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웹툰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봄 Nov 30. 2017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우리는 잊고 살지

<키스앤코리아>, 김나임, 다음웹툰, 2016. 02 - 2017.03

"아마 이젠 볼 수 없을 거예요. 담장 곳곳에 피어나던 무궁화를요"
5화, 문현의 독백 중에서


    제목만 들어선 국가보훈처나 국방부에서 만든 애국심 고취 홍보만화가 아닐까 싶다. '코리아'와 '키스'라니. 국가에 입맞추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클릭조차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만화는 사실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만든 팩션이다. 

동네 아이들을 그리는 엘리자베스 키스.

* 영국인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는 스코틀랜드 애버딘셔 출신의 화가다. 1915년부터 일본, 한국, 중국, 필리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지를 여행하며 동양을 소재로 한 수채화 및 판화를 여러 점 남겼다. 한국에는 삼일운동 직후인 1919년 3월 말에 처음 방문했다고 알려져 있다. 왕성한 작품활동은 물론, 서양 화가로는 최초로 1921년과 1934년 두 차례 서울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러니까, <키스앤코리아>의 '키스'는 Kiss가 아닌 Keith로 엘리자베스 키스의 성이다. 작품에서는 삼일운동 이후가 아닌 1919년 초, 직전 한국을 방문했다는 설정으로 키스의 여정을 그림과 함께 풀어내고 있다. 2006년에는 키스의 책 <Old Korea: The Land of Morning Calm>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서양이 익숙하기는 커녕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던 시절에 한국을 찾은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 화가의 이야기라니, 제목을 보고 오해한 것이 민망해진다.


    작품 속 엘리자베스 키스는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곤 하지만, 조선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조선을 가기로 마음을 먹자 주변에서는 '야만인의 나라', '미개한 곳'이라며 키스를 말린다. 하지만 키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동생과 함께 조선을 찾는다. 실제로 키스는 동생이 조선을 떠난 이후에도 남아 계속 작품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도쿄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와타나베라는 사람의 조언을 받고 작품을 목판화로 남기게 된다. 우리가 <키스앤코리아>의 회차별 하단부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은 목판화로 찍어낸 작품들이다.

작품 내에는 이처럼 민요를 사용한 연출이 자주 등장한다.

* 작품의 연출상 특징


    작가는 작품에서 소리를 중요하게 사용한다. 키스와 안내역할인 문현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지만, 작품에 깔리는 거의 모든 소리는 조선의 소리다. 이와 별개로, 회차 초반부에는 주로 민요가락이 글로 적혀 흐른다. 목소리가 꺾이는 부분에서는 글자가 누워 있거나 하는 식으로 표현되어, 한국인이라면 읽으면서 가락이나 음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시각적 요소는 키스의 그림이 어떻게 그려지게 되었을지, 그림의 앞뒤를 채워넣는 식으로 표현하되 소리만큼은 키스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가락을 상상하며 보아야 하는 것이다. 덕분에 초반부의 독자들은 마치 배경음이 깔린 영상을 보는 것 처럼 작품을 감상하다가 배경음이 잦아들고 서사에 집중하게 되고, 서사의 완결은 정지된 화면, 즉 키스의 그림에서 한 회차를 완결짓게 된다.


    이런 흐름은 스크롤 중심의 웹툰에서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시각정보를 받아들이다가 마지막 방점을 찍는 그림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상상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말로 엘리자베스 키스가 관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한 인상을 받아 더욱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한다. 그러다 시즌1 중반정도가 되면, 작가는 자연스럽게 서사에 더 집중하며 이런 연출을 줄이고 관찰자인 키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시점은 키스와 문현, 그리고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이루어진 다음이다. 이후에는 종종 여운을 남기기 위해, 또는 작품의 분위기를 전환해 독자들이 아이러니를 느끼도록 하기 위해 사용되곤 한다. 일제의 폭압이 등장한 다음에는 '널뛰기'같은 가벼운 노래가 나오거나 하는 식이다.

감옥에 투옥된 '아지'를 만난 다음 나오는 널뛰기 노래.


* 함정을 피해


    이제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 역사를 다루는 작품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현재진행형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사극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권선징악형으로, 친일파를 무찌르는 활극. 두번째는 일제의 잔인한 폭압에 맞서는 비장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관찰자로서 등장한 키스는 친일파나 독립투사도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한꺼풀 너머의 이야기로, 타자화된 관찰자의 시선을 통해 주인공 문현과 시대가 얽힌 이야기를 '듣게'된다.


    관찰자가 서양인일 경우, 보통 높은 확률로 오리엔탈리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여성 저널리스트로 널리 알려진 넬리 블라이(미국 의료시스템 개혁의 씨앗이 된 보도와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직접 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작가)의 여행기나 그 이전의 기록물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요소다. 하물며 일본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조선을 그린다면, 말할것도 없다. 작가는 작품 초반에 키스의 가족이나 동료들이 조선을 '더럽고 미개한 야만인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을 찾는 것으로 그렸다. 뿐만 아니라, 편한 호텔을 거부하고 보통의 조선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서 '진짜 조선'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을 삽입했다.


    이 때문일까, 실제 키스의 작품들을 보면 미화되었거나 추하게 그려진 조선이 아니라 마치 풍속도를 보는 느낌을 받게 된다. 키스는 조선의 내밀한 곳을 다니며 그것을 그림으로 담았고, 또 그것이 지금까지 남아있었기 때문에 <키스앤코리아>의 구체적인 상상이 가능했다. 키스는 정규 교육을 받은 화가가 아니었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고, 그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에 집중했는지도 모른다.


* 고요한 아침의 나라, 그리고 침묵


    '맨스플레인' 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저명한 여성학자 리베카 솔닛은 최근 저서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The Mother of All Questions)>에서 '고요'는 추구된 것으로, '침묵'은 강요된 것으로 보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조선의 영어식 별칭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이다. 실제 엘리자베스 키스의 저서이기도 하다. 삼일운동 전에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설정된 작품 속의 키스는 삼일운동 이후 잡혀간 상상속의 인물, 자신을 가장 평범한 소녀라고 소개하는 '김아지'를 직접 만나 면담을 나누게 된다.


    흔히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콧수염 난 남성과 비장하게 깔린 목소리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투옥된 남성 독립운동가는 나오지 않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강요된 침묵을 견디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더욱 입을 틀어막혀야만 했던 여성들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투옥된 '김아지'가 독립운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

          침묵은 강요이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은 것에 대한 목소리를 틀어막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중에서도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주목이 늦어지다 이제야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어쩌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로 존재하는 것, 또는 운동하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키스의 눈을 통해 독립운동의 한계를 꼬집는다. 


* 서양인이 '동의해주는' 조선의 자주성


    이 작품에서 굳이 한계를 꼽자면, 역설적으로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서양의 관찰자를 중심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작품 중간에 등장하는 연출에서 한국을 잘 아는 영국인 남성이 키스에게 조선의 자주성과 독창성을 가르쳐주듯 설명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김아지'의 말과 겹쳐 동일한 서술을 하는 영국인 '게일'의 설명.

    '우리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도 당시 일본이 잔혹했다'는 설명을 하기에 편리한 구조지만, 당시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식민지를 거느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을 가진, 심지어 지금까지도 각종 내전의 원인을 제공한 영국인의 입을 빌어 '동의를 얻는' 형태가 올바른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작가가 그런 아이러니를 위해 등장인물을 배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다.


    물론 실존인물인 엘리자베스 키스를 관찰자로 등장시키다보니 생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년의 남성이자 조선에 오래 머물렀던 게일이 젊은 여성이자 조선에 대해 잘 모르는 엘리자베스를 가르치는 형태도 썩 달갑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시즌2에서는 주인공 문현의 서사가 중점적으로 펼쳐지며 더 탄탄해진 서사구조를 보여준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이 땅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지켰던 사람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보는 웹툰인 <키스앤코리아>는, 실존하는 외국인의 시선을 상상으로 그려낸 100여년 전 조선의 땅과 그 위를 딛고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까워지려면, 적당히 멀어져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