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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부터 잡아보자.

무한도전 여교수의 네버앤딩 스토리

by Weavypedian

백수가 되면서 바쁘게 굴러가던 삶이 멈췄다. 시간이 많아졌으니 짜증도 줄어들 것 같았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쉬라는 말에도, 뭘 하라는 말에도 화가 났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감정이 오르내렸고, 그런 내게 스스로도 지쳤다. 가족에게 짜증을 내고, 집안에 있으면 갑갑해서 일단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반항아처럼 “앞으로 뭘 할 건지 그만 물어봐!”라 소리치고, 거의 매일 집을 나섰다. 그럴 때마다 위안이 되었던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등산이었다.


처음 등산에 나선 것은 대학 시절 MT에서였다. 자연을 좋아하니 신난 마음에 운동화 하나 달랑 신고 따라나섰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만 좋았다. 결국 오대산 정상에 간신히 올랐지만, 정상석 앞에서 통곡하며 다시는 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이후로 산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존재였다.

그런 내가, 퇴직하기 1년 전 여름부터 다시 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삶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 머리를 비워내고 싶은 내게 산은 유일하게 그 머릿속 소란을 잠재워주는 공간이었다.


첫 시작은 지인을 따라 무작정 나선 소백산 야간 등산이었다. 아무 준비 없이 나선 길은 후회할 만큼 혹독했지만, 정상에서 맞이한 일출과 운해, 그리고 천국 같은 능선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날 소백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이겨낸 보상과 감동은 내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그날 이후,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수많은 생각이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내 등산 취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르는 내내 힘든 시간을 견디며 온전히 머릿속을 비워낼 수 있었고, 정상에서 만나는 장엄한 경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안겨주었다. 주말마다 산에 가는 일은 내 일상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힘든 일도 견딜 맛이 났다. 늘 내 건강을 걱정하던 가족들도 등산 덕분에 활기를 되찾은 내 모습을 보며 매주 응원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설악산 공룡능선’을 알게 되었다. 등산에 한참 재미를 붙이며 점점 더 큰 목표를 세워갈 때였다.

첫 소백산 이후, 등산 메이트가 된 지인과 월악산 영봉을 올랐던 날이었다. 난이도가 만만치 않은 코스를 웃으며 완주한 나에게 지인이 칭찬을 아끼지 않은 덕에 어린아이처럼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혹시 설악산 공룡능선 아세요? 제가 갈 수 있을까요? 너무 가보고 싶어요.”
“당연하죠. 이제 어디든 가실 수 있어요. 이렇게 어려운 코스를 웃으면서 즐겁게 해내셨잖아요.”

그 순간, 설악산 공룡능선을 완주하는 것이 나의 다음 목표가 되었다.


산쟁이들 사이에서 공룡능선을 다녀오면 우리나라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할 만큼, 그곳은 난이도가 높은 코스였다. 그런데 고작 10번 정도 산에 올라본 초보 등린이가 대한민국 등산의 정점이라 불리는 설악산 공룡능선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막연하고 두려웠지만, 이름마저 거대한 ‘공룡능선’에 도전할 생각에 가슴이 뛰고 신이 났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함께 새해 첫 일출을 보러 갔던 바로 다음 날, 그는 이 세상 어떤 산도 함께 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함께 공룡능선을 가겠다던 약속은 지켜질 수 없게 되었고, 나 역시 몇 달 뒤에는 사표를 내며 백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상실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머릿속은 또다시 매일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친구의 몫까지 공룡능선을 완주하겠다는 결심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막상 마음은 먹었지만 혼자는 두려워 산악회에 가입하기로 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던가. 한 산악회 일정표에서 5월에 예정된 공룡능선 일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막 봄이 시작된 3월이었다.


예상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첫 산악회 참여는 삼일절 기념 국기봉 종주였다. 일행 모두 얼마나 빠른 속도로 산을 오르내리는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결국 난 중도 포기를 선언해야 했다. 혼자 하산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일행 전체가 완주하지 못하고 내려오게 되었다. 모두에게 너무 미안했고,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산에 오를 때마다 “저 꼭 공룡 잡으러 갈 거예요!”라고 외치며 스스로에게 목표를 상기시켰다. 초보자인 나를 비웃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도 느껴졌지만,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산에 올랐다. 작은 산을 완주할 때마다 내 안에서 조금씩 자신감이 자라났다. 그리고 나의 진심을 느낀 친구들이 하나둘 해 낼 수 있다며 날 응원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도전의 날, 설레고 두려운 마음에 잠을 설쳐 겨우 2시간도 못 잔 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장 16시간 만에, 간절함 하나로 공룡능선을 완주했다. 설악산 소공원을 빠져나오는 마지막 등산객으로 버스에 오르며, 비로소 목표를 이뤘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에 말할 수 없이 큰 감격이 밀려왔다.


2024년은 정말 다사다난한 해였다. 삶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었고, 그 속에서 배운 것도 많았다. 공룡능선을 넘은 후에도 나는 한동안 방황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오며 나의 인생 2막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돌아보면, 이 모든 과정은 오랜 시간 가르치는 일만 하던 나에게 주어진 값진 배움의 시간이었다. 공룡능선은 단순한 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의 거대한 장애물이자 극복해야 할 공포와 좌절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거대한 ‘공룡’을 넘고 나니, 내 스스로가 그 어느때 보다 믿음직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고통 없이 배울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때로는 고통을 겪어야만 진정한 깨달음이 온다. 간절함이 있으면 방법이 보이고,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도 나타난다.


누구에게나 ‘공룡’은 있다. 그리고 그 공룡을 넘기 전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끝없이 부딪히고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당신도 공룡을 넘고 웃으며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 2막 시작. 공룡부터 잡아놓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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