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하자마자 7,300만 원 피해입은 웹툰 작가가 SNS에 올린 글
유튜브에서 이 영상 제목을 보자마자 클릭했다.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영상 속의 웹툰 작가는 연재를 시작하고 고작 이틀만에 불법 사이트에 자신의 웹툰이 업로드되었다. 암담한 점은 자신의 정산서에 기재된 조회 수는 990명인 반면, 불법 사이트에서는 16만 명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한 것이다. 정식 플랫폼과는 무려 160배가 넘는 차이이며, 해당 작품의 추정 피해액은 약 7,300만 원 정도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수치가 수많은 불법 사이트 중 단 한 군데서 발생한 피해액이라는 점이다.
현재 웹툰 비즈니스 모델
웹툰 비즈니스 모델은 무료를 제외하고는 ‘전체 유료’, ‘미리보기 유료’, ‘기다리면 무료’ 정도로 나뉜다. 현재 대부분의 플랫폼이 이 3개의 비즈니스 모델을 적절히 도입하여 결제를 유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네이버 웹툰은 연재작에서는 미리보기 유료를 도입했으며, 완결작을 모두 유료로 전환했지만, 기다리면 무료를 적용하여 일정 기간이 지날 때마다 열람이 가능하도록 했다.
‘미리보기 유료’나 ‘기다리면 무료’는 말 그대로 공짜라는 인식이 강했던 웹툰 콘텐츠에 성공적으로 수익 기반을 확보하게 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특히 카카오 페이지가 애니팡을 벤치마킹하여 시행한 ‘기다리면 무료’ 시스템은 콘텐츠 자체가 아닌 콘텐츠를 보는 ‘시간’을 산다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여, 카카오 페이지가 슈퍼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콘텐츠가 마음에 들면 기다리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한 유저가 결제를 하게 된다. 이때 유저는 기다리지 않고 보는 '시간'을 구매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진수 카카오 페이지 대표-
하지만 이처럼 혁신적이었던 비즈니스 모델에 심각한 장애물이 생기고야 말았다.
기다리는 시간이나 콘텐츠를 구매하지 않고, 불법 사이트를 선택하는 유저들이 폭발적으로 늘게 된 것이다.
불법 사이트의 규모
2018년 기준, 한 웹툰 불법 사이트의 월평균 접속자는 약 3,500만 명에 육박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0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 불법 사이트 피해 규모는 약 3,18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2019년 전체 웹툰 플랫폼의 트래픽 총합이 약 330억 PV로 집계된 상황에서, 한국어로 서비스된 웹툰 불법 사이트의 조회 수 총합 역시 약 326억 PV로 집계됐다. 웹툰 플랫폼은 거의 자신들의 절반에 달하는 이익을 불법 사이트에 내주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유료 연재작의 비중이 큰 소규모 플랫폼일수록 피해 규모가 클 것이란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웹툰 불법 사이트의 폐해에 노출된 작가들은 정상적인 월급은커녕 10만 원도 정산받지 못하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과연 어떤 작가가 작품을 계속해서 그려나갈 수 있을까?
슬픈 현실이지만 몇 년이 지나도 불법 사이트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불법 사이트를 폐쇄해도 계속해서 새로 개설되고 있으며, 수많은 익명 유저들의 불법 사이트 사용을 멈추게 만드는 것 또한 불가능해 보인다.
현재 도입된 웹툰 비즈니스 모델들이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음에는 동의하지만, 이 정도로 불법 사이트의 규모가 커지고, 많은 유저들이 정당한 구매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결제 시스템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 유저들은 왜 불법 사이트를 찾게 되나
사실 너무나 간단한 문제다. 해당 웹툰이 꼭 보고는 싶은데, 돈은 사용하기 싫은 것이다.
오랜 기간 불법 사이트에 체류하게 된다면 눈에 보이는 다른 웹툰도 생각 없이 소비하게 되겠지만, 처음 불법 사이트를 찾게 되는 계기는 저 정도로 아주 단순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 웹툰 시스템은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유료 웹툰 플랫폼 결제창 (봄툰)
우선 첫 번째 문제점은 무료 웹툰이라는 비교군이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 웹툰이나 다음 웹툰은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웹툰 플랫폼이며, 서비스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든 연재작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대다수의 웹툰 유저들은 이 대형 포털로부터 웹툰을 처음 접하기 때문에 웹툰은 무료라는 인식이 쉽게 형성된다. 또한 레진 코믹스 같은 웹툰의 경우, 어떤 웹툰은 연재분 무료, 어떤 웹툰은 기다리면 무료, 어떤 웹툰은 전체 유료로 제공한다. 같은 ‘웹툰’이라는 콘텐츠임에도 소비를 하는 방식에 있어서 무료부터 유료까지 차등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는 처음부터 모든 콘텐츠가 유료로 소비되는 것이 당연한 영화나 음악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무료 웹툰이 존재하는 환경이 웹툰을 유료 콘텐츠로 당연하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에 방해가 된다고 본다.
두 번째 문제점은 결제의 반복적 인식이다. 웹툰 한회의 금액은 일반적으로 200~300원 정도이며, 이 금액이 그다지 크지 않은 돈임은 거의 명백하다. 그러나 정주행을 시작하는 경우, 한 화의 웹툰 감상 시간은 길어봤자 4분 이내이며, 만약 웹툰의 회차가 20회 정도라면 별로 많지 않은 회차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3~4분마다 20번의 결제 버튼을 누르게 된다. 결국 자신의 소비를 지속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웹툰 플랫폼에 오래 체류하는 주요 유저가 10~20대임을 고려하면 200원이 적은 금액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세 번째 문제점은 고액 결제의 부담감이다. 일주일에 보는 웹툰이 1, 2개 정도라면 결제는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웹툰을 보는 빈도가 많고, 새로운 작품을 자주 정주행하는 유저라면 결제의 무게가 다르게 적용된다. 초반에는 흔쾌히 결제할 수 있으나, 100화가 넘어가는 장편 웹툰을 정주행하거나 보고 싶은 작품이 여러 개일 경우에 결국 불법 사이트를 선택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도입의 필요성
불법 사이트의 가장 큰 문제는 작가의 수익이 직접적으로 줄어들고 창작 동기의 저하를 유발하여 근본적으로 웹툰 시장의 질 저하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흑백 만화를 월간으로 내는 것이 흔한 일본과 비교했을 때, 한국 웹툰 작가들은 콘티, 스케치, 배경, 채색까지 일주일 내에 끝내야 하는 극악한 작업 속도와 퀄리티를 감수하고 있다. 이렇게 어시스트와 작가가 일주일 동안 매달려서 만들어내는 작품의 값어치에 200원도 부과할 수 없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현재 웹툰 소비 실태의 극심한 문제점을 냉정하게 두고 볼 때, 해당 웹툰의 값어치가 적절한가의 측면이 아니라, 소비자가 온당히 소비하는가의 측면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웹툰들은 분명 높은 값어치를 가진 작품이지만, 플랫폼은 이 우수한 작품들을 독자들이 더 ‘기꺼이’ 결제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으로서 작품들이 정당하게 소비되는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불법 사이트를 선택하는 수많은 유저들의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행보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소비 시스템을 바꾸는 것으로서 정당한 소비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웹툰 소비 실태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식 플랫폼에 대한 유저들의 충성도를 올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유저들의 충성도를 올릴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의 아이디어는 구독 경제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구독 경제는 이미 많은 산업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MZ세대의 트렌드에서 사람들은 높은 금액을 내고 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 적은 금액으로 많은 물건들을 ‘경험’하는 것을 선호한다. 넷플릭스나 밀리의 서재와 같은 콘텐츠 산업에서 높은 성과를 보일 뿐만 아니라, 자동차, 식품 산업에서도 구독 경제를 적용한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월정액 비즈니스 모델은 유료 웹툰 플랫폼에서 새로운 작품들을 다수 경험하고 싶은 헤비 유저들에게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본다. 수익 배분에는 변화가 발생하겠지만, 독점 연재와 장르 특화를 통한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하여 유저를 늘리고 월정액 결제의 비율을 높인다면, 불법 사이트로의 이탈을 현재보다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글. 강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