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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an 17. 2020

덫에 갇힌 교육, 매듭 풀기

학교문화 형성을 위한 대화 

러시아의 교육자 바실리 수호믈린스키의 교육 사상과 실천을 담은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빛나야 한다>가 어제 날짜로 3쇄에 들어갔다. 두루 감사드린다. 지난 글에서 "학교의 문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이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교사와 교장이 각각 다른 답을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 질문에 대하여 교사들은 '학교장의 마인드', 교장들은 '교사들의 열정'이라 답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반응 역시 본인의 위치에 따라 사뭇 다르게 나타났다. 이 책을 읽은 교사들은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교장들은 "이 책이야 말로 교사들의 필독서"라고 말했다. 심지어 본인의 사비를 털어 책을 구입하여 교사들에게 권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런 흥미로운 반응은 어디서 비롯될까.

우선 이 책을 읽은 교사들이 주목하는 지점은 수호믈린스키가 1) 자청하여 교장과 교사를 겸했다는 것, 2) 구성원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교장의 학교경영 철학, 3) 교장 자신도 수업을 했으며 이를 교사들에게 공개하고 평가회를 가졌다는 것, 4) 학교자치라는 체제 아래 교사와 학생들을 주체로 인정했다는 점, 5) 교사들의 연구를 위해 필요한 행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을 꼽는다. 한편 교장들이 주목하는 곳은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1) 교장이 교사 채용 및 관리의 권한을 가졌다는 것, 2) 교장의 리더십 발휘를 가능하게 하는 파블리시 학교 교사들의 동료성, 3) 학생 재학 기간 동안 250시간 이상의 학부모 교육, 4) 국가와 지역이 인정한 파블리시 학교의 학교자치 5) 학교와 가정의 강력한 협력 등을 꼽았다. 

나는 학교문화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학교장의 마인드'를 꼽는 교사들의 마음이나, '교사들의 열정'이라 꼽은 교장들의 마음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를 모순 관계로 보고 상대의 책무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풀 것이냐, 두 가지 다 병행해야 할 과제로 보고 좀 더 큰 틀에서 녹여낼 것이냐를 두고, 어느 일방이 이기거나 지는 방식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블리시의 성공 뒤에는 수호믈린스키의 큰 헌신이 있었지만, 교장 한 명의 노력으로 학교를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방식이 꼭 좋은 것도 아니다. 한 조직을 운영하는 데는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작동한다. 지난 글들에서 거듭 확인한 바, 혁신은 구성원들의 공감과 참여를 바탕으로 총체적이며 전방위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다만, 이 과정은 교장이 설계한 플랜과 실천 지침으로 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금 답답하더라도, 혹은 더디더라도 구성원들과 협의를 해야 한다. 사람의 헌신에 과잉 의존하는 혁신은 지속가능성을 갖지 못한다. 

교장이 가진 권한을 내려놓는 것이 학교혁신의 시작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권한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권한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정확히 쓸 것이냐가 중요하다. 막상 내려 놓더라도 시기와 방식을 타산하여 적합하게 분산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다. 물론 이 방식은 사안에 따라 구성원의 의견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을 포함한다. 이는 현재 교장을 포함한 학교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민주적 소양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상급기관의 간섭을 벗어나 독립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각기 특색 있는 학교운영을 하는 것은 지금도 앞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제도나 절차의 변화만으로는 총체적 학교혁신이 일어나게 할 수 없다. 제도, 절차의 개선과 민주적 소양의 증진은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어제는 청주교대에서 이 책을 주제로 강의와 토론이 있었다. 사실 이 책만으로 수호믈린스키의 삶과 교육을 이야기하기엔 부족하다. 그래서 책 출간 이후에 러시아 교육사를 계속 공부하면서 브런치(https://brunch.co.kr/@webtutor) 를 통해 공부 교재를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 교육사에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국가 체제 아래서는 교육 역시 국가와 지역 코뮌, 그리고 학교자치 체제가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근간은 국가가 주도하는 방식이었다. 개혁, 개방 과정 그리고 소련연방 붕괴 과정에서 러시아는 급속도로 자본주의화했다.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부문에 자본주의 방식이 작동됐고 시장원리가 들어섰다.

그런데 교육분야만큼은 구 소련에서 유지했던 국가 주도 체제가 상당 부분 그대로 유지됐다. 무상교육이 그러하고, 역할 분담에 따른 학원 운영 방식(학원은 모두 국립이고 학원에서는 특기 적성 교육만 함), 학교자치와 부모교육, 3년이라는 육아휴직, 유아기 때부터 국가 책임 아래 작동하는 보육 시스템 등이 그렇다. 신기하게도 러시아의 교육은 우리나라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고, 관련 문헌도 턱없이 부족하다. 과잉 사교육, 입시 경쟁 문제 등 거대한 덫에 걸려 신음하고 있는 우리 교육의 회생을 위한 시사점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지 고민했으면 한다.  

한 가지 더, 20대에서 이 책은 거의 읽히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문제를 함께 모임을 하고 있는 친구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대체로 이런 종류의 책이 20대에서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워낙 교직이 각박하고, 학생지도, 학부모 관계 등 내외적 압력 때문에 독서 시간 확보가 쉽지 않고, 책을 읽더라도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실용서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실존을 고민하게 하는 책은 계속 나와야 하고, 읽혀야 한다. 또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수호믈린스키가 제안하는 학급운영, 수업혁신... 이런 글을 써볼까. 그러면 젊은 선생님들의 반응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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