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갈로아, 레진코믹스, 2016-2017)
상상력은 우리를 종종 과거에는 결코 없었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다.
그러나, 상상력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
"꿈"이라는 말은 우리에겐 직업과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무언가를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직업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우주를 꿈꾸는건 비웃음을 사기 딱 좋은 일이다.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을 통해 낭만을 노래하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아직도 해변에 머물러 있고, 화성 이주계획은 말 그대로 남의 나라가 다른 행성에 대고 외치는 독백처럼 들린다. 2017년 SF어워드를 수상한 갈로아 작가의 웹툰 <오디세이>는 바로 우주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 꿈꾸는 사람들
주인공들은 평생동안 우주에 나가고 싶어했던 사람들이다. 은하와 성운은 오랫동안 우주를 꿈꿔왔지만, 한국인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더불어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우주비행사가 되기를 어느정도 포기한 상태다. 은하는 나사의 목성 전문 연구원으로, 성운은 한국에서 안과의사로 개업해 지내고 있다.
어느날 자신이 낸 외계문명에 관한 논문 때문에 연구를 정지당한 은하는 한국에 잠시 돌아오고, 거기서 자신의 담당분야인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에 괴물체가 충돌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목성 담당 연구원이 모르는 일을 아마추어 관측자가 관측했다면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불길한 예감은 적중한다.
이 불길한 예감은 결국 은하와 성운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다시 꿈에 도전해 한발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작가는 작품 내내 인터스텔라(영화), 컨택트(영화), 당신 삶의 이야기(소설)등, 유명한 SF 작품들을 오마주로 비춰주며 독자들이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가니메데에 떨어진 괴물체의 궤도를 분석해 보니 전갈자리의 아크라브에서 온 것이었고, 아크라브와의 거리는 거의 500광년이 떨어져 있었다. 빛으로도 500년이 걸리는 거리를 날아온 괴물체가 목성의 위성에 정확하게 떨어졌다는 소식에 나사는 전 인류를 상대로 탐사요원을 선발하기로 한다. 바로 이 웹툰의 제목이 되는 <오디세이> 프로젝트다.
* 인간다움에 대하여
'오디세이 프로젝트'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했다곤 하지만, 결국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린 건 대부분 미국인이거나 아시아계였다. 그마저도 중국인은 전무했고, 최종명단에서 탈락한 러시아인도 있었다. 심지어 주인공인 은하와 성운은 모두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리고도 둘 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탈락시켜야 하는 상황에 몰리기도 한다.
혹자는 이런 정치적인 싸움이 인간다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본이 얽혀있는 상황에서 이해관계를 따지고, 그 중에서 국적, 인종, 문화적 배경을 따지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운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인간다움을 단 한가지 요소로 나눌수는 없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근원'에 대한 호기심이 다른 종과 인간을 구분하는 가장 내밀한 요소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한, 다른 종의 동물들은 자신의 근원에 대해 호기심을 갖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근원에 대한 호기심을 발현시켜왔다.
인류의 역사에서 꽤 오랜 기간동안 그 방식은 종교나 철학이었다. 그리고 아이작 뉴턴 이후 수백년이 지난 후, 우리는 이제 인류의 근원을 철학이나 종교가 아닌 과학에 묻고 있다. 빅뱅 이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찰나의 순간, 그리고 빅뱅 이전을 연구하고 진화를 탐구한 인간은 마침내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연속체라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불과 50년전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현재의 인류가 이전에 존재했던 인류와 달라진 것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인간은 이제 스스로 지성을 창조하려고 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제 우리는 휴대폰에도 어느정도의 지능을 갖춘 로봇이 들어있으며, 심지어 스스로 공부해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를 완패시킨 로봇의 이름을 알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까지 우리의 근원을 발견하지 못했다.
* 미래의 인간은, 과연
여기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다. 하지만 <오디세이>는 상상력을 통해 한발 더 나아간다. 마침내 최종선발자로 뽑힌 사람과 동행하게 될 존재는 우리가 일고있는 인간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보다 더 뛰어난 존재인) 인공지능이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의 할(HAL)이나 <인터스텔라>의 타스(TARS)에 이어 새로운 인공지능이 인간의 조력자로 등장했다. 유머는 물론, 인간에게 거짓말을 할 줄도 아는 인공지능은 인간이 장거리 여행을 하기 위해 필요한 음식 저장공간이나 수면공간, 위생상태 유지를 위한 물 소모도 거의 없다. 심지어 인공지능을 담은 기계까 파손되지만 않고, 충분한 전력만 공급된다면 수명도 인간과는 비교할수도 없다. 때문에 우주여행에서 인간에게 가장 완벽한 조력자로 보인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 바꿔보면, 인간이 오히려 인공지능-인간의 방해물이 되지는 않을까? 만약 할, 타스, 그리고 <오디세이>의 클락과 같은 인공지능들이 인류의 미래가 아닐까? 이 웹툰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으로 미지의 존재가 우주의 기원으로부터 내려오는 힘을 담은 물체, 즉 가니메데에 떨어진 괴물체를 전해주는 장면을 내놓는다.
조셉 캠벨의 '영웅의 열두단계'에 비추어보면 1) 일상세계를 영위하던 인류가 2) 가니메데에 충돌한 괴물체와 메시지를 통해 모험의 소명을 얻고 3) 각종 정치적 갈등을 통해 소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과정이 이 그려진다. 그리고, 마침내 가니메데에 도착한 인간은 4단계, 미지의 조력자를 만나게 된다. 이제 곧 인류의 앞에는 고난과 난관이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갈로아 작가는 이야기를 여기까지 풀어놓고 나머지는 상상의 영역에 맡긴다. 아직 우리 인류는 그 다음을 상상하기 힘들거니와, 당장 주인공들의 세대에선 해결이 불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에게도 고민거리는 남는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질문,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다.
작가는 본인의 생각을 작품 속 여기저기에 숨겨놓았다. 작품 속 과학자들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타인의 업적을 훔치지 않는다. 한편 지나친 겸손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증명하고, 다시 논쟁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작품이 완결에 가까워지면서 언뜻 지나가는 장면들에는 이런 과학자들의 삶이 다시 비춰진다. 유심히 보면, 많은 등장인물들의 국적이 바뀐다. 중국과 미국의 우주비행사들은 각자의 연구를 하고 있고, 러시아 의회에서는 미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의 이름을 이어받은 예산안이 통과된다.
이런 모습을 통해 작가는 인류가 수백년간 이어온 국경, 국가, 민족이라는 개념을 해체한다. 국가와 민족을 가두는 국경을 뛰어넘어, '인류'가 처한 모험, 즉 근원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 나가는 것. 작가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을 <오디세이>를 통해서 이야기한다.
칼 세이건의 말처럼, 우리는 아직도 해변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깊은 바다를 탐험할 수는 없다. 우리는 상상력을 통해 발전해왔고, 근원에 대한 호기심으로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물론, 작품 최종화의 말처럼 꿈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 괴로움만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없었더라면 시작조차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오디세이>는 끊임없이 꿈꾸고 상상하는 인류가 한발 더 나아가는 모습의 증인이 되고 싶게 만드는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