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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Aug 26. 2022

이런 개...

인간은 개보다 더 가혹한 몸부림을 대가로 의식주를 구한다는 사실

즘 TV를 보면 동물 프로그램이 꽤 나오는데, 단연 개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개와 그 주인이 교감하는 내용이라든지, 개들끼리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내용을 보면 신기한 것은 물론이고 때로 드라마틱하게 보이기도 한다. 내가 영상 중에는 개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개와 한솥밥을 먹고 한 침대에서 잠자며 모든 일상을 개와 함께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개를 업고 다니는 경우도 보았는데 그 자세가 개에게 편한 것인지, 인간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개는 자기에게 먹이를 주는 자에게 충성한다. 머리가 좋은 개일수록(족보 있는 개일수록) 자기가 어떤 행위를 했을 때 먹이가 나오는지 안다. 개는 본능적으로 서열에 대한 감각이 발달해 있어(인간도 그렇지만) 먹이를 주는 자를 상전으로 생각한다. 인간과 함께 살게 된 개는 자신의 생존과 종족의 번성을 위하여 그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주인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먹이가 나올지 잘 안다.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하지만 친절한 주인께서 잘 교감해주는 바람에 개와 인간의 공존이 진행된다.


개는 주인이 좋아할 만한 행동 몇 가지를 익히고 그것을 주인 앞에서 시연함으로써 먹이를 얻으며, 주인은 그것을 보고 즐거움과 마음의 위안, 인정의 욕구를 충족한다. 나쁘지 않은 거래다. 여기서 주인이 느끼는 인정의 욕구는 대체로 다른 인간에게서는 얻기 힘들었던 것을 개를 통해 보게 되는 것인데, '개가 인간보다 낫다.'라든지, '개는 절대로 배신하지 않아.'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TV 프로그램은 이를 극단적으로 증폭한다. TV에서 보는 인간과 개의 교감 장면은 실제로는 위에서 이야기한 개를 통해 만족감을 얻는 인간의 행위와 인간으로부터 먹이를 취한 개의 행동을 합작한 것이다. TV 카메라는 이것을 극적으로 편집하고 성우는 나레이션을 깔아 사실성을 높이며, 큼지막한 자막을 덧입혀 시청자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사실, 편집기술과 나레이션, 자막 세 가지만 있으면 뱀과 개구리도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고 호랑이와 사슴도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과정을 거쳐 소비되는 미디어는 인간에게 있어 약일까, 독일까? 미디어의 장면을 사실과 혼동하여 자신의 감정과 삶에 이입하는 경우도 있고, 모방을 통해 자기만족을 충족하려는 시도도 할 수 있다. 아홉 시 뉴스에서 말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고, 다큐라고 해서 완전한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듯이 동물들이 등장하는 TV 프로그램 역시 사실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배신과 시기를 일삼는 인간들 세계에서 환멸을 느끼고,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사람이 반려동물과 교감을 통해 치유되었다는 사례도 있다. 공존의 긍정적 효과이다. 내 입장 역시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귀하게 대접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이 말하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10대 핵심역량(capabilities)에도 '다른 종과의 공존하기'가 있다. 


한편으로 개를 비롯한 반려동물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선택받은 개에게는 거의 인간과 비슷한 환경이 제공된다. 고독한 개를 위한 개 카페도 있고, 개 호텔도 있으며 요즘 보니 개 마사지 프로그램도 있더라. 개에게도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게 하고, 인간 못지 않은 미용 작업이 더해진다. 비용도 꽤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선택받은 개라는 말은 개들에게도 격차가 있다는 뜻이다. 대우 받는 개와 그렇지 못한 개가 엄연히 존재한다. 인간만 계층 격차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개 역시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행복지수가 엄청나게 차이 난다.


'개만도 못한 인간'이란 말은 본시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였지만 이제 달리 해석되어야 할 것 같다. 의식주에 있어 개만큼의 대접도 받지 못하는 인간이라고나 할까.


좀 더 각도를 달리하여 생각해 보면 '먹이를 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그 행동 양식은 인간 세계와 몹시도 흡사하다. 개는 주인이 마음에 들어 하는 행위를 시연함으로써 먹이를 얻지만 인간의 경우는 더 가혹한 몸부림 후에야 먹이를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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