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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Feb 01. 2018

2시간 18분,  후원 마감까지 걸린 시간

우리는 연대할 것이고, 연대하는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훈훈한 소식이다. 2018년 2월의 첫날, 개기월식이 끝나고 난 오늘은 꽤 추웠다.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기온이 내려갔다. 뿐만 아니다. 레진코믹스가 작가들에게 법적 대응을 실행에 옮기겠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이틀 전인 1월 30일, 그리고 #나도_고소하라 해시태그가 그날 밤부터 1월의 마지막날을 장식했다. 1월 30일 밤, 만화가협회의 트위터로 "후원 모금 요청이 있다. 통합해서 만화가협회가 담당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한 이사는 바로 이사회에 올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2월 1일 저녁, 만화가협회 홈페이지에 공지가 하나 올라온다. 그 시각이 저녁 7시 42분. 공지가 올라오자마자 확인했고, 바로 SNS를 통해 소식을 알렸다. 협회에서 특정 사업에만 사용하는 계좌로, 2017년 사업이 끝나고 잔고가 0원이 된 계좌라고 했다. 후원금은 블랙리스트 등 레진코믹스 관련 소송비용으로만 사용될 예정이라는 말도 쓰여있었다.

2월 1일 올라온 레진코믹스 후원

    그리고 트위터에는 후원 인증글들이 빗발쳤다. 말 그대로 통장에 정의가 빗발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덕질용 계좌에서, 누군가는 친구가 주는 선물 대신 후원하겠다며 인증을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는 불안감이 있었다. 많이 모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인터넷 뱅킹을 쓰는 시대에 ATM기가 있어야 입금을 할 수 있는 나는 몸을 일으켜 ATM기로 향했다. 이 후원 러쉬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 시간이 밤 9시 36분. 공지로부터 약 2시간이 지났다.

때로는 아날로그가 디지털보다 빠릅니다.

    그로부터 약 7분여 뒤, 두 작가와 만협, 웹툰작가협의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예상보다 후원금액이 많이 들어와 밤 10시를 기해 후원을 마감한다는 공지였다. 예상보다 많은 모금액이 모여, 피해 작가들과 협의해 10시부로 모금을 마감하고, 레진코믹스 피해작가 지원후 남은 금액은 타 플랫폼의 불공정 계약으로 분쟁을 겪고 있는 작가들의 후원금으로 확대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밤 9시 43분에 수정된 만화가협회의 공지.

        그리고 시간은 10시를 넘겼다. 2시간 18분만의 일이다. 전해듣기론 만화가협회에서 예상액보다 많은 돈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무서웠다'고 했다고 한다. 피해작가들의 변호사 비용을 대고도 남은 후원금을 다른 작가들의 분쟁 후원금으로 사용할만큼의 돈이 모였다. 후원에 늦어버린 사람들은 아쉬워했고, 후원에 성공한 사람들은 기뻐했다. 마치 티켓팅이 끝난 후의 모습과도 같았다. 오래간만에, 모두 즐거움에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한번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만화가협회의 가장 최근 성명글에 가서 익명성을 이용해 어떻게든 싸우는 이들을 폄훼하려고 했던 사람들, 독자를 개돼지 취급했다던 사람들, 불법사이트를 이용하며 작가를 '응징' 한다며 비웃던 이들에게 묻는다. 진짜 독자는 누구였나? 독자 공인인증 시험이라도 있는 것인지, '진짜 독자', '작가를 지키는 독자는 이제 없다'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나? 당신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다.


    최전선에서 힘든 싸움을 하는 작가들을 외롭게 두지 않겠다는 선언을 함께 하는 독자들이 여기 있다. 한국 만화의 역사에서 오늘은 또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2018년 2월 1일, 레진코믹스의 소송에 맞서기 위해 모금을 해달라는 요청에 만화가협회는 후원계좌를 열었고, 2시간 18분만에 후원금액을 훨씬 넘어 계좌를 닫았다. 앞으로의 싸움은, 몇번이고 말했던대로 길고 지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대할 것이고, 연대하는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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