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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Sep 12. 2022

격리 VS 해방


일주일 간의 격리는 견딜만했다. 처음 이틀 동안 고열과 몸살,  그다음 이틀은 기침과 무기력, 나머지 사흘은 목 아픔이 있었고 그 모든 과정은 조금 센 강도의 감기 정도였다. 시간 맞추어 음식 넣어주고 상태 관찰해준 가족들이 고생했다. 사실 힘들었던 것은 육신의 고통보다 격리 상태라는 현존재였다.


창밖 고층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한껏 푸르렀다. 발코니에서 보는 바깥세상은 종종 무심하고 아득했다. 동네 아이들의 웃음소리, 쌩 하고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 소리까지 온갖 소리가 귓가에 맺혔다. 평소라면 들어보지 못했을 소리다. 그 모든 소리는 거의 규칙적으로 점차 커졌다가 이내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소리는 때로 뭉개지고 깨져 식별이 어려웠으나 해방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또렷했다.


격리가 끝나는 날 한 가지에 일곱 장씩 빨랫감이 쌓였다. 매일 비닐봉지에 여며 둔 빨랫감을 들고나가 고온으로 세팅한 세탁기에 넣었다. 해방 후에 먼저 한 일이 빨래였던 셈이다. 그리고는 노트북 앞에 달라붙어 글을 썼다. 여전히 정신이 몽롱한 것은 감염병 탓이 아닌 약 기운 때문이다. 약을 끊고 몸과 마음도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왔다. 자가진단키트에 한 줄이 나온 것을 확인한 순간 모든 것은 일주일 전으로 복귀했다. 시공간은 그대로이되, 존재는 전환하였다.


격리 해제 3일째 되던 날, 가족과 함께 뮤지컬을 보러 대학로에 나갔다. 한때 오랜 기간 대학로는 늦공부에 빠졌던 나의 생활 반경이었다. 식당과 카페, 공원과 소극장은 한결같았으나 찾는 사람들은 훨씬 젊어진 듯하다. 내가 늙은 탓이려니.


뮤지컬 빨래는 워낙 유명해서 덧붙일 말이 없다. 오랜만에 대학로를 찾은 나에겐 낯선 배우들이었으나 연기가 좋았다. 연극은 '빨래'라는 노동 속에 숨겨진 복잡한 의미를 설명하는 대신, 몇 가지 에피소드를 보여주었다. 관객들은 공감했고 연신 박수로 호응했다. 두드리고 비틀어 빨랫줄에 너는 순간 느꼈을 작은 해방이 모여 생활이 됐고 삶이 됐을 것이다.


연극이 끝난 후, 미리 예약한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가족이 나눈 대화는 즐거웠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몸을 맡긴 채 느긋하게 긴장을 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평화로웠다. 서쪽 하늘에 노을이 내려앉아 한강과 어우러졌다.


내일부터 출근이다. 연휴를 포함하여 열흘 간의 공백이 드러나겠지만 업무의 일부려니 할 것이다. 격리됐던 시간 동안 보았던 바깥 풍경, 하늘과 건물, 멀리 혹은 가깝게 들렸던 세상의 소음이 아득하다.


격리라는 것은 이렇게 인간을 세상으로부터 떼어 놓는 과정이구나. 그것을 나 말고도 이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경험했구나. 그나마 나는 그저 조금 센 감기 정도로 마감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네. 다른 경험으로 인해 조금 더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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