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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Mar 16. 2020

감시와 교육, '빅 브라더'의 전략

조지 오웰 저, <1984>에 대한 서평



안타깝다. 이 책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빅 브라더에 저항하던 윈스턴은 모진 고문과 회유와 정신개조 끝에 굴복해버리고 만다. “그들은 뒤에서 내 목을 쏘겠지만 상관없다.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고 일기를 썼던 윈스턴이지만, <1984>는 “그(윈스턴)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는 구절로 끝난다.


윈스턴의 굴복을 그에게 책임 지울 수는 없다. 빅 브라더와 당에 대한 의심을 품었을 때부터 사상경찰(Thought Police)에 걸려서 애정부에 끌려가기까지, 윈스턴은 수년 동안 충분히 발버둥쳤기 때문이다.


<1984>를 읽기 전에도 ‘빅 브라더’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보았다. 보통 거대 권력의 감시나 통제를 문제 삼는 글의 상당수가 <1984>의 빌런인 빅 브라더를 언급했던 것 같다. 빅 브라더와 그의 당의 지배 수단은 두 가지다. 감시와 교육. 이하에서는 이 두 가지 지배 수단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감시


먼저 감시의 기술적 도구로 <1984>의 처음부터 끝까지 빈번히 등장하는 ‘텔레스크린’이라는 기계가 있다.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이 동시에 가능하다. 이 기계는 숨죽인 속삭임을 넘어서는 모든 소리를 낱낱이 포착한다. 더욱이 윈스턴이 이 금속판의 감시 범위 안에 있는 한, 소리는 물론이고 행동까지 감지된다. 물론 언제 감시를 받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사상경찰이 개개인에 대한 감시를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행하는지는 단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 1984, p.11.


텔레스크린은 지금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센싱’ 및 ‘네트워킹’ 기술이 구현된 사물인터넷기기라고 볼 수 있다. 인터넷의 시초는 1970년대 미국 국방부 산하의 고등연구국 연구용 네트워크인데, 이 책은 그보다도 20년 전인 1949년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조지 오웰의 상상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텔레스크린은 당의 소식이나 뉴스를 전하는 기능 및 빅 브라더와 당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색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모든 당원들의 집에 설치되어 있다(노동자들의 집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텔레스크린의 존재는 개인의 사적 공간에서 개인이 당을 욕하고 당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행위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당의 의지를 나타낸다.


빅 브라더와 당이 지배하는 오세아니아 제국에는 ‘법’이 없지만 ‘사상죄(thoughtcrime)’와 ‘표정죄(facecrime)’가 존재한다(이것만으로도 근대 법치국가의 기본 원칙인 ‘죄형법정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가령 표정죄의 경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ex. 승전 소식이 보도될 때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된다. 문제는 텔레스크린이 당원의 집에 설치되어(특히 당원의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당원의 사적 공간에서의 사상과 표정까지 감지하고 분석하고 불순분자를 색출한다는 데에 있다. 텔레스크린의 존재로 인해, 모든 당원들과 그들의 가족은 단 한순간이라도 당을 의심해서는 안 되며, 당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당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진심’이 아니라면 표정에 드러나기 때문에 바로 표정죄로 잡혀가기 쉽다. 윈스턴은 최대한 당에 충성을 다하는 척을 해보았지만, 당의 치밀한 감시를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 그의 반당(反黨)적 사상은 누출되고 말았다.


한편, 감시는 텔레스크린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 윈스턴의 동료인 ‘파슨스’은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라는 잠꼬대를 했다가, 그의 딸의 신고로 애정부로 끌려오게 되었다. 단순히 금속 기계인 텔레스크린만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당원은 가족과 친구 동료 등 모든 관계를 의심해야 하고, 속마음을 틀어놓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서술한 빅 브라더의 감시사회는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밴담이 1791년에 제안한 원형감옥 ‘파놉티콘’에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사견으로는, 파놉티콘과 <1984>가 미셸 푸코의 1975년 저작 <감시와 처벌>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본다. 권력의 지배 수단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본질은 중세나 근대나 현재나 크게 바뀌지 않았다. 우선은 피지배계층을 주도면밀하게 감시하고 그들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피지배계층에 대한 정보를 축적할수록 그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권력이 동원할 수 있는 가용인력과 물자, 그리고 시스템이 워낙 풍부하기 때문에 정보만 있으면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개개인들은 ‘혁명’을 일으킬만한 수준으로 뭉치지 않는 이상 권력의 은밀하고도 효율적인 지배에 대항하기 어렵다.



2. 교육


오세아니아에는 3가지 계층이 있는데, 내부당원, 외부당원, 그리고 노동자 계층이 그것이다. 감시와 마찬가지로 교육은 당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당은 노동자 계층에게는 부를 분배하지 않는 대신에, 그들을 교육시키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교육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노동자 계층은 절대 빈곤 계층이기 때문에 사회에 무관심하고, 소수의 특권층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들은 당면한 욕망, 그것도 아주 기초적인 욕망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당의 여러 슬로건 중 하나는 ‘노동자와 동물은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인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당은 노동자 계층을 그저 노동력의 제공 및 노동력의 재생산 주체로만 바라본다. 이들에게 충만한 당심을 심어주지 않아도 이들 계층은 당에 저항할 의지와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당은 이들에게 무관심하다. 그리고 당원들에게 철저히 금지시키는 것들을 노동자 계층에게는 자유롭게 풀어준다. 가령 섹스나 도박 같은 것들 말이다.


한편, 당원들에 대해서 당은 전혀 다른 전략을 취한다. 당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당원들에게 일방적인 정보를 주입하며, 어렸을 때부터 당의 강령을 숙지시키고, 당에 대한 충성심을 기르도록 교육한다. 그리고 당에 대한 충성심 외에 모든 욕망을 거세하거나 억제하도록 교육한다. 섹스도 쾌락이 아닌 2세 생산을 위한 당원의 의무로서만 하게끔 허용하며, 개인적인 취미를 가지거나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공동체 시간을 만든다.


당의 슬로건 중 하나인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를 살펴보자. 당은 정보를 독점하고, 기록을 지배하기 때문에 과거를 조작할 수 있다. 당의 과거에 대한 지배력은 고스란히 당원들에 대한 교육으로 이어진다. 당이 과거와 현재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일방적으로 주입함으로써, 당원들은 오세아니아가 이상적인 국가라고 착각하게 되며, 자신들이 축복받은 오세아니아의 당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만든다.


욕망을 거세하고, 정보를 왜곡하고, 당이 추구하는 유일한 가치만을 교육하니, 대부분의 당원들은(실체를 알 수 없는 ‘형제단’과 같은 저항세력을 제외하면) 당의 충실한 꼭두각시로 살아가게 된다.


전체주의 국가답게 여러 슬로건과 강령들이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슬로건들 말고도 가장 핵심이 되는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 당의 핵심 슬로건


오세아니아는 인접 국가인 유라시아와 이스트아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내부를 결속하고 당원들의 지성을 분열시킨다. 빅 브라더와 당은, 전쟁 상태의 유지를 통해 당원들이 오세아니아와 당의 승리를 갈망하게 만들며, 맹목적이고 무지한 광신자로 되게끔 한다. 표면적으로는 세 나라 간의 전쟁이지만, 진짜 전쟁은 각 나라의 지배 집단이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싸움이며, 전쟁의 목적도 영토의 정복이나 방어가 아니라 사회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당이 내건 슬로건인 ‘전쟁은 평화’란 말의 참뜻이다.


전체주의 국가가 일반 국민들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셸 푸코도 <감시와 처벌>에서 지적했듯이, 권력은 여러 역사적 경험들을 통해 ‘규율’을 통한 효과적인 지배의 위력을 실감하였다. 중세시대 때처럼 광장에서 고문하고 처형하는 ‘신체형’을 통한 공포보다(물론 빅 브라더와 당은 이러한 수단도 사용했지만), 특정 가치관과 규율을 어렸을 때부터 주입시키는 것이 대중 지배에 훨씬 유리함을 깨달은 것이다.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가정과 사회를 통해 여러 가치관과 지식들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권력이 개입하게 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권력이 심어놓은 지식들이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이 지식은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 그때부터는 따로 권력이 챙기지 않아도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기본적인 합의사항 또는 공감대로 작용한다. 일탈자에 대한 자연스러운 '낙인효과'는 덤이다.


<1984>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는 <1984>의 오세아니아처럼 흘러가서는 안 될 것이다.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고 인정받는 것이 제일 중요하며,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표현과 비판의 자유가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현대의 민주국가들은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및 법체계와 절대권력을 견제하는 시스템(3권 분립 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노든의 폭로로 알려진 미국 NSA와 같은 정보기관의 개인정보 수집이나, 각종 유출 사고로 언론에 드러나게 된 글로벌 IT 기업의 개인정보 수집 등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일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이 글의 성격과 분량상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을 논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우선은 개개인 스스로가 정보주체로서의 권리를 잘 인식했으면 좋겠다(개인정보보호법에는 정보주체에게 부여된 여러 권리들이 규정되어 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권력층에 대한 비판의 허용 정도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이제는 정보와 지식에 대해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할 때인 것 같다. 유럽의 개인정보보호법인 GDPR은 2018년 5월 25일부터 시행되었고, 해당 법에서는 EU에서 활동하는 IT 기업에 DPO(Data Protection Officer) 직책을 신설할 것을 규정하였다. 이러한 규정의 시사점으로, 우리 자신이 스스로의 정보에 대한 DPO라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5627


#서평 #씽큐베이션 #조지오웰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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