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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an 08. 2022

여백과 상상

물리적 생존과 마음의 생존, 그 거리를 좁히기

역사를 만들어가는 힘은 무엇일까. 이는 곧 크고 작은 사건들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물음과 같다. 세상사 모든 사건들의 근원을 추적해보면 결국 개인의 사고와 이것의 집합(이른바 집단지성)이 있다. 인간의 생각은 골똘히 궁리하는 것,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과 상상,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의식 등을 두루 포함한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생각의 역사'이다.

하루 먹을 것만 취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한가하게 보냈던 원시사회라면 모를까. 현대인들은 열심히 노동하여 과거의 빚을 갚고 현재의 생계를 유지하며 미래를 준비한다. 노동을 멈추면 급여도 멈추고 결국 생존을 위협받는다. 일자리를 구하고,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가기 위해 타인과 경쟁하는 일은 현대인의 숙명처럼 여겨진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일에 파묻혀 산다.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하였으나 노동의 과잉은 다시 삶을 위협하는 위험한 딜레마가 지속된다. 물리적 생존과 마음의 생존은 더욱 거리가 멀어진다.


인간은 끊임없이 '상상(생각)'을 하고 때로 상상을 현실로 옮긴다. 상상이야 말로 문명의 진화를 이끌어 온 원천이다. 앞에서 말했듯 모든 역사는 생각(상상)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의심하며 질문을 던지는 행위가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누리는 문명은 없었을 것이다. 유지하려는 자와 의심하는 자는 끊임없이 충돌했다. 그 과정에서 다중의 선택을 받았거나 공동체의 합의를 거친 담론들이 살아남았다. 유지하려는 자는 상상을 불온하게 보았고, 상상하려는 자는 기존의 질서에 균열을 가하고 싶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방향이 모순이지만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이다.


언제 상상이 활발하게 일어날까. 모든 일상에서 쉼 없이 상상력이 발동된다면 좋겠으나 아쉽게도 우리의 사고 체계는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한 가지는 소홀하게끔 설계돼 있다. 그래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여백'이다. 여백은 학업, 일, 심지어 놀이 사이에도 있다.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의심과 이해, 긍정과 부정, 욕구와 비 욕구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상상하고 느낀다.

그렇지만 나는 무엇인가? 생각하는 존재다. 그게 무엇인가? 이는 곧 의심하거나, 이해하거나,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욕구하거나, 욕구하지 않거나, 또한 상상하거나 느끼는 존재다.(데카르트, 제2 성찰)
  

러시아의 교육자 수호믈린스키는 학생들이 지적인 활동을 한 후에는 반드시 '한가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교사들 역시 한가한 시간이 있어야 그들의 전문성과 소양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가한 시간은 창조의 원천이라고도 말한다. 한가한 시간은 마냥 허비되는 시간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실현하려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해서 인정받아야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하는 것과 고유한 나를 실현하는 일은 얼마나 상관관계가 있을까.


100년 전 듀이는 아이들에게 백화점식으로 주어지는 교과와 학습과제를 통렬히 비판하였다. 많은 교과와 학습과제의 부과는 오히려 아이들이 실제적 경험을 쌓을 기회를 앗아간다고 보았다. 그 결과 '무엇을 아는데, 그것을 할 수 없는' 헛똑똑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른들이 구축한 표준 지식을 들이밀 생각에 앞서 아이들이 무엇에 관심과 흥미를 보이는지 먼저 살펴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아동에게는 반드시 '학습의 여백'을 제공해야 한다. 아동의 학습을 성인 세계의 '일'로 바꾸어도 같은 논리가 성립한다. 여백이 없는 '일'은 반드시 화를 부르게 돼 있다. 화는 몸이 고장 나거나 정신이 피폐해지는 방식으로 찾아온다.


대개의 일중독자에게서 일을 제거하면 편안함이 오는 것이 아니라 불안함이 가중된다. 일이 아니라 압박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압박을 해소하면 다음의 압박을 기다린다. 압박이 제거되면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몸과 마음이 오로지 일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일에 종속되는 현상, 그게 바로 일중독이다. 세상은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일에 중독되도록 요구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과 가정보다 직장을 먼저 생각하다가 파국을 맞는다. 사색이 멈춘 세상엔 황폐함만 남는다.  

사람의 활동 중 확실하게 칼로리를 소비하는 일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잠이다. 의심이 나는 독자들은 스마트워치를 통해 확인해 보기 바란다. 잠을 잘 잔 사람은 그 자체로 500Kcal 정도의 열량을 소모한다. 그러므로 가장 가성비 높은 체중 감량 방법은 바로 충분한 잠이다. 적어도 잠자는 시간 동안 모든 장기는 활동을 멈추고 휴식한다. 하루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잠을 자야만 하도록 설계돼 있는 것이 바로 몸의 원리이다. 설계 원리를 어기면 몸과 마음은 성장을 멈추고 때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일과 학습의 여백을 만들라는 말 자체가 한가한 조언이라 할 분도 있을 것이다. 소스타인 베블런은 '가난한 사람은 그 자신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쏟는 나머지 당장의 먹고 입을 것을 구하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라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이 쉽게 보수화되는 것도 도무지 생각할 겨를이 없는 삶의 방식으로 인해 판단 근거가 되는 세상의 정보를 취합할 수 없거나 더디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가 파고든다. 토마스 프랭크는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책을 통해 이것이 우파 정치인들의 집권 전략을 통해 관철된다고 보았다. 상대적으로 적은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증세'에 더 겁을 내거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해주고자 하는 복지정책에도  '퍼주기'라며 반대하는 경우가 흔히 나타난다.

그러니 생존을 위한 노동이 일차적이라 하더라도 그 사이를 여백으로 채우는 일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판단 근거를 갖지 못하면 가짜 뉴스에 속고, 정치인의 감언이설에 속는다. 당장의 가짜 뉴스나 감언이설의 문제가 아니다.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며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즉 문해력을 갖지 못하면 '내 삶'을 살기 힘들어진다. 결국 내 삶 속에서 노동에 집중하는 시간, 여백을 만들고 사색하는 시간의 균형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유의지'로부터 멀어진다.  




*커버 이미지
https://kr.freepik.com/free-photo/books-and-imagination-still-life_1780517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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