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컬링부>, 곽인근, 다음웹툰, 2010
나는 컬링 팬이다. 몇년째 유튜브로, 최근에는 페이스북 라이브로 컬링 경기를 찾아서 중계를 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2018년 평창 올림픽은 꽤 의미가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나라의 여성 컬링팀은 4강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TV 고화질로 실시간 중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팀은 기량면에서도 압도적이었다. 세계 최강들을 줄줄이 꺾으며 조 1위를 확정지었다. 재미있게도 내가 컬링을 처음 접한건 바로 이 만화 덕분이었다. <반짝반짝 컬링부>는 25회짜리 만화다.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즈음 시작했던 웹툰이다. 시골학교의 계약직 교사가 정교사가 되기 위해 얼떨결에 떠맡게 된 컬링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같기도 하다. 시골 학교, 컬링이라는 키워드를 조합하면 지금 화제의 중심인 Team Kim이 떠오른다. 실제로 댓글 중에는 의성여고 이야기가 소개되기도 했다.
곽인근 작가의 이력도 재밌다. 곽인근 작가는 원래 2005년에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해 2008년, 뮤지션이자 소설가 이적의 소설 원작 <제불찰씨 이야기>의 감독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10년 웹툰 데뷔작이 바로 지금부터 소개할 <반짝반짝 컬링부>이다. 각지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직선을 배제한 그림체는 이때부터 곽인근 작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애니메이션 감독을 해서인지, 이 작품과 더불어 <당신과 당신의 도서관>, <사춘기 메들리>등 중편 위주의 작품활동을 해왔던 곽인근 작가는 현재 데뷔 이후 두 번째 장편이라고 할 수 있는 <첫사랑은 죽었다>를 연재중이다.
<반짝반짝 컬링부>의 주인공인 명문고 컬링부는 장학사의 한마디에서 시작했다. '로비가 휑하네요. 트로피도 없고.' 라는 말 한마디에 교장이 소집한 회의에서 기간제 교사인 박남열은 신문에 있는 "ㅇㅇ고 컬링 연습 6개월만에 메달"이라는 기사를 보고 인상에 남기 위해 컬링부를 만들자는 의견을 냈다가 얼떨결에 컬링부 담당 교사가 되고 만다. 교장은 이후 기간제 교사인 박남열에게 계속해서 재계약 이야기를 꺼내며 박남열을 압박한다. 교장이 컬링에 대해 아는 것은 '닦는 것' 정도고, 컬링부 아이들과는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다. 그렇지만, 교장을 탓하기만 하기도 어렵다. 컬링 교습을 받는 것은 숫자가 적어서 그렇지 저렴한 편(1회 2만원)이다. 그러나 장비를 사는건 이야기가 다르다. 컬링스톤은 1개에 40-70만원 선이고, 팀당 8개씩 최소 16개가 필요하다. 얼음을 닦는 브룸은 탄소섬유 재질로 1개에 15-50만원으로, 4인 팀에 적어도 4개는 필요하다. 이렇게만 잡아도 최소 수백만원에서 천만원까지 투자를 한 셈이다. 여기에 (회식비를 제외한) 링크 대여, 선수용 렌트카, 대회출전을 위한 행정지원 등을 했으니 책임은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박남열의 앞에서 청년 실업을 들먹이며 재계약을 빌미로 메달을 따오지 못하면 재계약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겁하다. 팀이 생기자마자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트로피를 요구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결과만능주의를 꼬집는다.
물론 8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컬링 경기장은 여전히 한손에 꼽는다. 때문에 벤쿠버 패럴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우리 선수들은 야외 수영장에 물을 얕게 받아 얼린 다음 그 위에서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결과만능주의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에게 "실패"라는 제목을 붙이는 언론사가 수두룩하다. 곽인근 작가는 이런 지점을 지속적으로 꼬집는다. 작가의 작품들에는 임용고시 준비생(당신과 당신의 도서관), 선생(첫사랑은 죽었다), 학생(모든 작품)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고시-입시라는 시스템은 결과중심적이다. 그리고 곽인근 작가는 그 과정을 살아내야 하는 교사와 학생, 수험생을 비추며 결과만능주의가 쉽게 간과하고 마는 개인의 삶을 비춘다.
곽인근 작가의 작품들에선 허투루 쓰이는 인물이나 서사가 없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하나의 인격체로 살아 숨쉰다. 컷과 공백, 배경에 깔리는 소리와 이미지는 애니메이션의 연출과 닮았다. 동시에, 정지된 만화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여백은 독자들에게 여운을 주기에 충분하다.
<반짝반짝 컬링부>의 선수들은 평범한 학생들이다. 컬링을 하나도 모르는 학생들이다. 컬링부의 선수들은 동전을 잘 던져서, 청소를 잘 해서, 동전 잘 던지는 애와 친구라서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이 선수들은 컬링이라곤 하나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담배피우다 걸려 6개월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된 근중, 청소를 꼼꼼하게 잘해서 발탁된 순종, 동전던지기를 잘 하는 달권이와 같은 아이들이 팀원이다. 그나마 습득이 빠르고 머리회전이 좋으며 전략전술과 장기에 능한 친구가 있었고, 이 친구가 팀의 주장 스킵이 된다. 컬링의 팀명은 보통 스킵의 성을 따서 정한다. 그리고 이 친구의 이름은 김성도. 그러니까, 이 팀의 이름도 "Team Kim"이다.
물론, 컬링은 쉬운 스포츠가 아니다. 미국의 비디오 게임회사 아타리의 공동창업자 놀런 부시넬(Nolan Bushnell)은 "최고의 게임은 배우기 쉬우나 마스터하긴 어려운(Easy to learn, hard to master) 게임"이라고 했다. 바로 컬링이 그렇다. 구슬치기처럼 보이는 스포츠지만, 그 안에서도 전략과 전술이 있다. 마치 골프처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지루한 게임이지만 아는 사람이 보기엔 흥미진진한 한수 한수의 대결, 치열한 두뇌싸움은 물론 스위핑과 스톤, 얼음 표면의 변수까지 다양한 재미가 있는 스포츠다.
뿐만 아니다. 컬링은 가장 성평등한 스포츠이기도 하다. 동계스포츠 중에는 여성 종목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스피드스케이팅 1만미터에는 여성 종목이 없고, 스키점프는 노멀힐과 라지힐 중 노멀힐만 가능하다. 때문에 여성이 딸 수 있는 메달의 개수는 남성의 경우보다 18개나 적다. 메달의 문제가 아니다. 아예 도전의 기회를 박탈하는게 문제다.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같은 코스에서 경쟁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알파인스키와 크로스컨트리와 같은 종목들을 비롯한 많은 종목들은 성별에 따라 코스 길이나 난이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반면, 컬링은 동호회 경기에서는 성별이 중요하지 않다. 캐나다에서는 80대 노인도 즐기는 국민스포츠가 바로 컬링이다. 곽인근 작가는 이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반짝반짝 컬링부>의 명문고 컬링부가 첫번째로 상대한 팀은 노인, 중년, 고등학생, 초등학생으로 이뤄진 혼성팀이다. 그리고 남자 고등학생만으로 이루어진 명문고 컬링팀은 이 팀에게 처참하게 패배한다.
이번 평창 올림픽부터는 믹스더블이라는 혼성종목도 추가됐다. 4인이 아니라 두명이서 하는 컬링으로, 선수들은 각각 1,5번, 2,3,4번의 스톤을 던진다. 그리고 이 순서는 매 엔드마다 변경할 수 있다. 성별에 상관없이 같은 역할을 부여받는다. 경기장의 크기도 성별 구분이 없고, 룰도 완벽하게 같으며 혼성으로 해도 문제가 없는 동계 올림픽 종목은 드물다. 컬링에서 유일하게 차별적인 지점이라면 팀명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스킵의 성을 따르는 팀명은 (아마도)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가족들이 즐기는 민속놀이에서 유래한 스포츠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 컬링이 인기를 얻으면서, 컬링 대표팀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 개중에는 모 도의원이 의성에서 자란 팀원들의 가정사를 이야기하며 대표팀의 성과를 이야기했다. 또는, 마치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팀인 것 처럼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여성 컬링 대표팀은 2016-17 아시아태평양 선수권을 석권한 팀이다. 2연패에 더불어 작년에는 전승우승을 따내기도 했다. 명실상부 아시아 최강팀이다. 그런 선수들의 선수로서의 커리어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고, 시골 사람들이 올림픽에서 흥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리는 것 같아서 아쉽다.
<반짝반짝 컬링부>는 선수들의 개인사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쩌다 담배를 피우게 되었는지, 왜 그렇게 청소를 꼼꼼하게 하는지를 조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컬링 선수로서의 명문고 선수들에 집중한다. 선수와 선생의 유대는 어떻게 생겨나는지, 그리고 그 유대는 어떻게 빛을 발하는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한 방송국이 컬링팀의 애칭을 지어달라는 공모전을 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공모전에도, 모 도의원의 얘기에도 선수들은 없다. 나는 남성 선수들에게 이런 애칭 공모전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지금 올림픽에 출전한 컬러들은 동네 친구로 시작해 말도 안되는 무모한 도전에 성공한게 아니다.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중이다. <반짝반짝 컬링부>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과도 비교할 필요가 없는 그 자체로 훌륭한 선수들이다.
<반짝반짝 컬링부>의 25화에 처음 등장하는 세 컷은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는 것으로 시작한다. 초록불이었던 신호는 정지로 바뀌고, 유턴 불가 표지판이 붙어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이 회차의 제목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도전에 의해 절망할 권리가 있다'는 말로, 소설 '골드바흐의 추측'에서 인용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아예 대화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 회차도 있다. 만화적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의 컬링 대표팀과 이 작품의 팀 모두 "Team Kim"이다. 이 선수들은 자신이 선택한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중이다. 영광이건, 절망이건, 그건 그들이 선택한 일에 대한 결과일 뿐이다. 우리는 결과에 주목하고 결과만으로 평가하지만, 사실 중요한건 과정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해왔다. 하지만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작가는 작품을 통해, 그리고 선수들과 박남열 선생의 유대가 만들어낸 선택을 통해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컬링은 가장 평등한 스포츠고, 올림픽은 도전하는데 의의가 있는 국제적인 축제다. 헝가리 국가대표 엘리자베스 마리안 스와니는 스키 하프파이프에 도전해 한번도 점프를 하지 않았지만 찬사를 받았다. "안 될거야"라고 누군가는 포기할때, 도전을 선택한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아마도, 그들의 삶과 그들이 보여준 모습에 대한 찬사와 응원, 그리고 그들이 준 감동에 대한 감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