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 사회를 사는 지식인들의 숙명 같은 것
11월의 첫날이자 주말. 이른 아침 강변으로 나가 가볍게 5km를 뛰고 들어왔다. 뛰기에 알맞은 기온이다. 하늘은 파랗고, 공기는 선선하게 맑았으며, 늦가을 코스모스는 제 할 일을 마치고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붉게 물든 화살나무의 이파리는 이제 곧 겨울로 들어갈 것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재촉으로 보인다.
러닝은 '별 것'이기도 하고, '별 것이 아니기도' 하다. 오늘로 80회 차 뜀박질을 하고 새삼 '뛰길 잘했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러닝이 가진 특별한 효과 때문이다. 먼저 별 것이 아니라는 측면은, 뭐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운동이 아니라는 것. 운동화만 있으면 누구든,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운동이라는 것. 걷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면 바로 슬로우 조깅부터 시작하시라.
개인적으로 내가 느낄 수 있는 러닝의 효과를 나열하면, 먼저 심폐 기능 개선(나는 러닝 6개월 만에 최대산소섭취량이 60대 기준 상위 15%에 들어가게 됐음), 지구력 강화, 근육 소실 억제, 신체 균형(좌우 밸런스 개선), 자신감 상승 등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주관적 느낌이 아니라 데이터로 입증되는 것들이다. 특히 BDNF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로 뛰는 도중, 뛴 후 느끼는 행복감, 만족감에 있어서 러닝 만한 것이 없다. 물론 부작용도 있는데,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자기 몸 상태에 따라 적절하게 체력을 안배해야 하는데, 무리할 경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은 조심할 것.
엊그제 부산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교육감님도 뵙고, 여러 분들 만나서 좋은 시간을 가졌다. 요즘 내 관심사는 '지식교육과 역량교육'을 통합하는 학력관 모색인데, 문제의식을 충분히 말씀드리고 온 것 같다. AI에 대해서도 고민 없이 활용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작동 원리, 그림자, 대안을 모색하면서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교육적으로 사용하자는 제안이 잘 받아들여지는 느낌이다.
지식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역량교육의 목표를 실현하자는 나의 제안으로 몇 군데 교육청에 다녀왔다. 서울을 시작으로 인천, 충남, 경남, 전남, 부산, 세종, (울산은 엊그제 연락을 주셔서 협의 중) 이 지역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는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시리라 믿는다.
요즘 예비교사들과 토론을 하면서, 특히 학부생들의 경우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와서 그런지 "배우는 내용은 이상적이고 현실은 당장 눈앞에 있다", "공정성만 담보된다면 차이는 정당하다"는 생각을 체화하고 있는 듯하다. 엊그제도 쉬는 시간까지 보완 강의를 해야만 했다.
경쟁 사회를 독립항으로 전제하면, 공정성이야 필수 조건이 되지만, 그것이 차이를 정당화한다는 논리는 위험하다. 교육학의 존재 근거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 무리하게 이상을 좇다가 현실의 여러 이해에 닿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모든 것을 '현실 환원'에 집중하여 '당장의 쓸모'만 추구하는 '나쁜 실용주의'로 발전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좋아질 가능성이 없을 때조차도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어쩌면 오늘 한국 사회를 사는 지식인들의 숙명 같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