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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질시스터즈 May 23. 2021

라면 사려고 편의점 9개 가는 여자


오늘 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라면을 먹어야 했다.



며칠 전, 처음 보는 조합의 라면 먹방 영상을 봤는데 도통 그 라면이 머리에서 나갈 생각을 하질 않았다. 아무래도 대단히 꽂힌 모양이었다. 완전 짜고 매워 보이는 게 이번 주 일요일에 끓여 먹고, 퉁퉁 부으면 딱이겠다는 나만의 비장한 계획을 세웠다.


식탐에는 몇 가지 특징이랄까, 나만의 규칙이 있는데 첫 번째는 특정 음식에 꽂히면 먹기 전까지는 죽어도 해소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먹고 나서야만, 비로소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고 해야 할까. 두 번째는 무조건 꽂힌 음식으로만 해소된다는 것이다. 똑같은 치킨 버거여도, 싸이버거를 먹기로 한 날 싸이버거가 아닌 상하이 버거를 먹으면 왠지 속 시원하지가 않은 것이다. 뭐가 됐든 원인을 알 수 없는 정말 사소하고 집요한 집착이다.


하여간 나는 처음 보는 조합의 라면에 단단히 집착하고 있었고, 오늘 밤 그 라면을 대체할 수 는 라면은 없었다. 신라면도 아니고, 삼양라면도 아니고, 진라면도 아니고 꼭, 반드시, 그 조합(신새라면)으로 라면을 먹어야 했다. 아침부터 공부하고, 알바하고, 남자친구와 저녁을 먹는 와중에도 집에 가서 끓여 먹을 라면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밤 10시쯤 딱 끓여서 야식으로 먹을 생각에 신나서 집 앞 편의점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편의점에 내가 먹으려는 라면이 없는 것이다. 이건 정말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진열대의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샅샅이 살펴봤지만, 내가 사려는 라면은 없었다.


오늘 이거 먹으려고 하루를 버텼는데?

갑자기 참을 수 없어졌다.



이렇게 많은 라면 중에 왜 내가 사려는 라면만 없니



그 길로 동네 편의점을 전부 찾아 나섰다. 식탐의 힘은 정말 무섭다. 나는 엄마가 척추 부러졌냐고 물을 정도로 누워서 움직이질 않는 사람인데, 라면 하나 먹겠다는 일념으로 동네를 빙빙 돌았다. 처음에는 GS25, 세븐일레븐, CU. 집 근처에 있는 대한민국 대표 편의점이라는 편의점은 전부 돌았는데 그깟 라면 하나가 없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 라면을 먹지 않으면 오늘 밤은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른 마트 2개에 이마트 24, 세븐일레븐, CU를 추가로 찾아갔지만, 결국 라면을 찾지 못했다.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로그인이라는 편의점을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갈 편의점도 없었다. 별 기대 없이 진열대를 훑어보는데 그 라면을 발견했다. 세상에, 포기하지 않으면 광명 찾는다고 했던가. 내적 환호성을 지르며 결제했다. 집에 오는 길이 그렇게 가볍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드디어



집에 가서 라면을 끓이고 한입 먹고 나서야, 하루 종일 머리를 빙빙 맴돌던 욕구 하나가 마침내 해소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먹은 라면은 기대나 고생한 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내가 너무 눈에 별이 튀는 맛을 기대했나. 강렬한 식탐을 해소한 이후에 찾아오는 약간의 허탈감과 더부룩한 포만감. 다 비워진 그릇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충동에 사로잡혀 먹은 음식이 꼭 기대만큼 맛있지 않다는 것을 여러 번의 학습 끝에 분명히 배웠을 텐데, 매번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좀 바보 같기도 하다. 다 먹고  브런치를 쓰며 드는 생각은 그냥 특별할 것 없이 운동하고 먹는 집밥이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이상, 라면 하나 끓여 먹으려고 달밤에 체조한 이야기.



잘 먹긴 했습니다





글. 강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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