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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Jan 11. 2018

레진님, 사회생활 안해보셨죠?

재밌는 것만 하신다구요?

    그만 쓰고 싶다. 레진코믹스 이야기. 작가들이 웹소설 작가를 간담회에 초대하지 않으면 시위하겠다 예고했고, 레진은 간담회 장소를 잡았으나 거부당했다. 그리고 장소를 핑계로 간담회를 연기했다. 하지만 그것이 함정카드였다. 작가들은 이런 사태에 대비해 미리 레진 사옥 앞에서 집회를 신고해 놓았고, 레진이 정말로 간담회를 연기하자 1월 11일, 레진 사옥 앞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작가, 독자를 비롯 약 150여명 정도의 인원이 모였다. SBS를 비롯해 허핑턴포스트 등 다양한 취재진도 눈에 띄었다.

레진코믹스 사옥이 있는 신사역 큐브타워에 모인 150여명의 작가와 독자들. (사진제공 : 웹툰인사이트)

    레진코믹스는 그동안 작가들에게 '고생을 많이 안해봐서 그런다' 거나, '일부 작가들이 다수의 선량한 작가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등 작가에게 소위 가스라이팅과 갈라치기를 했다. 작가들의 편을 가르고, 200만원 MG(미니멈 개런티)를 볼모로 잡아 작가들과 독자들을 기만했다. 최소한 기만하려 했다. 실패했지만.


    사회생활 안해서, 고생을 안해봐서 그런다고 했던 대상이 작가라는게 기가 찰 일이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개인사업자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기업들의 온갖 갑질을 견뎌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회생활을 몰라서 그런다'는 말을 하다니, 언어도단이라는 말이 여기에 쓰이는 건가 싶었다.


    흔히 한국의 남성들(줄이면 큰일나는)이 말하는 '사회생활'이란 무엇일까? 2시간 회의해놓고 5분 담배피우다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것? 업무시간 내내 아랫사람을 갈구다가 저녁에 양주를 따라야 사회생활일까? 사회생활을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의미가 이렇게 나온다. "사람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집단적으로 모여서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생활."


    집단적으로 모여서 질서를 유지하는데 그 질서중 하나는 힘의 균형이다. 플랫폼으로서 작가의 처우를 보장해주어야 하는 이유는, 사업 파트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야 작가와 플랫폼, 갑과 을의 힘의 균형이 맞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의 질서는 의사소통이 가능할때 생긴다. 의사소통이 없는 질서가 어떤 식이었는지 지난 9년간, 우리는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레진님'이 요구하는대로 되는게 질서라면, 박근혜가 통치하던 시기의 질서와 다른것이 무엇일까? 그게 사회생활이라면, 예스맨 이외에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일까?

피켓의 문구가 눈에 박힌다. 레진은 지난 8월 웹소설을 일방적으로 종료했고, 해외연재 정산을 2년간 하지 않았다. (사진:웹인)
국민없는 나라없고
작가없는 레진없다


    마감을 앞두고 있는 작가들부터 지방에 사는 작가들까지, 수많은 작가들뿐 아니라 독자들이 레진코믹스 사옥 앞에 모였다. 구호를 외치는 속에서 "국민없는 나라없고, 작가없는 레진없다"는 구호가 귀에 박혔다. 레진코믹스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만화를 파는 회사다. 엔터테인먼트로 다변화를 꾀했지만, 그리고 해외진출을 노렸지만 사실상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시 기본을 돌아봐야 할 때다. 만화를 파는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은 작가다. 작가가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레진을 비롯한 플랫폼과 에이전시들이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레진은 웹소설을 졸속으로 폐지하면서 법무팀 검토조차 제대로 받지 않은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샀다. 8월 초에 비전을 제시하던 사람이 2주만에 폐지결정을 알려야 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레진님'의 사회생활은 어떤 식이길래, 비전을 가지고 사업을 키울 생각을 하는 직원을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대상자로 만드는 것일까? 그것이 궁금해 누적 적자를 확인할 수 있는 장부 공개를 요청했고, 레진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다. 암에 걸린 작가에게 지각비를 강제로 뜯고, 아프신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휴재요청을 한 작가에게 증빙서류를 요구해 비극적인 사태를 초래했다. 그리고도 자신들의 실수를,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뻔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감과 뻔뻔함은 다르다. '사회생활'이 갖는 함의가 다른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자신감은 실력이 있을때 드러나지만, 뻔뻔함은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때 탄로나는 모습이다.


    블랙리스트 의혹도 마찬가지다. 블랙리스트를 레진코믹스 한희성 대표가 지시했고, 거기에 직원들이 응했다. 레진코믹스의 직원들은 어떤 식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건지도 궁금해진다. 블랙리스트에 실렸다는 의혹을 받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프로모션을 제외시켰는데, 그 작가들은 장르 1위, 전체매출 10위권 이내 작가들이었다. 사회생활을 그렇게 잘하는 분이, 기업의 기본인 이익추구를 포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이 모든 사태를 겪고 나니, 이제는 진심으로 혼란스럽다. 그래서 묻고 싶다.


레진님, 사회생활 안해보셨죠?


    레진코믹스는 "우린 재미있는것만 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동안 재미있었을 것이다. 원하는대로, 말하는대로 되는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 재밌었을 거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려면, 공동의 규칙을 지키려면 하고싶은걸 참기도 해야 하고, 재미없는 일을 해야 하는 때도 온다.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기 싫은 일이고, 자존심이 꺾인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사회생활을 안해본 사람들에겐 그럴 거다.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하는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라는걸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렇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 레진코믹스 사옥 앞에 모인 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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