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데이즈>, 아니영, 케이툰, 2017-연재중
아니영 작가는 교실에서 벌어지는 권력싸움과 비극을 그린 <영광의 교실>,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지만, 그렇기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했던 사랑을 그린 <아무런 말도 없이> 등을 연재했던 작가다. 두 작품 모두 현실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에 맥거핀에 가까운 판타지를 버무려 초반 몰입도를 높이는 작품이다. 독자들은 초반부에 등장한 교실속 정글이나 마음씨와 같은 메타포에 빠져들지만, 작품을 다 보고 나서는 사실 그것들 보다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신작인 <엑스트라 데이즈>는 조금 다르다.
<엑스트라 데이즈>의 시대적 배경은 22세기.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죽은 가족의 안드로이드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배경이다. 뇌에 이식된 기억칩을 복사, 가족의 외형과 버릇까지 완벽하게 복사하거나,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커스터마이징까지 할 수 있는 로봇이다. '이상적인 도시'라고 불리는 윈즈 시티의 맥코이 사(社)는 오랜 시간동안 로봇을 발전시켜 의수, 의족은 물론 사람과 거의 똑같이 사고하고 반응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죽은 부모보다 죽은 자식을 더 많이 살린다. 작품 속 세계관에서는 이미 죽음을 맞이해 소멸했거나 장기 실종상태인 가족을 복구(?) 해 주는 것으로 나온다. 사회적 합의가 어느정도 이루어진 상태로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복잡한 서류와 절차를 거치고 나서도 로봇 가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처럼 보인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 웹툰의 초반부에서 등장인물중 하나인 '하라'는 안드로이드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지?"
하라는 가족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하라가 일하는 부서는 안드로이드로 가족을 만들어주는 부서다. 하라는 가족을 잃고, 거의 전신이 로봇인 반(半) 안드로이드 인간이다. 하라는 '생물학적 가족'이라고 반박하지만, 안드로이드는 '너는 가족이 있는 걸까?'하고 묻는다. 하라는 맥코이에서 어릴 때 부터 거두어 키운 고아로, 일종의 실험대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하라에게 가족은 있는 걸까?
인간의 실존은 오랜 시간 인간을 괴롭혀 온 질문이다.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지난 수천년간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에 이제 갓 스무살이 된 하라가 답을 내릴 수 있을리 만무하다. 하지만, 인간은 철학에서 벗어나 이제 인간의 본질을 과학의 단계에서 탐구하고 있다. <엑스트라 데이즈>는 이 두가지를 무겁지 않게 버무려내고 있다.
<엑스트라 데이즈>에서는 그 답으로 기억과 외형, 그리고 주변인의 인정으로 내리는 것 처럼 보인다. 외형과 그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 주변 사람들을 납득시키고, 그를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으로 보는것이 옳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번째 에피소드 '모네의 초상'에서, 모네는 죽기 전 12시간의 기억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 원래 주인이었던 소녀인 모네는 죽었지만, 그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심지어 그 기억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만약 서로를 모두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안드로이드 가족이 등장한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왠지 거부감이 든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인간인가'하는 질문은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에서도 등장했던 질문이다. 한손과 다리가 오토메일(기계 의수)인 형 에드워드, 그리고 영혼에 갑옷을 붙여놓은 동생 알폰스는 <엑스트라 데이즈>의 하라와 닮았다. 인간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하라는 몸의 절반 이상이 로봇이다. 그러나 그를 인간으로 보지 않을 이유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100% 로봇인 존재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상 말이다.
<엑스트라 데이즈>에 등장하는 미래는 우리에겐 아직 너무 멀리 있어서 과학보다는 공상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웹툰에 등장하는 기술들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와있다. 인공 의수를 만들어 뇌파로 조종하는 단계는 몇년 전에 실현되었고, 인간의 기억을 데이터화해 저장하는 기술도 연구중에 있다. 물론 이 웹툰에서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일어난 후를 그리고 있지만, 우리에겐 어쩌면 그 길고 지난한 합의의 과정이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이 웹툰을 보는 또 한가지 재미는, 바로 소 챕터별 제목이다. 지금까지 두번째 에피소드까지밖에 나오지 않았으나, 첫번째 에피소드는 '모네의 초상', 그리고 두번째 에피소드는 '살롱 드 모리'다. 각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인 모네와 모리와 관련된 에피소드임을 나타내고 있다. 모네는 아마 인상파 화가로 유명한 클로드 모네에서 따왔을 것으로 보인다. 모네는 초기 인상파 화가로, 보이는 것 보다(또는 실제보다) 밝은 색채로 그려내 당시 평단에서 악평을 받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모네의 초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모네는, 기억이나 실제보다 더 밝은 현재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인상파 화가들이 보이는 것 보다 밝은 이미지를 그려냈듯이.
두번째 에피소드는 '살롱 드 모리'를 운영했던 유우씨의 혈육이자 로봇으로 되살아난 모리, 그리고 그를 살려낸 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라틴어로 '모리'는 죽음을 의미한다. 모리씨의 기억이 남아있는 방은, 말하자면 '죽음의 방'인 셈이다. 모리를 살려낸 진이 원하는 것, 그리고 모리에게 바라는 것은 서로 상충한다. 그 과정에서 진은 모리를 '수정'한다. 모리의 어머니인 유우가 죽고 나서야 20년이 지난 기억을 되살릴 수 있게 된 진,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는, 누구보다 죽음에 가장 빨리 다가갔던 안드로이드 '모리'는 과연 어떤 삶을 찾게 될까. 모리의 방, '죽음의 방'에서 그들은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
<엑스트라 데이즈>는 '하라'와 등장인물들의 정보격차를 이용한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인간이지만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안드로이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계에 있는 인물인 하라는 패밀리 부서에서 일하며 가족이 되어가는 로봇, 그리고 가족을 받아들이는 인간을 마주하게 된다.
하라는 말하자면 우리의 모습이다. 지금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를 걱정하지만 낙관하기도 하고, 동시에 비관하기도 하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에 대한 이해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이 웹툰은 가족을 되살린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재의미와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웹툰이다. 이제 13화가 연재된 웹툰이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