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웹툰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봄 Nov 10. 2017

함께여서 참 다행이었던 시간들

<이런 영웅은 싫어> (삼촌, 네이버웹툰, 2017-2017, 완결)



안녕, 나의 히어로.


긴 시간을 연재하던 작품이 완결을 맞으면 여러가지 감정이 생겨난다. 아쉬움과 같은 섭섭한 감정부터 드디어 완결이라는 쾌감까지 다양한 감정이 들게 마련인데, 그 중에도 ‘한 시대가 끝난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도 있다. 내게는 삼촌 작가의 <이런 영웅은 싫어>가 그런 작품이었다. 베스트도전에서 연재를 시작한 후 거의 7년이 지나 완결이 난 이 작품은,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웹툰의 모바일 시대 초기부터 2017년까지를 함께 한 작품이다. 나가라는 초능력자 고등학생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에 ‘한 시대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모바일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소재 때문이기도 하다.

* 평범하지 않은 먼치킨물

나가가 살고 있는 세계는 영물과 초능력자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시대적으로는 현대와 비슷하지만, 초능력자는 물론 동물이나 심지어 상상의 존재가 인간화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세계에서도 나가는 특별한 존재다. 세기가 낳은 천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역대 최강의 초능력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절대 적수가 없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우리나라에선 먼치킨물이라고 분류한다. 염력, 투시, 방어력이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데다 그 힘을 운용하는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때문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나가가 등장했더니 모든 일이 해결됐다’는 식의 전개도 가능하지만, 작가는 나가에게 소위 ‘사기캐릭터’가 되기엔 치명적인 단점을 부여했다. 소시민을 지향하는,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 성격이다.

아무런 특징도, 튀는 지점도 없는 삶을 지향하는 나가는 스스로를 ‘이렇다할 특징이 없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능력의 크기에 비해선 너무나 작은 꿈을 지향하는 나가는 어느날 히어로 스카웃 제의를 받는다.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나가가 히어로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공명심이나 위대해지고 싶은 소망이 아니다. 공무원에 준하는 월급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어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한 자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이런 영웅은 싫어>는 사상 최강의 캐릭터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잡일을 돕는 히어로 정도로 시작한다. 고양이를 구해주거나, 공사현장을 돕거나 하는 식이다. 그렇게 강한 힘을 타고났음에도 어릴때부터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생명체에게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이 때문에 감정을 억누르는 경향이 강한데, 나가가 화가 나서 휘두른 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나가가 “욱” 했을 때 벌어지는 일. 지구상에서 어떤 지점을 지워버릴수도 있는 힘이다(...)

바로 나가의 소심한 성격 덕분에 이 웹툰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이능력 배틀물이 될 수도 있었지만, 백모래라는 악당(이라지만 정화의 힘을 가진)이 이끄는 나이프라는 조직을 뒤쫓는 추리극의 형식이 주를 이룬다. 최강자가 주인공이지만 능력 배틀을 중점에 두지 않고, 소심한 주인공은 자신의 삶과 히어로로서의 삶을 등치시키지 않는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이 평범함을 손에 넣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런 영웅은 싫어>가 제목에도 담고 있는 이야기의 중심이다.

* 남이사의 위대함

본인이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나가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존중한다. 존중한다기 보단, 남이 나에게 신경쓰지 않았으면 하는것과 비슷한 정도로,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굉장히 현실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위법한 행위나 부도덕한 행위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법과 도덕은 타인의 자유를 해하지 않고 살아갈 최소한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나가의 눈과 등장인물들의 삶을 빌어 우리의 삶을 비추는 우화의 수사를 사용한다. 특히 ‘영물’을 다루고 있는 에피소드에서 이것이 두드러진다. 희귀 영물이기 때문에 인신매매, 고문등을 당했던 수없이 많은 존재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가는 자신의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눈을 뜨게 된다.


우리가 살면서 ‘남이사’라는 자세를 취하는 경우는 보통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타인의 삶의 방식이나 타고난 기질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말하는 ‘남이사’라는 말은 의미가 다르다. 나가의 태도는 후자에 가깝다. 자신이 타인에게 간섭받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짜증나는지 알기 때문에, 나가는 오히려 더 평범한 삶을 지향하며 타인또한 자신에 의해 간섭받지 않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작가는 우화의 수사를 통해 우리 안에서 차별받는 사람들, 즉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물은 타고난 기질이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 인종, 성별, 외모, 성적 지향 등에 대한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영물이라는 특수한 존재에 담고, 나가의 분노와 각성을 통해 독자들이 차별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유도한다. 특히 주요 등장인물들 중에도 영물들이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판다 영물인 귀능의 이야기에 깊이 분노하고 공감하게 된다.


작가가 나가의 삶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 보여주는 ‘남이사’의 위대함은 이 작품이 유의미하게 만든다. 자기 마음대로 하더라도 누구도 자신을 해칠 수 없는 나가는 (아마도) 순혈 인간 남성에, 작중에 등장하는 대사를 유심히 보면 이성애자인 것도 알 수 있다. 타고난 기질로 가지는 위계에서 최상위에 위치한 나가는 “남이사”를 말하면서 타인과 자신의 삶을 지키려고 한다.


* 안녕, 나의 히어로.


나가는 기나긴 여정동안 꾸준히 자신의 관점과 삶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세계를 지킬 히어로가 되어달라는 요구에 나가는 “역시 그건 싫다”고 거절하고, 절대자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에서 본인이 절대자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타인의 삶을 해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제목에서 말하는 ‘이런 영웅은 싫어’를 온몸으로 외치는 나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는다.

나가의 마지막 인사. 내일은 더 나아질 나의 삶을 위해.

자신이 꿈꾸던 안빈낙도의 평범한 삶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가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세계정복이 허무맹랑한 꿈만은 아닌 존재가 평범한 삶을 지향하며 꿈꾸는 이야기인 <이런 영웅은 싫어>는, 소수자에 대한 깊은 고민과 약자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공감을 담고 있다. 세계최강의 초능력자인 이성애자 인간 남성인 나가는 어쩌면 약자와 소수자에 공감하기 가장 어려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자와 소수자에 공감하고 결국 본인의 인생을 찾아가는 나가의 모습을 함께 지켜볼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었다. 한 시대가 저문다. 나가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다. 그 시대는 조금 더 아름답기를, 고통받는 존재들이 조금은 줄어있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그랬잖아, "너만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