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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Oct 25. 2022

서순라길 걷기

종묘를 지키는 순라청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순라길

오랜만에 종묘를 찾았다. 정전은 공사 중이다.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 나중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조선의 개국, 경복궁 건축과 동시에 공사를 했다고 하니 선대 왕에 대한 지극한 효가 있었나 보다.


그런데 조상을 추모하는 일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인류 문화를 살펴보면 죽은 자를 추모하는 일은 현재 살아 있는 자를 위한 것이다. 일 년에도 몇 번씩 제사를 지내는 집의 경우, 이 형식을 엄수하는 과정에서 가족 내 질서를 유지한다. 아울러 이 행사를 주관하는 자 역시 사후에 이런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전제한다.


그런 집안은 대체로 위계적 질서가 잡혀 있다. 죽은 자를 추모하여 산자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일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고 좋은 풍경이나 감상하면 될 일을 잡생각을 하고 있다. 제사라고는 지낼 일이 없는 가족을 꾸리다 보니 질서에 질투가 난 것일까. 사실 죽은 자를 추모할 때 그 많은 일거리를 처리하기 위해서 남성과 여성의 과제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의 동선과 움직임, 제사 후 음식을 먹는 과정이 누구의 희생 위에 있는지 말이다. 영녕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잘 보존된 숲길을 돌아 종묘에서 나왔다.

종묘 돌담을 끼고 서순라길로 들어섰다. 주말엔 차 없는 거리다. 금은 세공하는 집, 소소한 카페들을 보면서 느릿하게 걷는 맛이 있다. 종묘를 지키는 순라청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순라길이다. 봄, 가을에 유독 더 예쁘게 보인다고 한다. 종로구 종로3가 45-5에서 시작해 권농동 26까지를 잇는 도로다.

근처에는 종로의 분위기를 잘 담은 한옥 식당, 카페 등이 들어서 있고 서울 중심에 위치해 익선동, 인사동, 북촌, 삼청동, 을지로 등 주변에 갈만한 곳이 많다.  일본강점기 이후 왕실 권위의 상징하는 종묘 옆에는 판자촌이 들어섰고, 서울시는 종묘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995년에야 서순라길 조성에 나섰다.


서순라길. 오른쪽에 종묘 담장, 왼쪽에 귀금속 세공 집들과 소소한 카페가 있다.


창경궁 회화나무를 보고 계동, 북촌, 인사동을 거쳐 종각까지 왔다. 서울이 복잡하긴 해도 잘 찾아다니면 걸을만한 길이 많다. 서울에 오래 살았으면서도 가보지 못했거나 오랜만에 다시 찾을 곳 중심으로 계속 걸을 것이다.




종묘. 가운데 신로, 동쪽으로 왕이 서쪽으론 황태자가 걸어가는 길



경복궁에서 왕이 제사를 지내러 욌을 때 목욕재계하고 잠시 머물던 곳. 제기가 전시돼 있고, 왕이 제사를 준비하며 머물던 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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