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본부장으로 살아남기 : 2편
본부장(이사)라고 하면 왠지 사원들과는 무언가 달라 보이지만, 실상을 놓고 보면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 명의 회사원이랍니다. 중견 교육업계에서 월급쟁이 중 한 명인 IT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배웠던 다양한 조직 운영과 업무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모든 본부원들에게 식사&사케 사주기 프로젝트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본부원들의 신뢰를 얻고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스스로 알아서 자발적으로 시작한 나만의 프로젝트였다.
회사원이라면 다 알겠지만, 솔직히 임원과 같이 밥을 먹거나 술을 먹었을 때 편하지 않다 고 이야기할 것이고 실제로 불편하다. ^^
그리고 같이 식사 또는 술을 먹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을 할까? 대부분의 회사원은 식사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거나 또는 본부장이 질문하는 내용에 대해서만 아주 짧게 몇 마디 답변하는 게 전부일 것이다.
물론 최근에 많은 스타트업 회사들의 임원들이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도입해서 필자와 같은 꼰대 임원이 아닐 가능성이 많겠지만, 안타깝게도 필자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중견기업이며, 필자 역시 평범한 약간의 꼰대끼가 있는 임원이다.
사실 왜? 본부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역지사지의 마음 보면, 첫 번째가 자발적이지 않은 자리여서 일 것이고,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사람과 함께 앉아서 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할 수 밖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고민하고 생각해도 본부장이 동네 아는 형과 같은 편안함을 주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본부원들과 식사&술자리를 가지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절대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지 않을 것, 거절당해도 서운한 표정을 짓지 않을 것, 4명을 넘지 않을 것, 가능하면 단둘이는 피할 것이었다.
나 역시 이 회사에 입사 후, 한 동안은 대표님과 식사 자리가 매우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런데 이러한 자리도 서너 번을 넘어가다 보니 조금이나마 편해졌고 몇 달 후에는 스스럼없이 나의 생각들을 이야기하는 자리로 바뀌게 되었다.
단순히 본부원들과 밥 한번 먹고 사케 한잔씩 사주자 라는 의미의 프로젝트였다면, 시작도 하지 않을 프로젝트였다. 본부 회식을 하면서, 사케 한잔씩 돌리면 끝나는 간단한 프로젝트였을 테니 말이다.
필자가 식사와 사케를 나눈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의미가 있다. 술을 정말 좋아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직원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 소주는 누구나 먹지만 사케는 사실 1~2년 차 회사원들이 사 먹기에는 당연히 부담스러운 가격의 술이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 식사&사케는 어떻게 먹으면 될까? 파트 단위로 모여서, 그냥 눈에 보이는 사람을 골라서, 나이순으로?? 직급 순으로?? 여러 가지 기준과 고민이 있었지만, 그냥 눈에 띄고 윗사람을 크게 불편해하지 않아 보이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직원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였다.
첫 술자리를 가진 A 대리의 경우도 처음에는 전혀 편해 보이지 않았지만, 두 번 세 번의 자리를 거치면 자연스러운 술자리가 되었고 이어 A 대리와 친한 L 과장을 시작으로 서서히 관계를 넓혀 나가게 된다.
사실 L 과장과 나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이다. 이것도 이력서를 통해 사전에 알고 있었지만 술자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학연(?)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를 통해 조금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러한 학연으로 인해 해당 인력에 대해 평가를 좀더 잘준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이러한 자리들이 이어질수록 본부원들은 서서히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친해지게 된 팀원을 중심으로 한 번에 최대 4명을 넘지 않게 일주일에 2~3그룹의 원들과 삭사 또는 사케를 먹기 시작했고,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모든 직원들에게 식사&사케를 사주는 프로젝트는 3개월쯤에 걸쳐 마무리 짓게 된다. 물론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직원들과는 가벼운 맥주 또는 식사를 사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주나 맥주보다는 사케를 선택한 건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사케 먹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본부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며, 회사에 대한 아쉬운 점, 타 본부에 대한 불만 등을 알 수 있는 자리였고, 사원급 친구들과도 깊은 교감을 많이 나눌 수 있는 의미가 있는 시간들이였던것 같다.
약 3개월간에 걸쳐 "본부원들에게 식사&사케 사주기 프로젝트"를 마감하고 나니, 나 스스로도 참 대견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본부원들이 자기들끼리 술 먹으러 갈 때
본부장님 저희 지금 번개로 가볍게 한잔 하러 갈 건데. 같이 가시겠어요?
본부장님 지난번에 A 대리만 사케 사주셨다던데, 저는 또 사케 안 사주시나요?
라고 이야기하는 직원들이 많인 늘어난 것을 보면 꼰대 짓보다는 본부장으로서의 역할을조금은 더 잘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이와 더불어 또 팀장님들과 저녁을 먹는 일도 많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회사에 대한 분위기도 파악하고 팀원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도 듣기도 하고 왜? IT본부가 이렇게 타 본부에서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되었는지? 왜 본부원들의 어깨가 이렇게 처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상황도 듣게 되었다.
물론 나는 IT 본부장이지만 회사의 임원이다. 단순히 IT본부원들만의 이야기를 듣고 IT부서를 좋아하지 않는 부서를 비난하기만 하면 결국 해결 방법은 마련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타 본부에 있는 본부장님들과 팀장들과 업무 개선을 위한 미팅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양쪽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왜? IT본부원들의 불만과 마케팅, 영업부서의 불만에 대해 알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IT본부의 문제이거나 마케팅/영업부서의 문제라기보다는 전반적인 업무 시스템이 매우 낡고 자동화가 되어있지 않았다보니 IT 업무 생산성이 지극히 떨어지는 점이 이러한 불만의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이었다.
예를 들면 홈페이지의 메인 페이지의 배너를 하나 교체하는데
무려 반나절의 시간이 디자이너 > 퍼블리셔 > 개발자 > 웹기획자의 담당자를 거쳐서야 반영이 되는 것이었다. 만일 운영 툴 자동화가 잘 되어있다면 디자인 > 웹 운영 담당자를 통해 배너가 반영이 될 것이고 반나절 아니라 10초의 시간이면 해결이 될 것 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낡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개발 환경과 운영 환경이 만들어져있다 보니 유관부서에서는 요청사항이 기대했던것에 비해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하지 했고 개발부서에서도 시스템적인 한계로 인해 요청부서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업무 속도를 보여주지 못했던 점이 가장큰 오해의 시작점이였던것 같다.
아무래도 시스템이 자동화 되어있지 않다 보니 개발자에 의한 실수도 자연히 많아 지게 되었고 결국은 개발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상황이였다.
결국은 노후화된 시스템으로 인한 IT업무 생산성이 바닥인 것이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것이었다.
만일 내가 커뮤니케이션에 소홀히 했다면, 큰 그림 큰그림만 이야기했다면? 아마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은 해결 방안도 마련하지 못했을것이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 파악 후 필자는 인프라 개선 TF팀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업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운영툴 자동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