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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Jan 31. 2018

#나도_고소하라

우리의 연대는 견고하고, 연대하는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다.

    '레진이 또 레진했다.' 2018년 1월 30일의 레진코믹스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또 이 얘기로 돌아온다. 1월 30일, 화요일은 만화영상진흥원과 부천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고 만화가협회와 웹툰산업협회 등이 함께해 "공정한 웹툰 생태계 조성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된 날이기도 하다. 토론회의 시작은 역시 레진코믹스의 부당행위 사례를 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토론회 자료집 3페이지에 걸친 레진코믹스의 불공정 계약 및 부당행위 사례만 해도 지각비, 중국 정산 누락, 블랙리스트, 세이브 원고 MG 미지급, PD에 의한 유언비어, 인신공격성 발언 의혹, 계약 후 8-12회 세이브 원고를 요구한 다음 연재 불가 통보, 사측이 매칭한 스토리 작가와 글작가의 연재가 불가능해지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점, 직원 아이디를 외부인과 공유해 유료결제분을 보여주었다는 의혹, 작가와 사전 논의 없이 해외 서비스 코인 가격 조정 및 업데이트 중단에 더해 웹소설 폐지가 있었다.


2018년 1월 30일, "공정한 웹툰 생태계 조성을 위한 토론회" 가 열렸다.


    덕분에 토론회의 열기는 뜨거웠다. 앉을자리가 없어 추가로 의자를 들여오고, 책상 사이사이에 의자를 배치해야 했다. "상생을 먼저 논하기 전에, 공정한 환경을 만들고 그 위에서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는 청강문화산업대 박인하 교수의 말에 모두가 공감하는 자리였다고 믿는다. 각 단체들이 가진 한계와 최선을 경주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표준계약서 현실화에 대한 토론이 한창 진행됐다.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나오던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레진코믹스는 보도자료를 하나 배포한다.

레진코믹스가 보내온 보도자료 내용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해당 법무법인은 업계에서도 손꼽는 대형 법무법인이란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소문도 들린다. 길고 긴 소송전으로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이를 통해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끝내버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기업이 불공정을 고발한 사람들을 어떻게 괴롭히는지 지켜봐 왔다. 지난 1월 20일 만화가협회의 성명에서 "만화가협회 모두의 싸움"이라는 말을 보고도, 레진코믹스는 공정한 웹툰 생태계를 논하는 토론회 날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누가 발언을 해도 당연히 레진의 사례가 등장하는 토론회 날, 기사에서 레진코믹스가 언급되는 것보다 자신들의 고소 기사가 먼저 나가기를 노린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만화계에서 이런 전례가 없던 것은 아니다. 웹투니스타가 방송을 막 시작하던 2013년 여름, 키*툰이라는 업체는 칼럼니스트 서찬휘 씨를 고소했다. 사실상 사업을 접는 수순에 들어가면서도 위해를 가하기 위함이었다. 더 이전으로 올라가 선생님들의 말을 들으면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작가에게 베끼기를 시키고, 원고료를 빼돌리고. 사라져 간 만화가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분노한 상태에서 보도자료의 형태로 법적 대응을 홍보하는 행태는 내 기억으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레진_나도_고소하라


    당연히 모두가 분노했고, 작가들 뿐 아니라 평론가, 독자들까지 나서 #레진_나도_고소하라 해쉬태그 운동을 시작했다. 최전선에 선 작가들을 혼자 두지 않겠다는 연대 의사 표시였다. 작가들 사이에선 이미 피해 작가들과 연대하며 동맹 휴재를 선언한 작가들 외에도 추가로 휴재를 선언한 작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뿐 아니다. 오후 11시가 조금 넘어서는 한국 만화가협회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너무 느리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협회지만, 아주 빠르고 강경한 대처를 보였다.

만화가협회와 웹툰작가협회의 성명

         분노의 시선으로 읽어서일까, 협회의 성명은 일견 감동적이었다. "협회도 고소하라!"는 일갈은 통렬했고,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메시지는 명징했다. 작가의 발언을 사찰해 징벌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업체들에 대한 날 선 비판과, 확고한 연대 의사가 반갑다. 하지만 한편으론 입을 다물고 있는 다른 협회들이 눈에 밟힌다.


    나는 레진코믹스 연대기를 쓰고, 방송을 만들었다. "레진코믹스 연대기"라는 제목을 만들면서 나는 유치한 발상을 했다.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의 차용(각각의 방송 제목들을 거기서 빌려왔다)이자 시간순의 연대(年代)기, 그리고 한 덩어리로 결속되어 있음을 뜻하는 연대(連帶)의 기록. 부끄러워서 끝까지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받는 작가, 연대하는 작가들과 독자들과 함께 연대하는 모두의 기록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알아줬으면 했다.


    "나를 고소하라"는 메시지는 닳고 닳은 오래된 것일지언정, 메시지는 명징하다. 기업이 개인의 생계와 커리어를 무기로 부당하게 작가의 창작행위를 방해하는 행태를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이다. 나는 기록하고, 기억하며,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갈 때마다 그 이름을 꺼내 전시할 것이다. 우리의 연대는 견고하고, 연대하는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끝까지 연대하고, 기록해 이 역사의 증인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나도_고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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