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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Oct 21. 2022

모호함을 견디기

성장은 경험의 연속적 재구성 과정

공기가 서늘해졌다. 걸어서 출근하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안개가 자욱하다. 요즘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인 브런치는 접속장애가 계속되고 있다. 언제 안정화될지 모호하다. 다음카카오의 여러 아이템 중 수익과는 동떨어진 서비스여서 가장 늦게 정상화될지도 모르겠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의 남쪽 둔치


크게 불만은 없다. 작가들 중에는 브런치를 글창고 삼아 자기 서사적 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순간에 글을 올리고 폭발적 반응을 기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급하지 않은, 혹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조용한 연대라고나 할까. 뉴스에선 다른 소셜 미디어와 다르게 브런치 장애 소식은 언급조차 없다.

브런치 운영팀 역시 사과 공지 하나 달랑 내걸고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지만 작가들의 불만은 별로 없다. 확실히 이곳은 소란스러운 세상을 잠시 피해 위로를 구하는 고독한 현대인들의 조용한 휴식처 같은 곳이다. 이 사태를 조용히 견디는 이유이다. 장애 복구가 너무 길지 않길 바란다.


하긴 우리 삶도 예측이 힘들고 종종 불확실하다. 계획을 촘촘하게 세워 사는 사람도 모호함 앞에서 순간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태반이다. 이 답답함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거나 때로 퇴보하는 게 삶의 모습이다. 오죽하면 OECD는 미래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역량으로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 '변혁적 역량(transformative competencies)'을 제시했을까.

 

안개는 다리를 건널 때 절정이었다. 기꺼이 안갯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어떤 사물도 가까이 가면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직관, 혹은 경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불확실함 앞에서 기죽지 않고 단지 속도를 늦추어 한 걸음씩 나아간다.


모호함을 피하면 진화는 멈춘다. 생각해보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비정형의 모호함을 견디는 과정이다. 성장은 경험의 연속적 재구성 과정이라 말한 사람은 듀이였다. 낱낱의 개별적 경험 사태의 기계적 합이 아니다. 그것들은 서로 연결돼 있고  상호 감응한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은 내 안에 들어와 기존의 지식과 결합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질의 지식으로 변하여 세상을 마주한다.


강을 건넜을 때 도시의 건물들이 조금 더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갑자기 싸늘해진 아침에 걷기 시작하여 대략 50분 걸려 사무실에 도착했다. 안갯속 잡생각은 끝났고 지금부턴 현실이다.


보이지 않는 끝 그 너머에서 새로움이 시작된다는 것을 우린 경험을 통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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