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의 시계도 벤자민 버튼의 시간처럼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눈에는 눈물이 흐르는데, 입은 웃고 있다. 마음은 독립운동가처럼 확고하다. 이런 결정을 내린 내가 대견하다. 속이 후련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눈물은 서러움에서 비롯된 걸까?
저 질문은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들과 상담할 때 내가 늘 수십 번 반복하던 말이었다. 학생 앞에 펼쳐질 미래가 보여 안타까운 마음에, 더 현명하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하도록 돕고 싶어서였다.
사표를 내고 결연히 나가겠다는 나에게도 많은 이들이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몇몇은 내가 겪은 마음고생을 알아서 잘한 선택이라며 훗날을 응원했지만, 대부분은 후회하지 않겠느냐며 걱정했다.
재미있는 건, 내 대답이 자퇴를 희망하던 학생들과 똑같았다는 것이다.
“네, 가족들도 제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어요. 그동안 고생했으니 잠시 쉬는 것도 좋겠다고 했어요. 저, 더 이상 못하겠어요. 아니, 안 할래요.” 문득 이 말을 하는 상황이 웃겼다. 저 질문에 대한 답변이 마치 시험지 족보처럼 내려오는 것 같았다.
가족들이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자퇴를 그렇게 쉽게 허락한다고?
학생이 진심인지 확인하려 부모님께 물어보면, 부모님은 하나같이 “말려도 소용없으니 하고 싶은 대로 두라”고 한다. 말투에는 한숨과 짜증이 섞여 있다. 부모로서 답답할 만도 하다는 생각에 내 마음도 더 답답해진다.
“집에서 이미 다 얘기 끝났어요. 엄마가 제가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전 이 학과랑 안 맞아요. 아르바이트하고 돈 모아서 다른 걸 전공할래요.” 학생 A는 심드렁하게 말을 쏟아냈다.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고개는 여전히 푹 숙여져 있었다. 자퇴서에 사인해 주지 않는 내가 불편한 듯, 나를 피하려는 게 역력했다.
“알아서 하라고?”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했다. “그게 진짜 네가 결정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니? 너도 알잖아. 계속 고집부리니까 엄마가 짜증 나서 그러신 거지.”
A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금방 다시 시선을 내렸다.
“아니에요. 저 진짜예요. 제가 돈 모아서 하고 싶은 거 할 거예요.”
여전히 같은 반응이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 표정은 수없이 봐 왔다. 흔들리는 눈빛, 민망함을 숨기려는 몸짓. 그래도 속으론 자기 확신을 얻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 그럼 너 자퇴하고 바로 뭐 할 건데?”
녀석이 잠시 뜸을 들인다. 그러더니 뻔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동안 못 쉬었으니 좀 쉴래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아르바이트해서 돈 모을 거예요.”
잔소리가 많기로 유명한 나지만, 이번엔 입이 막혔다.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아이가,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못 쉬었다는 걸까. 하지만 그 말을 곧바로 내뱉을 순 없었다. 한 번 더 심호흡을 하고 말을 꺼냈다.
“너 힘들었어? 그래,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말해 봐.”
A가 잠시 나를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대꾸도 하지 않으니, 꼰대 마인드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뭐가 그렇게 힘든데? 너, 나보다 더 힘든 거야?”
그제야 꾹 다물었던 입을 다시 연다. “교수님은 좋아서 하시는 거잖아요.”
“그래 보이니? 네 눈에 내가 좋아서 하는 것 같아?”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넌 뭐가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건데? 하고 싶은 게 뭐냐고. 제대로 된 계획이라도 있니? 네가 뭘 하겠다고 확실히 말하지 않으면 난 절대 자퇴서에 싸인 못 해.”
화살 같은 내 질문에 A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마지못해 답했다. “그냥 친구랑 여행 가고, 뭐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어요.”
“해외여행 가려고? 배우고 싶은 건 뭐? 뭘 배우고 싶은데?”
“해외는 아니고요… 그냥 국내여행이요. 배우고 싶은 건 아직 딱히 정한 건 없어요.”
나는 한숨을 쉬며 단호히 말했다. “그런 거, 주말이나 방학에도 다 할 수 있는 거잖아. 한 학기가 고작 15주밖에 안 돼. 방학도 그만큼 긴데 그때 실컷 해.”
자꾸 본인을 곤란하게 하는지 A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 진심이에요. 자꾸 그러시면 저 그냥 학교 안 나올 거예요.”
내 목소리도 높아졌다. “등록금 날려? 그게 돈이 얼마나 큰돈인지 알아? 아르바이트해서 돈 번다고 했잖아. 근데 왜 멀쩡히 낸 돈을 날려?”
한동안 실랑이가 계속됐다. 나는 그 녀석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다가, 화도 냈다. 그러다 다시 칭찬을 섞어가며 설득했다. 간혹 내가 너무 강하게 나갔다 싶어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본다면 마치 굿판이라도 벌이고 있는 것 같았을 것이다. 몇 시간이나 이어진 상담이 끝난 뒤, 나는 녹초가 되어 밥 세 공기는 먹어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10명 중 8~9명은 이런 집요한 내 설득에 넘어온다. 결국 눈물을 닦으며 “알겠어요. 다시 해볼게요.”라는 말을 하고 내 방을 나간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은 대부분 끝까지 잘 버텨냈다. 심지어 가장 오래된 학생은 벌써 8년째 교사로 일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 방을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자신도 확신이 없다는 뜻이다. 떼를 쓰듯 내게 말하며, 확신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에는, 잡아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아니었으면 진짜 후회했을 거라면서.
그런데, 잠깐. 나는 어떻게 된 걸까?
졸업하는 제자들에게 친정집처럼 학과를 지킬 테니 힘들 때 언제든 오라고 맹세했던 내가 사표를 냈다고?
“더 좋은 곳으로 가시나 봐요?”
“아뇨, 갈 곳 없어요. 이제 백수예요. 그동안 힘들었으니 쉬면서 직장 찾아보려고요.”
이거 역할극이나 야자 게임 같은 건가? 어떻게 내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학생들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차이가 있다면 그들보다 내가 좀 더 오래 참았다는 것 하나다.
사표를 내고 짐을 정리하면서 한참을 망설였다. 11년 다닌 직장은 그렇게 쉽게 종이 한 장, 서명 하나로 버려놓고, 눈에 들어오는 모든 물건에 의미가 있어 쉽게 손을 떼지 못했다. 그동안 모아둔 자료와 제자들과 함께한 추억이 담긴 것들을 어떻게든 붙들고 싶어 눈물만 났다.
결국 하나도 스스로 정리하지 못했고, 보다 못한 학생들과 가족이 나서서 속전속결로 꼭 필요한 것들만 추려 짐을 싸줬다. 모두의 만류에도 그토록 당당하게 사표를 냈던 나는 모든 지난 세월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끌려 나왔다.
직장 생활 31년,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단 한 번도 울타리 밖에 나가본 적 없는 내가, 이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백수가 되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