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본질'을 찾으라고 훈계하는 사람들에게
최근 웹툰계에서 가장 뜨거운 레진코믹스 사태를 가장 큰 덩어리로 압축하자면 1) 지각비 2) 해외수익 미정산 3) 작가 블랙리스트, 그리고 4) 웹소설 폐지가 있다. 레진코믹스는 지각비의 경우 1] 서면합의 필요 2] 시스템 정비기간 필요를 이유로 2월 폐지를 또다시 일방적으로 공지했다. 해외수익 미정산은 피해작가의 국내수익을 합의 없이 공개하고, 해외수익 또한 공개하는 방식으로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작가 블랙리스트는 전면 부정, 웹소설 폐지는 묵묵부답이다. 웹소설 피해 작가들은 플랫폼 폐쇄 통보를 받고 자기 작품을 구매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러자 레진코믹스는 ‘9월 수익의 2배’를 보상으로 내걸기도 했다. 더불어 지각비에 대한 보상 대책, 향후 사측의 실수에 대한 보상대책의 계약서 명기 여부 등을 묻는 만화가협회의 공개질의에는 ‘예정 없음’이라는 답변을 보내오기도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최소한 지각비는 폐지되었고, 해외수익은 정산이 되었다고 발표했고, 작가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주장하고, 웹소설 폐지는 누적 적자 때문이라는 레진측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인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문제가 없는 걸까? 아니, 그 전까지 문제인지 몰랐던 것들을 문제로 인식했다는 결론만 남는다. 지각비는 폐지되었으나 2월까지는 유예되었고, 해외수익은 정산했으나 계약서에 명시된 비밀유지 조항을 어겼다. 블랙리스트 의혹은 심지어 SF 장르 1위 작품인 은송 작가의 <양극의 소년>을 빼고 SF 작품만 결제한 작품에도 추천작품에 오르지 않았다는 독자들의 실험이 있었다. 웹소설 폐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노엄 촘스키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어 해결 가능한 것을 ‘문제’로, 인지 너머에 있는 것들 것 ‘미스터리’로 규정했다. 그 전까지는 우리가 알지 못했고, 문제라고 인식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스터리’ 였던 것들이 이제 막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이다. 작가들은 자신의 수익을 줄여가며 휴재로 연대하고 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토론하고 잘못을 가리고 책임을 질 사람을 가릴 시간이다. 그런데도 한 칼럼에서는 마치 작가들이 편을 갈라 싸우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냉정과 침착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꾸짖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에 앞선 글에서도 레진코믹스의 지각비 폐지 결정을 환영하며, 작가들이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의 밖에서 발을 떼고 있는 사람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에게 항의하다 터져나온 목소리가 ‘시끄럽다’거나, ‘냉정하지 못하다’고 하는 말은 무의미하다. 작가들이 제기한 문제의 본질은 회사가 작가들을 착취하고, 플랫폼을 없애는 방식으로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작가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으며, 이에 항의하는 작가의 그 명단을 만들어서 특별히 ‘관리’ 했다는 의혹에 있다. 앞서 정리한 큰 덩어리의 문제들의 총합이 본질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많은 문제를 만나며 살아간다. 때로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때로는 방관자나 연대하는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 각자의 입장이 다르다. 그리고 그 입장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 것이 원론적으로 맞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오류에 빠진다. 나는 이걸(아마 부르는 이름이 있을 거라고 믿지만) ‘무게추의 오류’라고 부르고 싶다. 무게추는 내가 서 있는 땅의 기울기에 따라 낙하방향이 바뀌지 않는다. 무게추는 오로지 중력의 방향으로만 낙하한다. 주장이 무게를 가지려면, 최소한 변하지 않는 기준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은 흔히 내가 서 있는 땅과 직각으로 떨어지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보이는 의견에 무게를 싣는다. 보통 문제의 본질은 내가 서 있는 땅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가를 파악하는데 있다.
얼마 전 쓴 칼럼에서 필자는 ‘신뢰의 비용은 비싸다’고 했다. 신뢰가 비싼 이유는 회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신뢰를 져버린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들이 있고, 그 와중에 생긴 지엽적인 문제를 본질을 흐리는 것으로 호도해선 안된다.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있다’는 말이 아니다. 두가지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고, 별개로 토론해야 할 문제다. 서로 다르게 작용하는 무게추를 하나의 잣대로 묶어 바라보면 균열이 생긴다. 회사가 작가들의 신뢰를 져버리고 작가들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를 하고, 소통을 하겠다면서 또다시 일방적인 통보가 될지도 모르는 간담회만 예고한 상황에서 과연 그들이 신뢰의 비용을 지불할 생각이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또한 남성 작가들에게 ‘입을 다물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에서는 다른 맥락을 읽어야 한다. 왜 그런 불만과 문제제기가 생겼는지, 그리고 이해관계는 어떻게 충돌했으며 오해는 없는지. 회사-작가의 싸움과 작가 간 불만과 문제제기를 하나로 묶는 것은, 결국 작가간 갈등으로 현재 사안을 덮어 신뢰를 깨 버린 책임을 물을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를 인식했다면, 최소한 그것이 문제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문제 해결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에게 ‘냉정’과 ‘침착’ 사이에서 움직이라고 훈계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미스터리에 걸쳐 있던 문제를 현실의 문제로 끌어내린 사람들은 문제의 당사자일 뿐 아니라, 그동안 켜켜이 쌓여 차갑고 냉정하게 식은 분노에 발을 디디고 서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조건 옳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이 거기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냉정과 침착 사이에서, 본인의 입장을 가지는 것과 나와 같은 입장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