단을 옮겼음에도, 무대가 더 커졌음에도 배우들의 연기나 연출 방향은 이전의 것과 똑같아서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란 말이 틀린 것이 아님을 실감한다.
.... 적당히 지내자. 틈틈이 콧바람 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