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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Jan 23. 2020

자본주의에 관한 신선한 관점(by 페르낭 브로델)

페르낭 브로델 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에 대한 서평



1. 들어가며


페르낭 브로델은 전후 역사학계에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프랑스 아날학파의 제2세대를 대표하는 역사학자다. 그의 주저인 <필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 및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명저로, 수많은 학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는 브로델이 그의 주저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해 1976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세 차례에 걸쳐 강연한 것을 원고 형식으로 출판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로서 단연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브로델이 말하는 ‘자본주의’란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제목에 ‘자본주의’가 들어가고 이 책의 상당한 분량이 자본주의의 ‘특징’을 설명하는 데에 할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브로델은 이 책에서 그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에 대해 명확히 정의하지 않았다. 브로델이 ‘자본주의’를 엄밀하게 정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일개 독자로서 그 이유를 탐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사료된다. 나는 그저 브로델이 말한 자본주의의 ‘특징’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을 발견하고 읽은 것이 나에게 상당히 유용하고 의미가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2. 브로델이 제창한 주요 개념


브로델은 ‘삼층집’ 모델로도 유명하다. 그는 경제사를 ‘3층집’으로 파악했다. 1층이 장기지속에 해당하는 ‘물질문명’(자급자족에 가까운 사용가치의 세계, 非경제의 세계)이라면, 2층과 3층은 이 물질문명의 구조 위에 놓인 ‘시장경제’(교환가치의 세계)와 ‘자본주의’(독점적 反시장의 세계)다. 브로델은 흔히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일시하는 시각과 달리, 시장경제 위에서 그를 지배하는 존재를 자본주의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물질생활과 시장경제를 자신의 존재 기반으로 깔고 앉아 독점으로 높은 이익을 추구하는 무언가의 활동이다. 그러기 위해 기존의 사회질서와 위계, 국가, 문화 등 온갖 영역에 침투하여 무언가의 사회적 구조물을 만들어 그와 결합해 존재하는 실체다.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83


그나마 이 책의 역자인 김홍식씨가 독자들을 위해 최대한 정제하고 정리한 내용이 이 정도이니, 평범한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브로델의 ‘자본주의’ 개념을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어차피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번역본 기준 2,800페이지)의 입문서로 평가받는 130페이지 분량의 이 책(강연 원고)로 브로델의 개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면 편하다. 나는 브로델의 주장 중 가장 흥미로운 것 한 가지로 다음과 같은 것을 소개하고 싶다. 바로 자본주의가 반(反) 시장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지적한 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거나 혹은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브로델은 자본주의에 대해,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서 시장경제를 지배하는, 시장경제와 전혀 다른 반(反) 시장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부연하자면, 브로델은 자본주의가 경쟁에 바탕을 두기는커녕 경쟁을 없앤다는 측면에서 반(反) 시장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시장경제(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일상적인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와 다른 반(反) 시장의 특징은 무엇인가? 바로 광범위한 유통 영역이다.


유통이 왜 반(反) 시장이야? 라고 충분히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브로델이 대표적인 반(反) 시장으로 뽑은, 유럽에서 아메리카 신대륙과 인도, 중국 등지를 오가며 거래하는 원거리 무역을 살펴보자. 원거리 무역업을 영위하는 거상들은 생산자와 최종 소비자 사이에 끼어들어 양쪽의 관계를 단절시킴으로써 독점적 이득을 얻는다.


일반적 시장에서의 경쟁은 세 가지(생산자와 생산자 사이의 경쟁, 소비자와 소비자 사이의 경쟁, 또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경쟁) 각도에서 벌어지는데,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가 길어지면(즉, 생산과 소비 사이에 긴 상거래 망이 형성되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작용하는 경쟁의 힘은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상인의 힘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상인은 생산자들과 마주할 때는 그들끼리 경쟁하도록(혹은 단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서 가격을 후려칠 여지가 생길 수 있고, 소비자들과 마주할 때는 그들끼리 경쟁하도록(혹은 단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서 바가지를 씌울 수도 있게 됩니다.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74~175.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를 단절시키고, ‘양자의 사정을 다 아는’ 광범위한 유통업자인 원거리 무역상인은 정보를 독점한다(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가 그의 저서 <데이터 자본주의>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러한 정보 불균형은 필연적으로 불투명하고 독점적인 거래를 야기한다). 문제는 이러한 광범위한 유통업은 아무나 영위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상단을 보내놓고 몇 년 동안 기다릴 수 있는 풍부한 자금력을 갖춘 소수의 원거리 무역상들만 이를 할 수 있다.


15~18세기에 대륙과 대륙을 넘나들어 거래를 중개하고 상품을 유통한 원거리 무역상들의 투자는 200% 이상의 엄청난 이익으로 되돌아 왔다. 이들은 막대한 자금 및 신용과 정보 비대칭을 통해 시장을 왜곡하는 등으로 독점(아무나 참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과 독점 이윤(소수에게 이익이 집중된다는 의미에서)을 누렸으며, 군주들에게 전쟁 자금을 지원할 정도로 정치적인 힘도 갖추게 되었다. 이들이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다시 자본을 축적하고 재투자하는 등으로 활동한 독점적 영역이 반(反) 시장의 영역, 즉 자본주의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브로델이 말한 반(反) 시장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거상들의 특징 다섯 가지를 살펴보면 이해가 조금 쉬울 것이다.


<브로델이 꼽은 반(反) 시장의 영역의 거상들의 특징>


1. 군주와 가까운 사이였고 국가에 협조하고 국가를 이용하는 존재였다.

2. 아주 이른 시기부터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활동했다.

3. 그들의 잇속을 위해 게임을 왜곡할 수천 가지 방법을 활용할 수 있었다. 즉 신용을 조작하는 데 더하여 양화(良貨)를 악화(惡貨)로 바꿔쳐서 한순간에 거대한 차익을 남기는 한편, 남의 노동을 활용하기 위해 소소한 임금이나 물건 값을 치를 때는 동화(銅貨)와 같은 질이 떨어지는 악화를 이용해서 경비를 절감했다.

4. 지식, 정보, 문화 면에서 누리는 우위를 바탕으로 주변에서 값나가는 것이면 무엇이든 사들여 장악했다. 즉 토지를 사들여 지대 수입을 챙기고 도시 부동산에 투자하는가 하면, 15~16세기 광산 투기에 나설 때처럼 산업 분야에도 손을 뻗었다. 이렇게 행동하는 상인 자본가들은 독점권을 장악했고, 경쟁의 틈새가 새로 생기더라도 그 싹을 잘라버리는 등 막강한 힘을 행사했다.

5. 교환 영역의 상층부에 있는 상인 자본가들은 높은 이익이 발생하는 분야라면 닥치는 대로 뛰어들었으며, 결코 일부 영역으로 전문화하지 않았다.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도 브로델의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자본주의는 상부구조의 현상이며, 소수의 현상이고, 높은 곳의 현상입니다. 자본주의의 특권과 우위는 늘 선택할 유지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독점이 사라졌다고요? 그렇다면 다른 걸 찾으면 됩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자본주의는 죽었을지 모르지만, 아들과 손자의 자본주의는 계속 이어갑니다.
- 1985년 10월 사토발롱에서 사흘 동안 진행된 ‘주르네 페르낭 브로델’ 세미나에서.


물론 그가 명확한 언어로 정의하지 않은 자본주의라는 것이 ‘유통’영역의 ‘반시장’, 즉 독점에 의존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아마도 브로델은, 자본주의는 생산, 유통, 분배, 소비 영역 어디나 들락거리며 독점과 고이윤을 추구하는 것이지, 어느 한 영역이 자본주의 본연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15~18세기의 역사적 시공을 관찰해보니 유통 영역, 그중에서도 상층부의 유통에서 자본주의가 태동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일 것입니다. 이 기간에는 생산 영역에서 큰 이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자본이 거의 그리로 들어가지 않았으며, 산업혁명 이후 산업의 생산성과 이윤이 자리를 잡아가자 마침내 생산 영역으로 자본주의가 침투하게 되었다는 게 그의 견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87.


이상의 내용들은, 나의 자본주의 ≒ 시장경제라는 막연하고도 어렴풋한 이해를 돌이켜보게 했고, 자본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물론 브로델의 주장을 절대적인 진리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브로델이 장기 지속하는 역사 속에서 변함이 없다고 본 자본주의의 게임의 규칙이, 브로델 사후 달라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아래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루어보기로 한다.



3. 브로델의 주장에 대한 비판


가. 자본주의의 개념


물론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은 필연적이다. 브로델이 자본주의에 대해 명확히 정의하지 않은 점,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여러 분야의 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개념으로 설명된다는 특성 자체에서 비판이 나올수밖에 없다. 마르크스도 베버도 전부 그들의 자본주의 개념에 대해 비판받았었다.


북유럽은 고래의 자본주의 중심지였던 지중해 지역이 그들에 앞서 아주 오랫동안 찬란하게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그냥 가져갔을 뿐입니다. 북유럽 사람들은 아무것도 새로 만들어내지 않았습니다. (중략) 결론적으로 볼 때, 막스 베버가 오류에 빠지게 된 본질적 이유는 그의 연구 초반에 근대 세계의 촉매제로 자본주의의 역할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베버가 중시했던 자본주의의 정신적 속성)가 자본주의 태동의 본질적 문제는 아닙니다. 사실 자본주의의 숙명적 과제는 사회의 수직적 위계와 부딪히는 문제였습니다.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80~81.


막스 베버는 그의 저명한 종교사회학 논문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근대적 의미의 자본주의’의 형성이 칼뱅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브로델은 막스 베버가 근대 세계의 촉매제로 자본주의의 역할을 과대평가했고, 자본주의의 태동은 칼뱅주의와 같은 정신적인 측면과 상관 없다고 하며 그의 주장을 비판한다.


그러나 브로델도 앞에서 지적하듯이, 자본주의의 무대가 북해로 옮겨가기 이전에는, 자본주의는 소수의 거상들의 세계에서 적용되는 것이었다. 앞에서 역자인 김홍식 씨가 유추하듯 ‘15~18세기의 역사적 시공을 관찰해보니 유통 영역, 그중에서도 상층부의 유통에서 자본주의가 태동했다’는 것이 브로델의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이 맞다면, 베버와 브로델이 파악한 자본주의는 그 개념의 범주와 성질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막스 베버가 말하는 '근대적 의미의 자본주의'는 소수의 거상들이 독점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일반 소상공인, 심지어 농민들에게까지 확장되는 자본주의이다. 앞서 언급한 삼층집 모델을 생각해보자. 브로델은 1층과 2층 위에 3층(자본주의)이 놓여있다고 보았으나, 베버는 칼뱅주의에 의해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이 자본주의적으로 변화되었다고 보았다. 즉 베버는 1층의 근본적인 변화를 '근대적 자본주의의 도래'로 이야기한 것이다. 베버는 1층을 말하고, 브로델은 3층을 말하니 당연히 서로 다른 소리를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요컨대, 브로델은 자본주의가 상부구조의 영역에 위치해있고, 소수의 독점 주체의 영역(수직적 위계를 필요로 하는 ‘밤의 손님’)이라고 판단했으니, 일상 시민들의 사고와 생활의 총체를 바꾼 막스 베버의 근대적 자본주의의 정의와 크게 어긋날 수밖에 없다. 결국 브로델의 막스 베버 비판은, 코끼리의 다른 부분을 만지면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게 짧은 개인적 소견이다.


나. 게임의 규칙


그들은 지중해 지역에 이미 있는 부를 일거에 덮쳐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닥치는 대로 장악했습니다. 즉 값싼 상품을 대량으로 들이밀면서 지중해 지역에 밀려들었습니다. 질이 떨어지는 제품이 많았지만 남유럽의 질 좋은 직물을 고의로 모방하고 두루 평판이 좋은 베네치아 ‘상표’를 붙여서 베네치아의 일상적인 시장에 내다팔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지중해 지역의 산업은 고객도 잃고 평판도 잃었습니다. (중략) 간단히 말해, 북유럽 사람들의 승리는 우월한 사업 개념이라든가 자연스러운 산업 경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북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는 것과는 더욱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정책은 단지 이전의 승자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폭력이 개입되었던 것도 물론입니다. 이러한 게임의 규칙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요?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04~105.


이러한 게임의 규칙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을까? 브로델의 이 강연 당시는 냉전이 종식되지 않았고,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승자의 자리를 다투던 시기였다. 현재는 UN과 같은 국제기구나 각종 조약들을 통해 어느 정도 국제질서가 확립된 시대이다. 또한 브로델 사후 체결된 산업재산권 보호를 위한 파리협약이나, 표장의 국제 등록에 관한 마드리드 협정(1996년 시행)에 따르면, 북유럽 사람들이 베네치아 상표를 붙여서 시장에 개입하는 것과 같은 모습의 무법자 스타일의 게임 규칙이 작동하기도 어렵다.


또한 브로델이 생존하던 때와 달리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세계의 ‘연결’ 수준이 달라졌고, 각종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브로델이 언급했던 ‘경제계(界)’와 사이즈가 다른, 거의 단일한 세계의 경제계가 등장하게 되었다. 여전히 강자의 논리, 힘의 논리가 국제정세를 지배하고 있고, 소수의 강국이 헤게모니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소수의 거상들만이 참여할 수 있었던 15~18세기의 원거리 무역과는 달리, 모든 국가 또는 기업에게 동등한 참여권이 보장되게 되었고, 자본의 이동도 국가를 불문하게 되었다.


자본과 정보의 차이, 선점효과의 영향력으로 강대국과 글로벌 대기업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점은 브로델이 지적했던 시기와 비슷하나, 그래도 중소강국과 스타트업들이 언제 어떻게 빵 터져서 급성장할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예전보다 조금이나마 더 기회가 있는 것 같다. 16세기~17세기의 변방의 약소국이었던 조선에서는 동인도 회사와 같이 거대 자본을 소유한 글로벌 기업이 나타날 확률이 거의 0%에 수렴하는데(게다가 조선은 폐쇄된 시장이었으니...), 21세기의 한국에서는 주지하다시피 삼성, 현대, 엘지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전세계를 무대로 세일즈를 하고 있지 않은가.


요컨대, ‘게임의 본질’(승자 독식)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어도, ‘게임의 규칙’은 달라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어떠한 국가나 기업이 무언가를 빼앗고 약탈하는 방식,단순히 기존이 사업을 대체하는 방식 등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요즘은 플랫폼이나 데이터의 확보를 통한 은밀한 독점이 게임의 규칙이 된 것 같다. 15~18세기에는 거상들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먼 거리를 이용해서 정보를 독점하고,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울며겨자먹기 식으로의 행위를 강요했다면, 현재에는 플랫폼 기업들이 소비자들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해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플랫폼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정보와 데이터를 취득하는 형태를 띄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연결'을 시도할 수 있는 사회이다. 기존 매스컴의 수직적인 영향력도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빛을 잃고 있다. 브로델이 말하는 15~18세기의 게임의 규칙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적어도 그가 생존했던 1980년대까지 그 게임의 규칙이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일단 2020년을 바라보는 지금, 그 규칙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어떻게든 이익을 찾아서 괴이하게 변형해나갈 것이라는 게 브로델의 진단이다. 게임의 규칙이 달라졌어도, 승자 독식, 국가와 기업들의 양극화 심화 문제 등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이 요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곳에서는 혁신을, 다른 곳에서는 상생을 얘기한다. 이 두 얘기가 꼭 모순이 될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앞으로의 자본주의는 과연 어떠한 모습을 가지게 될까. 10년 뒤에도 아마 이 책을 다시 한 번 꺼내서 읽어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8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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