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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Dec 14. 2022

납작한 본캐, 허황한 부캐

관계 불안증을 겪고 있는 소셜 미디어 속 당신에게

모든 탈것, 지하철이거나 기차, 혹은 버스를 타면 비슷한 풍경을 만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다. 젊은이와 중노년을 막론하고 비슷한 풍경과 진지한 표정은 한결같다.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혼자이고 싶어 실세계에서 만나는 타인과 거리를 둔다. 직장과 생활 모두에서 혼자되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다른 편에서 가상의 네트워크를 통해 또 다른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실세계 관계 불안증, 혼자되기, 다시 디지털 세상에서 새로운 관계 만들기"는 현대인들의 전형적 관계 패턴이다.

왜일까. 답하기 어렵지 않다. 실세계의 삶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지리멸렬한 삶, 내세울 것 없는 배경,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 등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줄 요소가 없다. 애써 존재감을 드러낼 필요도 크지 않다. 직장에서는 수동적 구성원으로, 퇴근 후 혼밥과 넷플릭스를 거쳐 잠자리에 들기까지 고독한 존재자로 남는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누구의 간섭과 개입도 없이 현대인들은 철저하게 미분화한 자아를 끌어안고 산다.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은 불경이다. 각자의 독특한 생활방식은 개성으로 포장된다. 점점 더 심화하는 이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디지털 네트워크이다. 디지털 인간형 호모 디지쿠스(Homo Digicus)는 이제 인간은 완전한 호모 모빌리언스(Homo Mobilians)’로 진화하고 있다. 인간과 한 몸이 된 스마트 단말기 안에는 실세계 고독을 극복할 선물이 가득 들어 있다. 현실에서라면 만날 일조차 없는 사람들이 새로운 인격을 창조하여 '스마트'한 방식으로 관계하고 교류한다. 가상의 네트워크에선 누구나 이상적인 인간형을 창조한다. 흔히 부캐(sub character)라 불리는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또 다른 부캐를 만나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창조한다.  

소셜 미디어는 부캐들의 경연장이다. 현실에서라면 어림없을 멋진 캐릭터들의 집합소다. 그곳에 생활에 찌든 직장인, 열등감에 사로잡힌 젊은이, 무전망의 실존적 고민은 없다. 화려한 부캐로 거듭나지 못한, 또한 그런 의사가 없는 사람들은 '가공되었을' 타인의 삶을 구경한다. 현실에서라면 범죄가 될 행위조차도 용인되는 곳, 얼마든지 흔적 없이, 무료로 타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세상이다. 호모 모빌리언스들의 일상은 이렇듯 본캐와 부캐가 혼재된 장소에서 시간과 시간을 연결한다.  


평소 교제 범위가 넓지 않은 편이다. 업무로 만나는 사람만 해도 꽤 많고, 업무를 추진하기 위한 대화에 몰입하다 하루를 끝내면 다시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은 날이 더 많다. 하루의 업무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복기해 본 적이 있는가. 주로 읽고 쓰는데 시간을 쓴다. 규칙적으로 걷는다. 가끔 영화를 본다. 단조로운 생활이다. 천리안이나 하이텔, 나우누리 등 인터넷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내가 처음으로 웹사이트를 만들어 공개했을 때 개인으로서는 거의 모든 것이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덕분에 책도 몇 권 썼다. 결과적으로 네트워크의 편익을 철저하게 활용했다.


내가 서 있는 현실 세계로부터 사고와 행동을 시작 하는 것은 기본이다. '강한 자아'라는 것이 별 것이 아니다. 과도하게 부캐를 창조하는 것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거나 타인의 삶을 엿보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내 삶을 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유리 멘털로 직행하지 않는 길이다. 페이스북이 도입될 때부터 그곳에 글을 써 왔지만, 지금은 브런치 글쓰기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도 비슷하다.

브런치는 조금 더 현실세계와의 거리가 가깝다. 뭔가 정직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 작가가 되고 싶은 자기 자신에 솔직한 사람들, 과장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 특히 타인의 삶을 엿보는 것이 아닌, 그가 창조하는 글을 읽는 행위로 이뤄지는 플랫폼도 나쁘지 않다. 다소 정적이지만 나 같은 스타일의 성격과 잘 맞는다고 할까.


지금 현실에서 느끼는 고독은 당신의 사색을 풍부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호모 모빌리언스로서 당신은 언제든 부캐를 창조하거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삶을 엿볼 수 있지만, 지금 여기 당신의 삶에 충실하라. 본캐가 충실하지 않으면 부캐도 허황하다.  






커버 이미지 The loneliness pandemic | Harvard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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