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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러닝감각

기록과 인증 - 러닝의 심리학

인정과 기록, 의지와 연대 그 사이 어디쯤에선가

by 교실밖

요즘 주변에서 달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낯설지 않다. 퇴근 후 공원을 달리는 직장인들, 새벽 강변을 뛰는 러너들, 주말이면 곳곳에 모이는 러닝 모임들. 러닝은 더 이상 소수 마니아의 취미가 아니라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이자 문화 현상이 되었다. 며칠 전에 한 독자께서 ‘인증 욕구’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하셨는데, 이 글은 그 요청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러닝 붐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겹쳐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건강에 대한 관심, 특히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값비싼 헬스장 회원권 없이도 시작할 수 있다는 접근성, 러닝화와 복장으로 대표되는 러닝 패션의 부상, 그리고 무엇보다 온라인 러닝 앱의 등장이 이 흐름을 가속화했다. 달리기는 이제 단순한 운동을 넘어, 자기계발과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러너들이 달리기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달렸다는 사실을 SNS에 인증한다는 점이다. 거리, 시간, 페이스 등 러닝 앱이 나타내는 각종 기록, 달린 코스, 완주 메달 사진... 이런 게시물들이 매일 타임라인을 채운다. 왜일까?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쓰기의 동기를 네 가지로 분석했다.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이 그것이다. 러닝 인증 현상도 비슷한 결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달리는 사람마다 이유와 동기는 다르겠지만, 몇 가지 주요한 공통 심리는 일관되게 흐를 것이다.


인정 욕구: 나를 봐 달라는 외침


첫 번째는 인정 욕구다. 오웰이 말한 '순전한 이기심'과 맞닿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건강함을 과시한다. "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고, 자기관리를 하는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현대 사회에서 몸은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개인의 성실함과 자기절제의 표식이 되었다. 새벽 5시에 10km를 달렸다는 인증은 그래서 단순한 운동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나는 나태하지 않다", "나는 목표를 이루는 사람이다"라는 자기 서사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행위다. ‘좋아요’와 ‘댓글’은 이런 서사를 강화하는 사회적 승인이 된다.


기록 욕구: 시간을 새기는 아카이브


러닝 앱은 정교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거리, 시간, 페이스, 케이던스, 심박수까지. 이 수치들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자기 개선의 증거가 된다. 지난주보다 30초 빨라진 10km 기록, 누적 100km 달성, 작년보다 향상된 하프마라톤 타임.


오웰의 '역사적 충동'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러닝 여정을 기록하고 보존하고 싶어 한다. SNS는 개인의 아카이브가 된다. 몇 달 후, 몇 년 후에 돌아보며 "내가 이만큼 달렸구나", "이렇게 발전했구나"를 확인할 수 있는 타임캡슐 같은 것이다. 지속적인 기록은 개선되고 있는 상황을 가시화하고, 그 과정 자체가 성취감을 준다.


자기 의지 확인: 약해지는 나를 붙잡기


자기 의지를 확인하고 강화하려는 욕구도 크다. 달리기는 때로 고통을 동반한다. 비 오는 날, 피곤한 날, 나가기 싫은 날도 많다. 자칫하면 약해질 수 있는 동기를 다시금 부추기는 장치가 필요하다.


SNS 인증은 일종의 공개 선언이다. "오늘도 달렸다"고 게시하는 순간, 나는 나 자신과 타인 앞에서 러너의 정체성을 재확인한다. 그리고 이 선언은 다음번에도 달려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으로 작동한다. 어제까지 매일 달렸는데 오늘 멈추면? 그 기록의 연속성이 깨진다. 인증은 그래서 의욕을 살리는 자기 강화 메커니즘이 된다.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를 묶어두는 것. 이것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자신을 돛대에 묶었던 것과 유사한 전략이다. 나의 의지가 약해질 미래를 대비해, 공개적 기록이라는 밧줄로 지금의 나를 묶어두는 것이다.


공유와 연대의 욕구: 함께 달리는 우리


내가 생각하는 특별한 러닝의 동기 중에 공유와 연대의 욕구가 있다. 오웰의 네 번째 동기인 '정치적 목적'을 넓게 해석하면, 세계를 특정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려는 욕망이다. 러닝 인증에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나와 타인의 러닝 기록을 보면서 공유하고 연대하는 의식 말이다.


"오늘도 완주하셨네요!", "같이 달려요!", "날씨 좋은데 러닝 어때요?" 같은 댓글들은 단순한 사교적 립서비스가 아니다. 그것은 비슷한 지향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느슨하지만 실재하는 연대감을 만든다. 혼자 달리지만 혼자가 아닌, 보이지 않는 러닝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경험이다.


지난 글에서 이미 몇 번 언급했지만 러닝에는 이기적 동기가 사회적 공익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이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건강부조 제도를 채택하는 나라에선 다수가 건강할 때, 최소 수혜자는 더 큰 복지 혜택을 받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일종의 ‘암묵적 연대’인 셈이다.


이렇듯 러닝 인증은 다층적 욕구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인정받고 싶고, 기록하고 싶고, 의지를 다지고 싶고, 연대하고 싶은 욕구들. 이 모든 것이 작은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이런 문화를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다. 진정한 달리기의 즐거움은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몸을 움직이는 데 있다는 주장, SNS 인증은 결국 자기과시와 승인 중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의 행위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SNS 인증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일차적 사실을 확인하는 것을 강화할 뿐이다. 그래서 러닝 인증이 누군가에게는 허영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변화를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왜 인증하는지, 그 행위가 우리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오늘도 코스에 몸을 얹는 러너들, 그리고 그들의 SNS 타임라인. 거기에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욕망과 불안, 연대와 고독이 모두 담겨 있다.


덧> 그나저나 오늘 아침 러닝에서 페이스 기록이 나왔다. 몇 개월 7분 대 페이스에서 정체됐었는데 선선한 가을 바람을 타고 달리니 두 번째 6분 대 페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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