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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Mar 04. 2020

독서 연장

연필의 촉감

스마트 단말기가 종이책 읽기를 방해한다는 사실은 경험상 명백하다. 이것 말고도 책 읽기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다. 내 경우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다. 금방 읽었는데 다시 보면 새로운 문장 같다. 크레마 같은 기기를 써보기도 했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듯하다.


책 읽을 때 두세 가지 연장을 준비하지 않나. 나는 연필과 포스트 잇 플래그를 쓴다. 여기에다 따뜻한 차 한 잔이 있어야 한다. 연필은 샤프를 쓸 때도 있고 깎아 쓰는 보통 연필을 쓸 때도 있다. 신기한 것은, 연필을 자주 깎는 것이 귀찮아서 샤프를 쓰다가도 어느새 연필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통 연필과 샤프는 손에 쥐는 촉감부터 다르다. 샤프는 쓰기 편하지만 그 질감에서 느껴지는 것이 냉정하고 딱딱하다. 샤프는 너무 눌러써서 심이 부러지지만 않으면, 필기감이 균일한 것도, 글씨의 굵기가 균일한 것도 모두 장점에 속한다. 그런데도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손에는 연필이 쥐어져 있다. 연필은 그 질감이 친숙하고 손아귀에 편안하게 잡힌다. 연필을 들고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이 나오면 줄을 친다. 정성껏 줄을 칠 때도 있고, 동그라미나 네모, 별표를 그리기도 한다.


포스트잇 플래그는 책을 읽다가 좋다, 기억해둘 만하다, 나중에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해당 페이지 문장 옆에 붙인다. 생각으로는 체계적으로 독서를 한답시고, 나름 규칙도 세워가며 붙이긴 하지만, 또 붙여 놓은 부분만 나중에 다시 읽어야지 하면서도 잘 실천하지 못하였다.


그러니 책꽂이에 꽂힌 책들에 플래그가 덕지덕지 붙어 있긴 한데 나 스스로 독서를 체계화하지 못한 탓에 다 헛수고라는 느낌도 든다. 이쯤 되면 낭비 아닌가. 그런데도 책을 손에 잡으면 연필과 플래그와 따뜻한 차 한 잔을 습관적으로 준비한다. 마음의 양식과 무관한 습관이요, 심리적 위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근무처 건물 자체가 가라앉은 느낌이다. 난 심리적으로 점점 더 가라앉는 느낌이다. 불필요한 대면 접촉 자제,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 등이 감염병 시간을 견디는 규범처럼 돼 있는데, 그 속에서 고립되기 싫은 인간들의 마음을 이해하겠다. 이럴 때 책 읽기가 제격이긴 한데, 그마저도 계속 끊어지는 리듬에 몰입이 안되고, 잡생각만 가득하다.


독서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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