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을 주세요, 왕자님>을 중심으로
서론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웹소설은 새로운 스낵컬처 콘텐츠로 급부상했다.
이를 부정하는 자는 많지 않다. 명실상부한 대중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웹소설은 대중 서사의 특징 세 가지에 완벽히 들어맞는다. (1) 수용자의 경험과 감정에 호소 (2) 대중적 성공에 따른 반복 재생 (3) 장르의 사회화가 그것이다. <재혼황후> 이후 뒤따른 무수한 아류작이 그 증명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따금 웹소설이라는 장르가 대중의 입맛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소위 줏대 없는 상업 소설이라는 오명을 강화하기도 한다. 업계에서 성공을 거둔 작가들조차 “어디 가서 장르소설을 쓴다고 하면 다짜고짜 가르치려 들려는 사람도, 얕보는 사람도 많다.”라며 자조한다. 대중서사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다양성 없는 양산형 서사에 불과하므로 예술성이 모자라다’는 것이다. 그들의 고정관념은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한두 개를 읽는 행위로 강화된다. 그러나 모든 웹소설이 그러하다는 주장은 일반화의 오류다. 유명한 작품이 웹소설의 전부는 아니고, 유명세와 무관하게 예술적인 작품이 다수 있으며, 그것을 알아보는 독자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명성과 예술성을 같이 챙긴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을 중심으로 웹소설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려 한다.
본론
유폴히 작가의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은 2023년 10월 21일 15시 기준, 643개 별점 평균이 5점 만점에 4.9를 유지 중이다. ‘리디북스’ 플랫폼에서 별점은 리뷰와 함께, 구매자만 남길 수 있다. 구매자 중에서도 굳이 시간을 들여 리뷰와 별점을 작성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단행본 3권, 화수로 100화에 불과한 작품이 리뷰 별점을 600개 이상 받았음은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니다. 이 작품의 명성은 수치로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예술성에 관한 의문이 남는다. 이 글에서 예술성은 작품의 주제 의식보다는 구조적 짜임새를 기준으로 한다.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은 본문의 90% 이상이 서간체로 진행된다. 출판사 편집자인 여주인공, 코델리아는 작가에게 동화 원고를 받으러 간 신비로운 골동품 상점에서 오래된 서책 보관함을 받는다. 서책 보관함에 넣어둔 원고가 사라져 그가 곤경을 겪는 상황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튿날, 코델리아의 서책 보관함에는 동화 원고 속 인물인 아치 앨버트 왕자의 편지가 들어 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코델리아와 남주인공인 아치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는다. 이후로 소설은 오로지 서간체만으로 진행된다.
환상문학 분위기를 풍기는 동화 이후의 윈저튼 왕국에 사는 왕자, 아치 앨버트는 코델리아의 통찰력으로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한다. 코델리아는 아치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자기의 속내와 상황,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들은 이따금 사회가 정한 남성성과 여성성을 재치 있게 꿰뚫어 보는 등 현실 속 사회문제를 일깨우며 이야기에 현실성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내용에 불과한 편지는 차츰 동화 원고의 주인공인, 에드위나 공주와 기사의 삶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발전한다. 마지막 반전에서, 그간의 복선이 하나로 모이면서 코델리아와 아치는 둘이 한 세계에서 만날 방법을 알아낸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는 서간체 액자식 구성으로 계속된다. 아치는 그의 세계에서 어머니(국왕)의 친구였던 에드위나 공주의 주변인물들을 인터뷰해 그 내용을 코델리아에게 보낸다. 코델리아는 그의 어릴 적 사정을 얘기하며 에드위나 공주와 그의 기사의 사정을 추리한다. 즉 이야기는 (1)아치와 코델리아의 로맨스 (2)에드위나 공주와 기사의 사랑 (3)코델리아와 의문의 남자 리암의 정체, 세 가지 소재로 구성된다. 작가는 (1)을 겉 이야기로 쓰면서 (2)를 속 이야기로 조명하고, (3)으로 겉 이야기와 속 이야기를 통합하는 구조로 저술을 마무리했다. 총 3겹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독자가 복선이라고 눈치채지 못할 만큼 치밀하게 담는 건 웬만한 기술로는 어렵다. 더욱이 작가는 세 이야기를 묶는 주제로 ‘모든 사랑은 헌신과 기다림이다.’라는 주장을 짜임새 있게 펼친다. 철저히 계획된 복잡한 플롯이 주는 설득력은 무시할 수 없다.
결말부에 이르면 독자는 거의 모든 문장이 마지막 장면을 위한 복선이었음을 알게 된다.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의 리뷰란에는 몇 번이고 읽었다는 내용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만큼 작품이 대중을 사로잡았다는 뜻이다.
결론
흔히들 웹소설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로 폄하 당하곤 한다. 특히 웹소설의 시초인 “인터넷 소설을 지칭하는 ‘인소’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저급한 하류 문화로 평가”되기도 했다. 예술을 모르는 대중이 함부로 소비한다는 인식은 사실상 웹소설뿐 아니라 그것을 즐기는 대중까지 깎아내리는 논리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대중은 그 용어만으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비록 스낵컬처로서의 웹소설만 즐기는 독자가 적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장르 자체가 획일적이라고 주장할 근거라는 건 일반화의 오류이다. 시장에는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을 즐기는 독자도 있다. 그것을 쓰는 작가도 많다.
웹소설 장르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향후 K-웹소설의 발전을 바란다면, 대중과 평론가들의 사회적 명성과 시선 역시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이정옥, <대중문화, 대중서사, B급문화>, 숙명여자대학교, 2023
2) 박수정 ‧ 유오디아 ‧ 용감한 자매 ‧ 이재익 ‧ 청빙 최영진 ‧ 이대성, <도전! 웹소설 쓰기 – 최고 인기 웹소설 작가들의 실전 특강>, 폭스코너, 2016, 26쪽
3) 유폴히,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 로즈엔, 2023, 1권
“난 하나도 창피하지 않아요. 오직 진정 남자다운 남자들만이 당당히 신부수업을 받을 수 있죠. 티스푼을 제대로 잡는 법도 모르면서 검을 잡아서 뭐 한답니까? 찻잔에 차 따르는 법도 모르면서 궁술로 과녁을 명중시킬 수 있답니까? 장미꽃의 가시도 무서워하는 주제에 날아오는 창을 막아내는 일이 가당키나 하겠느냐고요.”
4) 류수연, <웹 2.0 시대와 웹소설-웹 로맨스 서사를 중심으로>, 대중서사연구 25.4, 2019, 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