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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Nov 12. 2022

좀 만만해 보이면 어때서?

만만해 보이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이용하려는 악의를 가진 상대방이 문제

어떤 사람과 대화할 때 피곤함을 느끼는가? 내 경우엔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과 대화할 때이다. 지난 글에서도 자기 확신이 위험하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치명적 자기 확신 (brunch.co.kr) 자기 주관이 뚜렷한 것과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어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다르다. 고백하건대, 나는 좀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다. 내가 좀 만만해 보인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거나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 나아가 '만만하게 보인다는 것'이 큰 결격 사유인 양 회자되는 것에도 동의하기 힘들다.

좀 만만해 보이면 어때서? 만만해 보이는 사람으로서 또 다른 만만해 보이는 사람과 연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느 오후 무심코 포털 검색창에 '만만하게'라고 입력했더니 '만만해 보이는 사람들의 특성',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대화법' 류의 글들이 많이 나온다. 일상에서 '만만하다'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증거는 꽤 많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있다. 사춘기에 다다른 중학생이 남들이 자기를 만만하게 보고 괴롭히는 것 같다며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방법'을 구하고 있다면, 이 학생에겐 좀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쉬워 보이면 사춘기 아이들의 특성상 괴롭히려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만큼 타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허세를 부린다고 해서 극복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경우가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고, 좀 더 강해 보이면 좋겠다는 '강함 선망'도 인정하겠다. 그것이 왜곡됨 없이 성장과정에서 잘 발현될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 내가 말하려는 것은 성인 세계의 이야기다.


앞서 말했듯이 만만하다는 말은 주로 부정적으로 쓰인다. 만만해 보이는 사람들은 남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때로 이용을 당할 수 있고, 살면서 손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만만해 보이는 사람들이 살면서 불이익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긴 힘들다. 다만, 이것 하나는 좀 구별하자.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 문제인가, 만만해 보이는 사람을 이용하려는 상대가 문제인가.

만만하다는 것은 존재자 홀로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누군가 상대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동반한 개념이기 때문에 '만만하게 보이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보이는 사람과 그렇게 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대에게 만만한 사람은 뭔가 마음의 경계를 풀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 만약 대화에 임하는 두 사람 모두 상대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동기가 없다면, 그리고 서로 쉬운 상대라면 이 대화는 순탄하게 흘러갈 것이다. 만만해 보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만만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이용하려는 악의를 가진 상대방이 문제이다.

다시 '만만하게'라는 어휘가 어떤 맥락과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알아보자. TV를 켤 때마다 나오는 유명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있다. 이 분이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특성 3가지'를 들었는데 첫째, 어떤 상황에서 함부로 행동하면 혹시 모를 불이익을 얻을까 봐 상대방한테 잔뜩 졸아 있다. 둘째, 마음 안에 짜증, 분노, 불안감 등 부정적 감정이 생겨도 상대방에게 잘 표현하지 못하고 계속 억누른다. 셋째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면 혹시 상처를 줄까 봐 염려하고, 나아가서 죄책감까지 느낀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행동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다는 게 전문의의 말이다.
  

TV 화면 캡처

먼저 나는 이런 류의 심리분석과 처방적 상담이 불편하다. '만만하게 보이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것도 그러하고 만만하게 보이는 이유를 당사자 개인에게서 찾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모든 심리적 외현은 결과적으로 개인에게서 나타나지만 대개는 이를 야기한 사회적 상황과 맥락을 동반한다. 이 분이 TV에서 던진 조언은 하나의 전문적 조언으로 네트워크를 타고 돈다. 이것을 읽은 사람은 대부분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고 이를 교정하고자 애쓴다. 원인 진단의 오류는 결과적으로 한 개인을 더욱 방어적으로 만든다.

전문의가 정리한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특성 세 가지를 다시 살펴보자. 이건 그냥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특성이다. 이 특성을 반대로 이야기해 보자. 어떤 경우에도 상대에게 졸지 않고 당당하게 대처하는 사람, 짜증, 분노, 불안감 등 부정적 감정을 잘 표현하는 사람, 상대가 입을 상처에도 불구하고 자신 있게 거절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있나. 전문의의 분석은 그래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마치도 개선해야 할 사항인 것처럼 전도한다.

몇 해 전에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훈육 방법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그때에도 일관된 훈육 방식과, '아이의 사생활', '가족의 사생활'이 전혀 보호되고 있지 못하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가정은 하나같이 저소득층이어서 더 그랬었다. 사회적 지원없이 가족만의 노력으로 저 상황이 개선될 수 있을까를 의심하게 하는 사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개인으로 향하는 심리적 접근에서 사회적 맥락을 배제하면 그저 "나만 잘하면 돼" 식의 행위 당사자 책임론을 벗어날 수 없다.

저소득층에서 그런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면, 그것이 일관되다면 심리치료야 할 수 있겠지만 사회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사회적 맥락을 배제하고 모든 문제를 개인에게 귀인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개선은커녕 더 많은 비용을 발생하게 한다. 사회가 건강하지 않은데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은 공허하다. 이런 접근은 본말을 전도하여 상대를 만만하게 보는 사람보다 만만하게 보인 사람이 잘못이라는 결론으로 이끈다. 과연 상식적인가.

아울러 상대가 쉬워 보인다고 그 틈을 비집고 업신여기거나 이용하려 드는 사람에게 오히려 '당신이 잘못이다'라고 사회적 경고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도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가 필요하다. 만만하게 보인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있다는 것과 같다. 또한 자기를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이 있다는 뜻이다. 지나친 자기 확신과 도그마에 갇혀있지 않다는 상태이기도 하다. 이런 배려심 깊은 사람을 더 존중해주어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이다.

물론 쉽지 않다. 그때까진 만만해 보이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자들의 연대에선 규모가 중요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사회현상의 이면을 숨김없이 드러내어, 상대의 약함을 여지없이 공격하는 악의를 가진 사람들에 대응해야 한다. 더는 '만만해 보이는 당신이 문제야'라고 하지 말자.





<덧붙임> 찾아 보니 11년 전에 이런 글을 썼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대한 딴죽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프로그램에 대하여 할 말이 있다. 다 보셨으리라 전제하고 이야기한다. 그곳에 나오는 문제 상황과 해결책은 늘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먼저 심각한 문제를 가진 아이가 나오고, 그보다 더 문제가 있는 부모가 나오고... 왜 그것이 문제인지 심리학자가 개입하여 진단하고 솔루션이 가동되고 훈육(이 프로그램에서 훈육은 아이들 다리 사이에 끼우고 못 움직이게 제압하는 것)을 하고, 아이가 복종하고, 부모가 변하고... 아이가 변하고... 대충 이런 줄거리다. 문제 해결과정은 놀랍도록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불편하다. 내 생각과 달라서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화면으로 비추어지는 것은 당연히 연출된 것이다. 아이와 부모의 못된 행동이 과장되게 편집되고,  나중에 변화되는 부분 역시 편집기술을 거친다는 것은 예외로 하자.) 특히 그 훈육 방법은 온전히 동의할 수 없다. 대상화되는 부모와 아동, 그리고 기계적 패턴에 의지하는 솔루션... 강압적 방법을 동원하여 아이을 굴복시키는 이른바 훈육... 그 훈육방법은 이 프로그램의 한 매듭이다. 왜냐하면 갈등 곡선이 계속 올라가다가 훈육을 기점으로 아이가 누그러지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래서 더욱 동의하기 힘들다. 자녀들의 일탈, 부모와의 갈등... 이런 부분들은 이렇게 단순하게 유형화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한 가지 더... 이 과정이 편집과정을 거쳐 영상물로 재탄생했을 때의 위험성이 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방영이 되어야 하는 고로 맥락이 상실되고 자극적 화면을 중심으로 보게 되기 때문에 그 안에 숨겨진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같은 심리적 문제들이 단순화되고 패턴화되는 위험이 있다. 문제 상황은 모두 다른데 어떻게 해결책은 저리도 비슷할까...라는 생각, 나만 그런 것일까? 그래서 그 프로그램은 너무 길게 방영되지 않는 것이 좋다. 아니면 해결책을 바꾸어가면서 적용을 해 보든가.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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