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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Feb 28. 2018

한 서린 우리네 삶

<쌍갑포차>, 배혜수, 2016-연재중

    배혜수 작가의 <쌍갑포차>는 한국의 문화와 신화를 절묘하게 재창조해 만들어 낸 가상의 세계인 '그승'과 한국전쟁 전후의 한국을 배경으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독특한 정서인 '한(恨)'을 풀어내는 만화다. 2017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작품은 작가의 데뷔작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는 바로 '그승'의 존재다. 이승과 저승의 중간세계이자 꿈의 세계이다. 작가가 창작한 세계인 '그승'은, 이, 저, 그를 이용한 말장난이다. 

작가가 창작한 '그승'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야기를 그리는 작가는 에피소드별로 주인공들이 그승에 있는 "쌍갑포차"에서 내어주는 안주를 제목으로 삼는다. 돼지 뒷고기, 광어회, 박속낙지탕 등 다양한 메뉴들은 주인공들이 좋아했거나, 추억이 얽힌 음식들이다. 음식을 전면에 내세우는 소위 '식도락 웹툰'이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흥미롭다. 소위 말하는 '소울 푸드'로서의 음식이 아니라, 그저 주인공들이 쌍갑포차의 주인에게 이야기를 풀어놓을 장치로서만 기능한다. 때문에, 작가는 음식점이 아니라 포장마차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동식 포장마차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장점은 물론, 소주 한잔을 걸치며 한 서린 이야기를 풀어놓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로 술을 마시는 아저씨를 떠올리게 되는 공간의 주 이용자들은 여성이라는 점이다. 소주를 마시며 걸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눌 것 같은 공간에서,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주인이 반말로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을 부르고, 그들은 앉아서 안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에피소드에서 다루는 주인공들이 주로 여성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이 주로 다루는 주제가 '한'이기 때문이다.

<쌍갑포차>의 첫번째 손님부터 여성이다.

    대표적인 번역 불가능언어로 꼽히는 '한'은 '화'와는 다르다. 화는 감정이 발생해 현재 진행형으로 표출되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한은 그 감정을 표출하는 행위가 없었기 때문에 절망과 체념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응어리진 것으로, 해결이 불가능할수록 그 크기가 커진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한이 맺히는 대상도, 한을 갖는 주체도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민족의 한, 시대의 한처럼 집단에 맺혔다고 볼 수도 있고, 개인의 단위에서도 맺힐 수 있다. 때문에, 한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욱 여성을 억압했던 과거에는 당연히 남성에 비해 여성의 한이 더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다.


    '돼지뒷고기 숯불구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자살을 결심하고 옥상에 올랐다가 쌍갑포차를 만난다. 마트 시식코너에서 파견직원으로 일하는 주인공은 '연탄 위의 오징어처럼 쪼그라든 자존감'으로 자학을 견디다 못해 진상 손님에게 화를 냈고, 그 때문에 직장에서 짤렸다. '생굴'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어린 시절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딸을 버려야만 했던 어머니와, 그 트라우마로 며느리에게 아들을 강요하고, 그 때문에 또다른 한을 낳게 되는 여성들을 그리고 있다.


    '그럼 남성은?' 이라고 물을 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컷이 있다. "좋은 남자"인 최소립은 백목련에게 '요즘에는 세상이 좋아져 여성도 뭐든 할 수 있는 시대'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주인공인 백목련은 자신의 아버지가 하는 말을 떠올리며 말끝을 흐린다. 물론,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그러나 최소립이 백목련을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구조적인 차별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부잣집의 아들인 최소립이 보는 세상과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의 반경과 가난한 집에서 주취폭력과 착취를 일삼는 아버지를 둔 여성인 백목련이 보는 세상, 그리고 그의 행동반경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최소립과 백목련.

    백목련과 최소립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역경과 고난을 뛰어넘는 여정을 보여준다. 전래동화의 플롯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이 뛰어난 점은, 백목련의 희생(인당수에 빠진다거나, 손가락을 자른다거나)이나 최소립의 강압(옷을 빼앗는다거나, 원치 않았던 아이가 생긴더거나)이 아니라 백목련 스스로의 의지로 역경을 벗어나게 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백목련은 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백목련과 최소립이 이어진 이후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이전의 이야기들보다 해피엔딩에 가깝다.


    가장 인상깊었던 에피소드 중 하나를 꼽으라면 대부분 '달걀말이'를 꼽을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한이 해소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28년 전 아이를 잃어버린 할머니의 기구한 사연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충격적인 반전을 겪고, 그승과 이승, 그리고 저승의 이야기가 새로 얽히며 이어진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찾는' 행위를 하지 못해 한이 맺혔던 어머니는 28년만에 아이를 만나며 한을 해소하게 된다. 하지만 의외로 이 에피소드의 키워드는 '연대'다.


    잃어버린 아이의 아버지의 내연녀 제인이 어느날 아이의 어머니를 찾아온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던 그는 아이의 어머니가 '너도 아이 잃어버렸구나. 울면서 말하고 있네'라는 말을 하고 나자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선다. 제인 또한 아이를 잃어버려 한이 맺혔지만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요원했다. 때문에 아이를 잃어버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고, 폐인이 된 그에게 자신이 비행기삯으로 모아두었던 돈을 건넨다. 그리고, 이렇게 있으면 냄새나서 아이가 싫어할 거라며 머리를 감겨 준다.

머리를 감겨주는 제인

    고통을 나눈 당사자들이 연대하는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은 바가지에 겨우 들어갈만한 크기로 묘사된다. 그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무섭게 느껴지는지,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게 느껴지는지를 단편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고통의 시간을 의연하게 이겨내라며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들도, 본인들이 얼마나 힘이 없고 나약한지 느끼고 있는 장면이다.


    이 웹툰에서 주목할만한 또 하나의 지점이 바로 연출이다. 작가는 이 웹툰에서 크기를 이용한 감정연출을 주로 사용한다. 컷의 위치와 인물들을 비추는 카메라가 고정되어있기 때문이다. 컷이 고정된 웹툰은 꽤 있다. 막타 작가의 <막타의 공상과학소설>은 아예 영상을 캡쳐한 듯 한 연출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연출의 경우는 모바일 화면에선 좌우로 꽉 찬 크기에 16:9 정도의 비율을 유지한다. 하지만 이 웹툰은 여기서 한발짝 더 나가 카메라를 고정시킨다. 마치 영상에서 바스트샷을 찍는 것 처럼 등장인물들을 배치하고 말풍선을 위치시키는데, 웹툰에서 한 회차의 시선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볼 수 있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그림에서도 카툰화가 많이 일어나 디자인적 요소가 부각되는데, 독자들은 여기에 자신을 쉽게 대입하게 된다. 단순한 컷 배열과 카툰화를 통해 독자들은 이야기에 빠르게 몰입하게 되고, 동시에 자신을 투영해 이야기에 자기서사를 대입해 읽게 된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희생자-생존자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피해자 탓을 하지 않는 세련된 문장으로 피해자에 이입한 사람들에게 피해자의 서사를 쉽게 이해하도록 만든다.


    <쌍갑포차>는 한국전쟁 이후 한 서린 우리 윗 세대의 삶을 그리고 있다. 사실, 이건 닳고 닳은 이야기기도 하다.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수없이 재생산된 서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닳고 닳은 서사를 단순한 연출과 카툰화한 그림으로 표현하면서도 지루하거나 구식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작가가 등장인물을 다루는 방식과 그들을 설명하는 문장이 세련되었기 때문이다. 시대별로 다른 말투와 다루고 있는 시대의 영상물 등에서 가져온 고증을 통해 현실감을 더하기도 한다. "한"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다루는 작품은 많다. 하지만, 이렇게 섬세한 필치로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그려낸데다, 한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풀어낸 작품은 드물다. 


    쌍갑포차에서 만큼은 모두가 '갑'이라는 말은, 쌍갑포차 밖에서 우리는 을 이라는 뜻이다. 앞서 말한대로, 한은 우리가 억압이나 차별 때문에 생겨난 화 또는 억울함을 표출하거나 해결하지 못할 때 생겨난다. 오래된 서사, 닳고 닳은 주제라는 말은 그만큼 우리의 삶과 가깝다는 말도 된다. <쌍갑포차>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우리는 아직도 한서린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당신의 삶에 작은 위로가 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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