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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Nov 30. 2017

가까워지려면, 적당히 멀어져 주세요.

<오리진>2권 '에티켓', 윤태호, 위즈덤하우스, 2017

"우리가 세상에 나와 '보온'을 획득하고 나선,
자신을 제외한 외계(外界)를 만나야 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


윤태호 작가의 <오리진> 2권

윤태호 작가가 저스툰에서 연재하고, 위즈덤하우스에서 출판하는 <오리진>은 미래에서 온 로봇 봉투가 21세기 인간들이 살아가는 법을 직접 익혀가며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1권은 '보온'을, 2권은 '에티켓'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생존이 보장된 상황에서,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그 기본이 되는 것이 에티켓이다. 왜 하필 예의범절이 아닌 에티켓이라고 적었을까? 예의는 상호간의 관계라기 보단 수직적인 관계에 적합하다. 하지만 에티켓은 상호적이다.

인사. 에티켓의 기본이다.


<오리진> 2권 초반부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신의 공간인 방에 집착하는 현대인은, 역설적으로 그 손바닥만한 공간을 제외하곤 빈 공간이 없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그리고 사무실이나 학교에서. 자신의 공간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나를 지킬 수 있는 공간에 집착한다.

현대인은 어디에서나 개인의 공간을 침범받는다.

윤태호 작가는 2권을 통해 '가까워지기 위해서 어느정도 물러나기'를 반복해서 말한다. 그러면서 결코 가까워지기 힘든 존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이나 '의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공간을 침범하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집주인이 대표적이다. 집주인은 공간을 소유하고 있고, 거기에 세들어 사는 사람을 공간에 종속된 존재처럼 생각하는 듯 보인다. 한줌 공간을 권위로 내세워 사람들에게 존중을 강요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앞서 말한 것 처럼, 에티켓은 상호적이다. 쌍방간의 존중,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는 것이 에티켓의 시작이다. 그러나 상호존중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때문에 우리는 외계를 만나면서 혼란을 겪는다. 마치 봉투처럼. 봉투는 5-6세 정도 수준으로 세상을 본다. 그러나 로봇이기 때문에 완벽하기를 (심지어 날아다닐 수 있기를) 기대받기도 한다. 아이처럼 실수를 하기도 하고, 버림받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봉투에게 이건 실질적인 위협이다.

“떨어져!” 봉투에겐 청천벽력같은 말이다.


때문에 봉투는 필사적으로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한다. 자신이 보고 배운대로. 인간이라면 물어보거나, 어른들에게 배울 수 있지만 봉투는 그럴 수 없다. 2권 말미에 봉투는 자신이 일정수준 거리를 유지하기를 실패했다고 결론짓는다. 인간에겐 매 순간 일어나고, 매 순간 겪는 실패지만 최초의 경험은 언제나 강렬하게 남는다.

“나는 실패한 것 같다”

현대인에겐 자신의 집을 제외하곤 공유하는 간격으로서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앞서 말한 이동수단이나 학교, 일터같은 물리적 공간을 제외하더라도 인터넷이 남는다. 때문에 현대인은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재고, 다가가거나 물러서며 소모되는 에너지를 아끼다 아예 단절되곤 한다. 2권 초반부에 등장하는 미래의 인간들이 그랬던 것 처럼, 원자화되고 개인화된다.


그러나, 이미 공간의 소유여부로 위계화된 세상에서 그것을 나무랄 수 있을까? 서로 존중하고 친밀해지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 있을까?


아직 과거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봉투는 스쳐가는 익명의 다수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로봇인 봉투는 한번 본 것은 결코 잊지 않는다. 과연, 망각의 축복을 받지 못한 봉투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앞으로의 오리진이 기대되는 이유다.


* 이 글은 위즈덤하우스 서평단 당첨으로 책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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