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수 Mar 24. 2020

처벌 후에 남겨진 피해자들

박주영 저, <어떤 양형이유>에 대한 서평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에 대한 불개입 풍조는 극복되어야 한다. 가정은 사적 영역이므로 공권력 개입은 가급적 자제되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명제는, 그 가정이 가정으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학대하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폭력으로 누군가에게 고통만을 안겨주고 있다면, 그곳에는 더 이상 가정이라 불리며 보호받을 사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
- 어떤 양형이유, p.28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에서 피해자지원 업무를 담당하면서 살인, 강간, 강도 등 여러 종류의 강력범죄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고 지원하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건은 가정폭력 사건이었다. 


검찰청까지 오게 되는 가정폭력 사건은 아내가 남편에게 한두대 맞고 끝나는 그런 사건이 아니다. 수년에서 수십년에 걸친 폭언과 폭행, 특히 아내에 대한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성행위, 자녀에 대한 성추행 등... 타인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더더욱 해서는 안 될 행동들이 쌓이고 또 쌓일 때, 피해자가 ‘이러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 때, 비로소 사건은 검찰청의 문턱을 넘게 된다. 


폭행을 당하고도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고, 혹여나 치료를 받더라도 상해진단서를 끊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반적인 폭행 또는 상해범죄에서 흔하게 제출되는 상해진단서조차, 가정폭력 사건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608021     


현재 내가 담당하고 있는 이 사건도, 가족들이 무려 39년 동안이나 가해자의 가정폭력에 시달린 사건이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가해자의 범행으로 한 가정은 해체되고 풍비박산이 났다. 더 나아가 어머니와 딸, 그리고 아들의 인격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다. 나는 딸과 통화를 했고, 어머니와도 통화를 했다.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가해자의 보복’이었다. 이들이 추후에 피고인에게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어떤 법제도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현재 가해자에 대한 1심 공판이 진행 중인데, 가해자에게 실형이 선고되지 않는다면 선고기일 그날 바로 피해자보호명령청구를 해서 가해자가 가족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 어떤 법제도를 이용하더라도 남은 가족들의 인생이 앞으로 회복될 수 있을지... 그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해자에게 징역형이 선고되더라도, 가해자는 길어야 5~7년이면 출소할 것이다. 설령 이 사건 이후로 가해자와 남은 가족들이 평생 마주치지 않게 된다고 해도, 어머니와 딸 그리고 아들의 인생은 여전히 상처가 가득한 인생으로 남을 것 같다. 자세한 사정은 말하기 어렵지만 남은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지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피고인이 출소할 때쯤이면 나는 8~10년 차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4개월 뒤에 대체복무가 만료되지만, 이 가정만큼은 내가 변호사로 일하는 한 끝까지 도와주고 싶다. 단순히 가해자가 접근을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 이상으로... 조금이나마 남은 삶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어떤 양형이유든... 그 양형이유는 피해자를 온전히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가해자를 처벌함으로써 어느 정도 정의가 실현되겠지만, 피해자는 그 판결문을 받아들고 여전히 남은 삶을 힘겹게 살아가야한다. 여기에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비극이 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257737

#서평 #씽큐베이션 #어떤양형이유

작가의 이전글 감시와 교육, '빅 브라더'의 전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