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ㅔㅇㅓㅈㅣㄹㄱㅕㄹㅅㅣㅁ
이 사람은 늘 화가 나 있다. 평상시 감정상태도 하이한 편이다. 작은 일에 혼자 뻥! 터져서는 여러 사람을 붙들고 하소연을 해댄다. 딴에는 공감을 받고 싶었던 모양인데, 듣는 사람 입장에선 왜 이만한 일로 화가 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별 것 아닌 일을 별 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느껴지고 웬만해선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엮이면 피곤해지니까!
그럼에도 자신은 늘 피해자다. 이렇게 분노하는 것도 내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기구한 인생이고, 팔자가 박복해서 돈도 사람도 붙어 있질 않는단다. 이건 자신의 입장이 곤란해질 때마다 눈물, 콧물 쏟아내며 내뱉는 단골 레퍼토리다. 정말이지 보는 사람이 민망해서 자리를 뜰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것이 고역이다. 입을 꾹 닫고, 곁눈질해 가며 심기를 살피느라 진을 뺀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또 터질 테니 몸을 사리는 게 이득이다. 애석하게도 본인은 자신의 말빨이 사람들에게 잘 '먹힌다'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매번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라 자부하면서.
그래. 나도 진심이라 생각한다. 원체 꾸밈이 없고, 남의 일도 내 일처럼 여기는 사람임은 맞다. 퍼주는 거 좋아하고, 으레 하는 빈말에도 크게 기뻐하는 걸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니다. 인정한다.
그런데 힘들다. 이 사람의 기복을 감당하기 버겁다. 도무지 진정할 줄 모르고 버럭버럭 날뛰는 것을 보고 있자니 짐승 같지! 인간 같지가 않다. 속에서 활활 타는 불길을 모조리 쏟아내야 잠잠해진다. 앉은자리가 까맣게 타는 것은 덤이다. 이러니 사람이든, 물건이든 남아나는 게 없다. 팔자가 드센 건 성격 탓이다.
이쯤 되면 간이며, 쓸개며 다 떼주는 버릇도 주위 사람들이 이런 자신을 못 견디고 떠날까 봐 미리 깔아놓는 밑밥이 아닌가 싶다. 이를테면 납작 엎드려 내미는 사과 내지는 외로워질 앞날이 두려워 강제로 쥐어주는 촌지인 셈인데 뭐가 됐든, 배알 없는 짓이라는 건 똑같다.
그녀를 대하는 사람들도 둘로 나뉜다. 품는 쪽에서는 대체로 악의는 없다, 사람은 좋다는 식의 평을 하고, 외면하는 쪽은 답이 없다, 대화가 안 된다며 절연의 멘트를 남긴다. 후자의 대부분은 이 사람의 입김을 직접적으로 대면해 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그녀보다 나이가 적거나 직위가 낮거나 둘 다에 해당된다. 파편은 주로 약자를 향해 더 강하게 튄다.
성마른 기질은 유전이라 쳐도 사람 가리는 재주까지 이해하긴 어렵다. 참을 필요가 없는 대상에 대해서 참지 않는 것이다. 이쯤 되면 가식 없다는 자찬마저도 의문스러워진다. 그냥 참을성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곁에 선 누군가가 침착하셔라, 천천히 하셔라 만류해 봐도 제 스스로도 못 이기는 성미를 누가 이길 수 있으랴. 제 풀에 꺾이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전제 없는 진심, 대가 없는 호의와 같이 순도 100%의 감정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타산이 얽혀 있지 않은 관계도 없다고 봐야 한다. 돈 때문에 부모 형제도 의절하는 마당에 무조건적이 희생이나 손해 없는 장사라니 가당치도 않다. 있다 치더라도 그것 역시 감정적인 빚이 되어 애매한 상황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다.
기세를 다투는 속 시끄러운 전쟁의 결말은 파탄이었다. 누군가가 제거되었고, 끝나는가 했지만 평화를 모르는 그녀는 새로운 타깃을 찾아 제2의, 제3의 전쟁을 시작했다. 눈에 거슬리는 타인의 결점을 낱낱이 고해가며, 솔직을 무기 삼아 전투를 지속해 나갔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이 두려워졌다. 친해지는 것은 반드시 불편해질 가능성을 동반했다. 나의 과거, 사생활, 상처 등은 거리감을 확연히 좁혀주었지만, 거의 대부분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이때문에 경제적인 공동체 안에서 다가오는 누군가를 나는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쉽게 호감을 표현하고 상처를 드러내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았고, 그만큼 상처받기 쉬웠다. 결말이 좋지 않았다.
무감한 인간이 되어간다고 느끼고 있다. 속사정이 있겠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넘겨짚을 뿐, 구체적으로 묻지 않게 되었다. 떠도는 말들을 주워듣다 보면 대강의 퍼즐이 맞추어질뿐더러 타인의 불행에 쓸 에너지도 없다. 알아서 해결했으면 좋겠고, 스스로 잘 살았으면 좋겠고, 속내는 관심 없으니 겉으로라도 좀 친절했으면 좋겠다. 그게 왜 가식적인 건가? 예의 바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