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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Sep 25. 2017

인생을 즐기는 삶의 자세

<퍼펙트 게임> (다음웹툰, 장이, 2007-2017)



주인공 모두가 야구에 미쳐 있지만 실력이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아저씨들이라는 점이 이 웹툰을 특별하게 만든다.



 2017년,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족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욜로족의 인생관을 한마디로 줄이면 ‘한 번 뿐인 인생, 폼나게 살자’ 정도가 될 것이다. 미래에 대한 대비보다 지금, 현재를 재미있게 즐긴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무리 저축해도 집을 살 수 없고, 대출금을 갚느라 지겹게 일하다가 삶에 묶여 사느니 내 삶의 방향타를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퍼펙트게임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생활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직장에서, 책상 앞에서, 시장통 속에서. 

 

 장이 작가의 <퍼펙트 게임>은 이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던지는 웹툰은 아니다. 장이 작가의 작품들인 <미확인 거주물체>(2009), <파동>(2012-2013)을 생각하면 사회비판적이며 SF요소가 가미된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인 야구를 하는 작가가 그린 사회인 야구 교본만화 <굿모닝 사회인 야구>(2012)를 그리기 한참 전인 2007년, 장이 작가가 처음으로 웹툰을 그리기 시작한 작품이 바로 사회인 야구와 인생을 그린 <퍼펙트 게임>이다. 이미 10년전부터 ‘한번뿐인 인생에 불태울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2011년 연재를 중단해 2016년에 돌아오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간의 그림체 변화만 봐도 이 작품이 작가에게 ‘인생만화’가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퍼펙트 없는 퍼펙트 게임


    주인공 오찬호등 주인공이 사는 곳은 가상도시 하늘시에 위치한 재래시장이다. 여기서 마음이 맞는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과 60대 아저씨까지 모두 모여서 만든 사회인 야구팀 ‘블루 엔젤스’에서 야구를 하는 것이 웹툰의 가장 중요한 뼈대다. 오찬호는 엔젤스의 에이스 투수로, DM이라는 대기업에 취직하게 된다. 생선가게 주인 강용식은 ‘고등어 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리그의 거포다. 이들 외에도 작가 지망생, 공무원, 빵가게와 수제비집 사장등이 팀을 이루어 어쨌든 재미있게 야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실력은 엉망진창이다. 연습중에 공에 맞아 쌍코피가 터지는가 하면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고, 소위 알까기는 단골손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모두가 야구에 미쳐 있지만 실력이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아저씨들이라는 점이 오히려 이 웹툰을 특별하게 만든다.


아저씨들의 매력


    야구 만화인데 야구도 못하고, 주인공들은 재래시장 상인이라면 대체 이 웹툰은 무슨 재미가 있을까? 바로 그 야구경기를 보는데에서 이 웹툰의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웹툰에 등장하는 엔젤스의 감독 김현수 캐릭터가 마치 해설가처럼 상황을 소개하는 장면은 독자를 킥킥대게 만든다. 이런 역할은 김현수 감독 한명의 역할이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조금씩 나눠서 담당한다. 오찬호가 다니는 회사인 DM과 야구팀 엔젤스와의 관계도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연출의 힘도 이 웹툰을 보는 즐거움에서 빼놓을 수 없다. 야구 경기 중에는 투구 하나마다 글러브로 가린 눈에서 공을 쥔 손가락으로, 손가락에서 어깨로, 그리고 포수의 미트로 향하는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컷들은 작게 분할해 긴박감을 준다. 방망이에 맞는 장면이나 땅볼 수비를 하는 장면은 낮은 각도로 잡아 역동적인 동작에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스포츠맨십


     <퍼펙트 게임>이 특별한 이유는 재미 뿐 아니라 현실의 이야기를 엮어 감동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시즌2에서 오찬호와 라이벌들이 일하는 DM 그룹은 엔젤스 선수들이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는 하늘 재래시장에 대형마트를 입점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재래시장의 사람들이 싸워봤지만, 곧 대형마트 입점이 확정된다. 엔젤스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으로 보이는 경기는 하필이면 DM 자이언츠와의 경기였다. 정말 재미있는 건, DM과의 경기 내내 이런 사적인 감정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팀은 서로를 존중하며 정정당당히 승부한다. 감정 실린 데드볼이나 욕설은 오가지 않는다. 오로지 공과 배트, 그리고 글러브로 이루어내는 승부가 보는 이들을 짜릿하게 한다. 매 순간, 매 경기, 공 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퍼펙트 게임>이 주는 재미다.


    30-40대 아저씨들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이 웹툰의 아저씨들은 우리가 흔히 만나는 시끄러운 아저씨들이 아니다. 본인들이 즐길 수 있도록 허락된 공간 안에서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를 즐거움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땀흘리고, 어설프지만 최선을 다해 흙바닥을 구른다. 그러면서도 생활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는다. 가족에게 미안해하고, 섭섭해할지언정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해 가정을 윽박지르지는 않는다. 그저 말없이 빵을 굽고, 수제비 반죽을 때리고, 커피를 내리며 글러브를 닦고, 런닝을 하고, 투구 훈련을 하면서 언젠가 올 경기를 생각한다.



     다시 한번, 요즘 욜로가 유행하며 ‘즐기는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최근 한 신문의 사설에서는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욜로의 모토인데도 아저씨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없다는 불평을 담은 주장을 펴기도 했다. 사실 욜로는 앞서 말했다시피, 도망칠 곳 없는 젊은이들이 ‘오늘이라도’ 충실하자는 삶의 자세에 가깝다. ‘한번 뿐인 인생’을 말하려면, 다른 사람이 던지는 공과 그걸 받아내는 글러브도 한번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와 눈빛을 교환하고 어깨를 나란히 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 <퍼펙트 게임>이 야구를 통해 우리에게 넌지시 이야기 하는 삶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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