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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버금 Nov 19. 2023

표범이 되고 싶어

다음생엔 사람 되지 말자

표범이 되고 싶다. 평원을 소리 없이 걷는 강인한 앞발을 갖고 싶다. 허기지면 영양을 사냥하고, 숨통이 끊어진 그것의 살점을 뜯고 싶다. 잎사귀 부대끼는 소리와 함께 포만감이 찾아오면 낮잠을 청하고 싶다. 든든한 크기의 나무를 골라 사지를 늘어뜨리고 싶다. 일광을 받으며 빠져드는 긴 잠은 지상의 분주함과 상관없을 것이다. 지평선 주위로 노을이 깔릴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밤은 표범의 시간이다. 길게 다듬은 발톱을 숨기고, 안광을 번뜩이며, 수풀 속을 거닌다. 체취를 잡아내는 콧김과 매끈한 송곳니, 두꺼운 어깨 근육은 가속과 도약에 적합하지만, 표범은 신중함이 특징이다. 목표물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고요하게 전진하고 일순간에 공격을 가하되, 낚아챈 후에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표범의 삶에는 허례허식이 없다. 시기와 질투도 없다. 체면 때문에 허풍을 떨거나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는다. 그저 먹고 자고 달리고 쉰다. 추위를 피하고, 더위를 식히고, 젖은 털을 말리고, 굶주림을 면한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가히 천연적이다.


본능에 충실하니 동적이다. 움직임에 집중되어 있다. 소리를 듣고, 사냥감을 포착하고, 매복해 있다가 이빨을 드러낸다. 긴장과 불안, 초조, 먹이를 놓쳤을 때의 허탈감, 성공했을 때의 승리감 등등은 동작에 붙어 오는 부산물일 뿐이다. 그는 잠자리에 들며 하루를 곱씹지 않는다.


표범처럼 살 수 없을까. 죽을 때까지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막막하다.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는 나의 상식보다 훨씬 복잡하고 얼개가 굵다는 것을 알아갈수록 더 자신이 없어진다. 직장 내 인간관계가 그저 공적이 관계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개인생활 특히 종교관계(교회라는 커뮤니티가 엄청나더이다.)로 묶여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의 소름에 대해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덕분에 직책과 평판, 이미지에 목을 매는 누군가의 행동을 이해했다. 소문과 소문의, 소문을 위한 집단에서 오래 머물게 되면 당연히 그리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그들끼리도 서로를 피곤해하면서 앞에선 웃는 가면을 쓰고, 뒤에선 욕을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서서 악수를 나누는...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나도 모르는 새에 하고 있던 일인가.


아, 표범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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