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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Nov 08. 2017

영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 박새로이

이태원 클라쓰 (광진, 다음웹툰, 2016- 연재중)


영웅 서사 과잉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프랜차이즈 영화는 수퍼히어로 물이다. 그런 와중에 수천편이 매주 연재되는 웹툰 시장에서 눈에 띄는 영웅서사를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영웅서사 과잉이라곤 해도, 수퍼히어로를 제외하면 한번에 떠오르는 영웅서사를 가진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광진 작가가 <제이에게> 이후 다음웹툰에서 연재중인 <이태원 클라쓰>는 이런 영웅서사를 철저히 따라가면서도 시원시원한 전개와 매력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 매력적인 주인공

주인공 박새로이는 전학온지 5분만에 아버지가 다니는 대기업 회장 아들의 얼굴에 주먹을 내지른다. 그리고 순식간에 퇴학당하고, 아버지는 퇴사한다. 그리고 퇴직금으로 아버지가 치킨집을 차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로 아버지가 사망하고, 사건의 진범인 대기업 회장 아들이 범죄를 은닉하고 정원사에게 뒤집어 씌웠다는걸 알게 된다. 분노한 새로이는 진범인 장근원을 죽기 직전까지 때리고 살인미수로 징역을 살게 된다. 그리고 오로지 복수를 위해 원양어선, 건설현장을 오가며 돈을 모은다. 새로이의 목표는 장근원이 물려받게 될 회사이자, 범죄를 은닉하고 숨겨준 장회장의 모든 것인 ‘장가’를 쓰러뜨리는 것. 경찰이 꿈이었던 새로이는 철저하게 합법적으로 복수를 계획한다.

새로이는 답답할정도로 고루한 성격이다. 무릎만 꿇으면 선처해준다는 장회장의 말에 ‘그럴 수 없다’ 고 답하고 퇴학당하는가 하면, 새로 차린 자신의 가게 ‘꿀밤’이 영업정지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버틸 수 있다며 영업정지를 그대로 맞고 만다. 굽힐 줄 모르고, 부러지면 다시 붙어 더 강해지는 뼈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새로이를 보면서 아슬아슬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새로이는 결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간다.

* 주간연재 최적화, 속도감 있는 연출

2부가 연재중인 지금, 고등학생에서 시작한 새로이는 30대 중반이 되었다. 감옥에 있던 시간과 원양어선을 탔던 시간을 빼더라도 10여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이런 빠른 연출은 매 회차마다 긴장감을 늦추지 않도록 만든다. 매주 연재되는 웹툰의 특성에 맞춰 다음 회차를 보고싶게 만드는 연출을 보여준다. 이런 연출은 감각적인 대사가 적절한 순간 등장해 극의 몰입감을 높이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술맛이 어떠냐”는 새로이의 아버지의 대사, 그리고 “개돼지” 운운하는 장회장의 말은 독자들에게 각 캐릭터들의 감정을 한번에 알 수 있도록 돕는다.

시즌 2 중. 컷 하나로 7년이 지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어색함을 느끼기보다 목표에 한발짝 다가간 새로이의 모습을 보며 지난 시간을 상상으로 채워넣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강렬한 주연과 조연, 그리고 변함없는 그들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사의 경우 연출이 어긋나면 감정과잉으로 보이기 쉬운 대사들이지만 미리 감정선을 보여주는 장면을 몇회차 전에 보여주고, 다음에 그 장면을 다시 보여줌으로써 그 무게와 의미를 독자들이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다만, 이런 연출을 위해서 ‘두둥’ 과 같은 효과음을 지나치게 자주 사용하는 점은 옥의 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빠른 전개의 장점은 복수극이기 때문에 두드러진다. ‘사이다 서사’에 매몰되기 쉬운 연출이지만, 작가는 원칙주의자에 답답한 주인공을 배치한다. 화끈하게 때려 부수고 그 책임을 묻기 전에 전에 극이 끝나는 복수극이 아니라 오히려 천천히, 차근차근 복수를 준비하는 주인공은 철저하게 체제 안에서 복수를 준비한다. 독자가 읽고 기다리는 시간보다 등장인물의 시간이 짧으면 느껴지는 이런 지루함은 <이태원 클라쓰>에선 보이지 않는다. 복수의 명분이 처음에 등장하고 끝없이 복수를 되뇌이는 주인공은 극이 늘어지면 독자의 감정선과 어긋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이태원 클라쓰>에서는 오히려 주인공의 시간이 독자의 시간보다 더 길다. 때문에 독자들은 새로이가 느끼는 분노의 크기, 그리고 복수에 대한 열망보다 언제나 한발 뒤에서 새로이를 따라가게 된다. 이 때문일까, 보통 2-3개의 미리보기를 제공하는 다음웹툰에서 <이태원 클라쓰>는 5개의 미리보기를 제공하는 웹툰 중 하나다.


술을 마시는 박새로이. “맛이 어떠냐?”는 아버지의 대사였다.




* 영웅 서사에 걸맞는 조연들

흔히 ‘영웅 서사’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영웅에 종속적이고, 영웅을 빛나게 만드는 악세서리로 다루어지곤 했다. 그러나 <이태원 클라쓰>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주체적이고, 박새로이 없이도 빛나는 캐릭터들이다. 새로이가 10년 넘게 짝사랑하는 수아는 새로이가 감옥에 가도록 신고한 장본인이고, 그 대가로 장가에 취업해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임원직을 넘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이는 묵묵히 수아를 기다린다.

그뿐 아니라 꿀밤의 조이서는 새로이를 좋아하지만 수동적이지 않다. 능동적으로 새로이 곁에서 조력자로 활동하기를 선택한다. SNS 스타이자 천재인 조이서는 말 그대로 천재적 능력을 발휘, 외골수인 박새로이가 성공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만약 새로이의 뚝심만 있었다면, 꿀밤은 진작에 무너지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필살의 일격

미국의 신화 종교학자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1904-1987)은 영웅서사는 열두단계를 따른다고 정리했다.[*] 이태원 클라쓰는 이 열두단계를 정확하게 따르고 있다. 수없이 많은 영웅 이야기가 이 구조를 따르는 복수극을 보여주는 지금, 이태원 클라쓰는 웹툰이라는 매체의 주간연재에 최적화된 서사구조로 눈길을 끈다.

이제 새로이는 일곱번째 단계, 여정의 핵심을 이루는 가장 깊은 곳으로 접근하고 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복수를 향해 자신의 길을 걸어온 새로이는 필살의 일격을 준비했다. 새로이가 평생에 걸쳐 준비한 한방이 동굴에서 기다리고 있는 최강의 적에게 어떻게 작렬할지 기대해도 좋다.


[*] 영웅이 되기 위한 열두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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