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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부모교육

학부모와 학교

학부모는 자녀의 학교에 대해서 어떤 권리를 가져야 하는가?

by 교실밖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대하여 부모가 갖는 발언권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Dianne Gereluk 교수는 자녀의 학교에서 부모의 권리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그 반대의 주장을 비교하고 있다. 부모의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편에서 보면


1) 부모는 자녀의 이익을 가장 잘 보호할 사람이다,

2) 부모는 자신의 규범이나 가치에 부합된 방식으로 자녀를 길러낼 자연적 권리를 갖는다,

3) 국가는 자녀를 특정 방향으로 길러낼 부모의 권리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위 세 가지의 주장 모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특히 요즘은 교육에서 공급자보다는 수요자의 입장이 더욱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위 사항만으로 자녀를 매개로 한 부모와 학교의 관계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주장만을 받아들이기에 교육의 속성은 한층 복잡하다. Dianne은 이 반대 편의 입장도 제시한다.


1) 부모가, 좋은 의도를 갖고 있을지라도, 자녀의 이익을 최고로 증진시킬 방법을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2) 자녀는 가정에서 자라면서 배우는 생활방식 이외에 다른 여러 가지 생활방식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3) 국가는 다음 세대의 아동을 위해서 정치적 사회적 권리나 책임과 부합된 정치교육을 발전시켜야 할 특별한 역할과 권리를 갖는다.


처음 주장보다는 조금 더 학교의 입장, 공동체의 입장에서 펼치는 주장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국가의 성격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일 수도 있다. 예컨대 권위적 국가 체제 아래서는 위 주장이, 민주적 국가 체제에서는 아래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이는 별도의 논변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상식적이다. 한편 국가 체제가 권위적이냐, 민주적이냐 하는 판단은 시민들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학생들의 전인적 발달을 돕고 이를 통해 양식을 가진 시민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입장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어느 부모도 명시적으로는 우리 아이만 출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물론 그 반대 편에서 우리 아이는 이 사회의 한 시민으로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쉽지는 않다. 그만큼 현실은 각박하고 경합의 논리는 세상을 지배한다.


자녀의 교육을 둘러싸고, 부모의 요구와 학교의 요구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어느 쪽도 무시되어서는 안 되지만 여기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은 '학생의 삶' 그 자체이다. 미래의 영광을 위해 현재를 보류하는 것이 아닌 지금 당장 학생의 삶 말이다. 언젠가 부모교육에 관한 글을 쓰면서 '자녀의 성공을 위해 당신의 삶을 유보하지 말라'라고 말했었다. 개인의 실존적 삶도 중요하고, 시민으로서 사회적 삶도 중요하다. 이 두 가지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학생의 마음과 몸에 동시에 깃드는 것이다. 그럴 때만 사회적 참여 속에서 개인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분석을 위해 분류하고 대조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실제 삶의 세계에서는 통합돼야 한다.


위 글은 <철학이 있는 교육 교육을 찾는 철학>의 내용 일부를 발췌, 보완한 것이다. (아쉽게도 책은 품절이 되었다)


철학이 있는 교육 교육을 찾는 철학, Dianne Gereluk 저, 이지현 역

http://m.yes24.com/Goods/Detail/512783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www.gemmlearning.com/blog/parent-tips/parent-teacher-con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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