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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Jan 11. 2018

진짜였다. 블랙리스트가.

똑똑, 들리세요? 블랙리스트 없다면서요?

    시위를 다녀오는 길에 뉴스를 봤다. 그리고 언제 나올까 기다렸던 뉴스가 나왔다. 8시 40분쯤, 2분에 걸쳐 SBS 8시뉴스 단독으로 나온 뉴스다. 이 뉴스에서는 레진코믹스 사옥 앞에서 작가들과 독자들이 함께 진행한 시위는 물론, 레진은 극구 부정하고 정황증거만 있어 의혹으로 여겨지던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드러났다.


    레진은 그동안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정하고, '철없는 작가'들의 불만으로 의혹을 일축했다. 작품 선정은 자체 데이터를 통해 프로모션 작품을 선정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거울아 거울아>, <안녕 커뮤니티>등의 작품을 연재한 다드래기 작가는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윤태호 만화가협회 회장을 비롯한 만화가협회 임원 및 사무국장과 동석한 간담회 자리에서 레진코믹스의 임원진들이 "반복해서 블랙리스트는 없었다"고 수차례 반복해 말하며 "책임지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화면캡쳐 : SBS 8시 뉴스)

    그동안 작가들이 요구했던 것들은 크게 세가지다. 1) 웹소설 폐지, 지각비 시스템의 실패를 인정하라. 2) 대표가 직접 사과하라. 3) 손해 작가들에게 배상하라. 상식선에서 이해가 가는 요구들이다. 여기에 레진은 작가들이 투쟁해서 얻어낸 결과를 작가들에게 레진코믹스가 '베푸는' 것 처럼 보도자료를 뿌리고, 마치 작가들이 생떼를 쓰는 것 처럼 말했다. 뿐만 아니다. 한 블로거는 "본질을 호도하는 작가들"이라며 지엽적인 문제를 본질적인 문제인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작가 편가르기다.


    2015년 MG사태(레진코믹스 연대기 참조) 당시에도, 그리고 2016년 예스컷&노쉴드 당시에도 그랬다. '분란을 일으키는 철없는 일부 작가들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작가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말이다. 작가들이 사이버불링을 당하는 상황을 "작가 병크"라는 말로 정리한 레진코믹스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기는 무리겠지만, 블랙리스트만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레진이 그정도일리 없다는 생각보단, 작품을 배포하는 플랫폼이 작가들에게 그정도까지 했을거라곤 생각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랙리스트는 실존했다. 특정 작가를 찍어서 프로모션에서 배제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직원들끼리 이야기했던 내용이라고 했지만, 업체 대표가 직접 작가와 작품을 찍어서 지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철없는 작가들의 항의가 마침내 레진코믹스를 지상파 방송에 데뷔시켰다. 그럼 이제 생각해보자. 철없는 것은 누구였을까? 레진코믹스는 앞서 말한대로 MG사태 때부터 꾸준히 철없는 작가들과 선량한 작가들을 편가르고 싶어했고, 그때는 잘 먹히는 것 같았다. 레진은 지각비 9%, MG 코인수익 비율을 5:5에서 7:3으로 조정하는데 성공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레진코믹스 내에서 매출 TOP 10위 안에 들던 작품을 블랙리스트로 낙인찍어 프로모션에서 제외했다. 작가들이 별다른 요구를 한 것도 아니다. 작가들이 더 작품을 잘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달라는 것, 수익 정산을 제대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요구가 작가들을 블랙리스트로 낙인찍은 이유였다. 자신의 기분이 나빠서 매출이 나오는 작가의 작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용단. 역시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에 자신의 닉네임을 넣은 "레진님"의 위대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흔히 이런 결정은 철없는 시기에 치기어린 마음으로 저지르는 실수라고 생각하지만.


    2018년 1월은 작가들에게 작은 승리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철없는 거대 플랫폼의 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의혹을 사실로 밝혀낸 사건이다. 작가들의 이 작은 승리의 기억이 궁극적으로 웹툰업계의 표준을 바꾸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 더이상 인터뷰에 "두달만에 사람 만난다"는 말을 쓴웃음을 지으며 하는 작가가 없기를 바란다. 


덧) 레진은 작가들이 좋은 만화를 더 잘 그리고 싶어 건의한 내용을 "블랙리스트"로 낙인찍었고, 거짓말을 계속 키워 일을 키웠다. 아마 사회생활을 안해봐서 잘 모르나본데, 사실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는게 사회생활의 기본이다.


*이 글은 웹툰인사이트의 기사에 제공한 코멘트의 긴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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