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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Sep 25. 2017

타인의 인지없이 존재하는 법

롭플롭 (코미코, CTK)

    인간의 존재는 확인받는 것의 연속이다. 굳이 헤겔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서로를 서로의 안에서 발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인정한다. 인간의 거의 모든 욕망은 자신(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 우월함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런 인정이 가능하려면, 자신이 여기에 있음을 인지받아야 한다. 그렇다. 인정의 시작은 '인지 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 타인의 인지 없이 존재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웹툰 <롭플롭>의 주인공 해리 밸머다. 


 해리는 친구 펠릭스와 함께 사는 천재 뇌과학자다.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을 녹음으로 기록하는 버릇이 있다. 뜬금없이 처음 만난 펠릭스에게 '타인의 인지 없이 존재하길 원한다'는 말을 하고, 함께 살게 되면서 슬럼프를 겪는 화가 펠릭스에게 녹음하는 법을 영업(...) 하기에 이른다. 괴팍한 행동을 일삼는 해리는 자신이 있던 연구소도 그만두고 펠륵스의 녹음을 엿들으며 소름끼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해리의 행동은 여러모로 설명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 뇌과학자로서 펠릭스를 연구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목적이 있는지는 알기 힘들다. 뇌과학자로서 연구하겠다는 목적이라면 연구소를 뛰쳐나온 것이 이해하기 힘들고, 또다른 목적, 즉 자신이 타인의 인지없이 존재하기 위해서라면 녹음하는 행동이 설명하기 힘들어진다. 녹음을 한 후에 그것이 의미가 있는 것은 듣는 사람에 의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웹툰에 빠져들게 되는건, 해리가 그만큼 괴팍한 성격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생성되는 서스펜스가 일품이기 때문이다.

  작품에는 끊임없이 펠릭스와 자신이 함께 겪은 사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용한다던지, 펠릭스가 출판사와 계약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담당자를 바꾸려고 그 담당자에게 공포심을 심을 수 있는 행동을 한다. 치밀하다 못해 철저한 계산에서 움직이는 해리의 모습이 여러차례 등장하는 것이다.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해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으리라 짐작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을 움직이고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데 능한 해리의 모습은 극적인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주인공 해리 밸머는 펠릭스를 관찰하는데, 여기에 펠릭스가 해리의 행동에 반응하는 모습이 큰 재미중 하나다.


    앞서 말한대로, 모든 존재는 분명 타인의 인지로 인해 존재가 확인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어쩌면 해리의 질문은 철학적인 질문일수도 있다. 시인 김춘수의 '꽃'에서처럼 우리의 세계는 인식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우리는 모두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리는 대체 왜 그런 질문을 던졌을까? 철학자도 아니고, 실증을 통해 증명하는 과학자인데 말이다. 어쩌면 해답은 제목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롭플롭(Loplop)이라는 제목은 1930년대 초현실주의 예술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이 작품에 등장시켰던 반인반조의 이름이다. 어릴적에 겪은 애완 앵무새의 죽음과 동생의 탄생으로 큰 충격을 받던 에른스트는 롭플롭을 창조해 자신의 예술적 자아로 여겼다고 한다. 어쩌면 해리는 펠릭스가 보여주는 행동을 통해 자신이 인지할 수 없지만, 펠릭스에겐 분명히 인지되는 어떤 존재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CTK 작가는 전작 <잭슨의 관>을 통해서 '시체'라는 소름끼치는 소재를 통해 유쾌한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러스한 활극을 그려낸 바 있다. 초반의 충격과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독자의 몰입을 이끌었던 전작에서는 초반부터 제목에 등장하는 '잭슨'의 존재를 등장시켜 그로 인해 생긴 갈등을 풀어나가는(어쩌면 부숴버리는) 시원한 전개를 보여준다. 그러나 <롭플롭>에서는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가려놓고 캐릭터를 대두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단순히 전개가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팽팽한 긴장 속에서 해리의 눈을 따라 해리가 찾고자 하는, 그리고 작가가 숨겨놓은 것을 독자들이 '인지'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작가가 숨겨놓은 메시지들의 해답은 어쩌면 이미 나와있을 수도, 아니면 우리가 영영 인지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CTK작가의 작품이 기대되는 한편, 매번 챙겨보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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