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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n 01. 2022

출근하지 않는 아침

카페라떼를 마시며



지방선거일이다. 지난 주말에 사전투표를 했기 때문에 오늘은 온전히 쉴 수 있다. 일어나 보니 이른 시간이다. 다시 잘까, 책을 읽을까, 영화를 볼까 잠시 고민한다. 우선 커피를 한 잔 마셔야지 하고 일어섰으나 곧 마음을 바꾸었다. 카페라떼를 마시고 싶어졌다. 유기농 OO우유에 XX미니를 조금 넣고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를 데웠다. 그리고는 거품기로 저었다. 커피보단 우유맛에 더 가깝겠지만 이놈이 아침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거다. 자주 도지는 역류성 식도염 탓에 원두커피는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다. 불행한 일이다.

잘 볶은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먹으면 뭔가 있어 보일 것 같고, 때로 낭만적인 기분이 들면서 글감도 막 떠오를 것 같은 느낌... 은 개뿔. 그럴 나이는 지났다. 상상하기 전에 몸이 (일을 하기 위해) 반응한다. 삶 자체를 무슨 과제라고 생각하다 보다. 가끔 정말로 커피가 그리워서 커피숍에 가면 "따뜻한 카페라떼로 해주시고 커피는 반 샷만" 이렇게 하면 대개는 알아듣는데 커피숍에 따라서는 다른 말로 주문해야 한다. 어디는 반 샷만, 어디는 한 샷만(왜냐하면 두 샷이 기본이라), 또 다른 어딘가는 "연하게"라고 해야 소통이 빠르다.

내가 직접 만들어 마시는 카페라떼는 우유의 양이 많고 커피 양이 적다. 여러 번의 실험 끝에 나만의 레시피를 갖게 됐다. 서울 집에 있을 땐 이를 응용하여 밀크티는 물론이고, 진저라, 홍삼라도 만들어 마시곤 했다. 피곤할 때 마시는 폭탄라떼도 좋다. 왜 폭탄라떼냐 하면 대표적 봉지 커피 브랜드 OOO카페를 물에 타지 않고 데운 우유에 타 마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저질의 커피와 설탕, 프림을 우유와 함께 마시니 칼로리 폭발이다. 피로를 달래기에 그만이다. 다소 마친짓 같지만 음주, 흡연을 하지 않는 대신 이 정도면 봐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난 참 스스로에게 관대해...ㅎㅎ) 출근하지 않는 아침에 느긋하게 카페라떼 한 잔을 마시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오늘은 근교의 산성을 둘러볼 예정이다.

2년 가까이 글을 쓰지 못하였다. 기껏 걷다가 찍은 사진이나 한 장씩 올리고 짧은 심경을 담아 브런치에 쓰곤 했다. 글을 쓸 수 없었던 시간에 체력을 비축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소재를 착실하게 쌓아 두지도 못했다. 그래도 무언가를 써야겠지. 생각해보면 누가 읽어주어서가 아니라 (독자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내게는 글쓰는 시간이 가장 몰입도가 높다. 몰입할 의지가 남아있다는 것이 어디냐라고 스스로 자위하는 중이다. 그 사이 라떼가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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