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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Mar 22. 2018

"자연스러움"이라는
부자연스러운 말

<내 ID는 강남미인!> 기맹기, 네이버, 완결

우주의 기본 원칙이 한가지 있다면, 그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우주의 원칙이 완벽함이라면, 나도, 당신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작고한 스티븐 호킹 박사의 말이다. 이 말에 이토록 어울리는 작품이 있을까. 바로 기맹기 작가의 데뷔작 <내 ID는 강남미인!>이야기다. 이 작품은 네이버 요일 순위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던 작품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은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 스스로 "성장 로맨스" 장르로 분류한 이 웹툰은, 주인공 강미래와 도경석의 로맨스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 웹툰이다. 하지만, 80화에 달하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빼놓고 이 작품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주인공 강미래는 진래대 화학과 16학번 새내기다. 어릴때부터 못생긴 외모로 괴롭힘을 받던 미래는 뼈를 깎는 다이어트는 물론 성형수술을 받아 소위 '성형미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변한건 외형 뿐이었고, 미래는 타인의 외모, 특히 여성의 외모에 점수를 매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낮은 자존감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과 동기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미래

    미래의 자격지심은 "내가 아직도 못생겼나?"하는 자괴감에서 온다. 미래는 '그렇게 태어난 본인'을 탓했고, 이는 끊임없는 외모 평가와 자기비하로 이어졌다. 미래와 정 반대의 캐릭터인 한수아는 소위 '자연미인'으로, 예쁜 외모와 사근사근한 성격과 친화력을 가졌다. 그리고 미래와 수아는 학과 내에서 끊임없이 비교당한다. 자연미인인 수아가 더 낫다, 몸매는 미래가 더 낫다는 식이다.


    여성혐오(Misogyny의 번역어로, 여성멸시가 더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다.)의 한 형태로 "성녀-창녀 이분법"이 있다. 여성은 성녀 아니면 창녀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이다. 극단적인 이분법이라곤 했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문화이기도 하다. 작품 초반에 수아는 말 그대로 '성녀'였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외모를 가졌지만 친히 자신들과 교류하며, 또 너무 똑똑하지도 않은 모습을 보인다. 예쁘지만 그걸 잘 모르고, 많이 먹지만 말랐고, 주변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갈수록 수아는 교묘히 그 상황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래와 자신을 은근히 비교하며 '자연미인'인 자신을 '성형미인'이 이길 수 없다는 듯 은근히 미래를 깔보기도 하고, 미래에게 대놓고 조롱을 하기도 한다. 작품 내에서는 '성녀'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수아가, 작품을 보는 독자의 시선에서는 '악녀'로 변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런 수아의 행동을 우리는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


    수아는 "어떻게 하면 본인이 사랑받는지"를 아주 잘 안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가장 예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버려지지 않을 것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독자들은 그런 수아를 비난한다. 그러나, 작가는 수아를 통해 사회가 여성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작품 속에서, 수아는 "누구랑 사귈거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는다. 뿐만 아니라 제대로 말조차 섞어본 적 없는 남성들의 구애를 끊임없이 받기도 한다. 전통적 관점에서 "성녀"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우수한 남성의 선택이다. 그러나 수아는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다. 수아가 원하는 건 자신에게 관심이 쏟아지고,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적 가치관은 그런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수아는 독자들에 의해 '창녀'로 전락하게 된다.

    

'축제' 에피소드 중. 대상화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와 같이 상대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선택의 객체로 만드는 것을 '대상화'라고 한다. 상대에게 인격을 박탈하고, 물건처럼 대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여성을 꽃에 비유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30화부터 시작되는 "축제" 에피소드는 이 대상화 문제를 정면으로 들이받는다. 학과 주점을 열면서 여성에게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도록 통보하고, 각종 외모품평과 차별적인 발언을 폭력적으로 쏟아내던 남성들에 의해 대상화된 여성들이 "우리가 매장에 진열된 신발이냐"고 묻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성공한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 '자연적'인 것이 되어 억압을 자행하는 도구로 쓰인다. 33화에서도 같은 말이 등장한다. 오프숄더 드레스가 불편하고 신경쓰인다고 불평하는 학생에게 다른 학생이 "받아들여. 이게 전통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통'이라는 말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로 치환되어 여기에 반박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거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때문에, 자연상태의 차별에 반발하는 사람은 '예민한 사람'이나 '급진적인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작년, 일본 문화 연구자들 사이에서 "Politics of Kawaii(카와이 정치학)"이라는 말이 돌았다. 2017년 9월 17일자 재팬투데이 기사의 제목은 "Sexism and Culture: Japan’s Obsession With Kawaii(성차별과 문화: 일본의 카와이 집착증)" 였다. 기사 원문중에는 “일본의 여성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귀엽게(카와이)” 보이도록 요구받는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서 “여기서 카와이란, 유아적인 것을 말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걸그룹이 턱받이를 하고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 아이돌의 '팬'은 선물로 아이들이 입에 무는 쭉쭉이를 선물로 줬고, 또다른 아이돌은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공격을 받았다. '대상화'의 범주에 상대방을 욱여넣기 위한 시도와 거기서 벗어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대상화의 문제를 극명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기사 말미에는 대부분의 일본 젊은이들은 이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덧붙여져 있었다. 


    그러나, 이 웹툰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축제 이벤트는 일회성으로, 마치 꿈처럼 사라진다. 학생들은 여전히 미래와 수아를 비교하고, 수아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친구들은 수아를 악마화한다. 혼자 고립된 수아는 자신을 스토킹하던 동기로부터 신체적 위협을 받게 되고, 거기서 수아를 구해주는건 다름아닌 미래였다.

자신에게 공격적인 수아에게 미래가 전하는 말.

    미래는 수아에게 병원으로 가자고 말하며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 묻는다. 강미래와 한수아가 아니라, 여성으로써의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많이 먹지만 살찌지 말아야 하고, 예쁘지만 그걸 몰라야 하며, 똑똑해서도 안되도록 만든 것은 자신들이 아닌데, 왜 싸우는 것은 '우리'여야 하느냐는 물음이다.


    이런 대상화의 파도 속에서 빛나는 두 사람이 있다. 연우영과 도경석이다. 두 사람은 모두 미래에게 관심이 있지만 접근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연우영은 적극적이다. 미래에게 과감하게 대쉬하고, 미래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미래씨는 그대로도 사랑받아야 한다", "미래씨가 어디가 어때서"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해준다. 그러나, 미래는 꾸준히 자신의 옆을 지키고, 꾸준히 관심을 보였지만 그 방식이 서툴렀던 경석에게로 향한다.


    경석은 잘생겼고, 부잣집 아들에 건강한 남성이다. 어쩌면 미래나 다른 여성들의 고통을 몰라도 됐고, 굳이 참견하지 않아도 됐던 인물이다. 경석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있었던 일을 듣고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준다. 방관자로서 "왜 그렇게 사느냐"는 조언을 하던 존재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전통사회'에 반기를 드는 존재로 변모한다. 첫번째 변화는 아버지와의 다툼이었다. 그리고 집을 나왔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자취방을 마련하게 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몰라도 되었던' 것들을 알게 된 경석은 가장 능동적인 변화를 보였으나 슬프게도, 가장 픽션에 가까운 인물이다.


    <내 ID는 강남미인!>은 경석의 어머니를 통해 미래와 수아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당하는 폭력은 특정 연령대의 문제나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님을 짚어낸다. 뿐만 아니라, 단면적인 모습만 나오던 수아의 행동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과거 에피소드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이 작품이 수작인 이유는, '순수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았다는데 있다. '전통적'의미의 순정만화라면 미래가 악역으로 그려졌을지도 모른다. 미래는 외모 뿐 아니라 사랑도 만들어진 가짜라고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현재를 선택했다. 수아 또한 후반부 에피소드에서 어떤 변화를 보이는 모습을 비춰준다. 그런 미래 또한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는 가해자인 한편, 그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졌던 피해자였다.


    이 작품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가해가 만연한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꼬집으면서도 동시에 연대의 중요성, 일상생활을 지켜나가는 단단함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로맨스 만화로도 훌륭한 이 작품이 2년간 꾸준히 인기를 얻으며 성공리에 연재를 마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주인공들을 앞세워 결코 교조적이지 않았던 점이 돋보인다. 앞서 말했던 스티븐 호킹 박사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곳에 있을 수 있었다. 한편, 호킹 박사는 자녀들에게 이런 말도 남겼다. 이 말로 이 웹툰의 리뷰를 끝마치고자 한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이 우주는 생각보다 시시한 곳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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